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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an 31. 2024

책 읽은 다음 날의 육아, 그 불편한 간극에 대하여

어떤 마음으로 육아서를 읽어야 할까요? "아이 앞에서 엉엉 울었어요.."

아이를 재우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괜스레 책을 들 때가 있다. 하루의 에너지가 젖물리며 잠깐 눈 붙인 새 충천이 되어 조금 남았거나, 그 하루에 어떤 의미나 재미, 성장이 없어 그대로 닫기 아쉬울 때가 그렇다. 



무심코 수면에 관한 책을 집어든 다음 날의 육아는 여지없이 불행했다. 현실 육아는 책대로 되지 않았다. 내내 죄책감이 들고 화도 났다. 조바심도 든다. 책의 조언대로 어설프게 수면교육을 하려다 하루가 엉망이 되곤 했다. 5일은 해보라고 하지만 나홀로육아족에게 5일이나 홀로 견디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하루하루 나와 아이, 우리 가족이 먹고 자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지 육아독립군으로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 아무도 내 밥을 차려주지 않고, 나는 나와 아이, 내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 제대로 먹고 자지 않으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날들이다. 



읽지 않고 기준을 지운 날은 주로 행복했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 할까? 젖을 물려 재우는 부모는 내내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의 충치나 안면변형, 수면장애, ADHD를 걱정해야 하는가? 미래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나와 아이의 오늘을 망쳐야 할까? 



육아맘이 책을 읽는 마음, 육아서를 읽는 마음



육아맘이 책을 읽는 마음, 육아서를 읽는 마음은 어떠해야 할까? 책은 안내한다. 안내하고 있을 뿐 정답은 아니다. 책이 정답이고 나의 오늘이 오답인 것은 아니다. 좋은 양육법과 지식을 참고하여 나와 아이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모두가 책대로 쉽게 된다면 누가 그 책을 볼까? 책대로 안되니까 책이 팔리고 읽히는 것이다. 너무 쉽고 당연한 얘기를 쓰고 안내하고 있는 책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시간 낭비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자세히 안내하고 있는 책 덕분에 그리 되면 참 감사하겠지만, 그리 안되면 또 어떤가. 마음이 너무 괴로우면 읽은 마음을 지우면 된다. 지우고 다시 행복한 마음으로 지금의 아이와 내게 집중하다 보면 다시 책을 집어들 용기가 나고, 어느덧 책대로 되어있는 오늘을 만나기도 한다. 시간은 흐른다. 내 무의식에 저장된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내 이끈다. 그것은 때로 불편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 스스로의 '먹놀잠'이 잘 해결되지 않은 날은 짜증과 화로 분출되기도 한다. 나의 오늘처럼 말이다.






책이 정답이고 나의 오늘이 오답인 것은 아니다. 





내 아이가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는 평가의 시선으로, 지금 개월수엔 얼마의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다는 지식으로 재단하며 바라보지 말자. 노래만 틀면 몸을 흔들고 즐기며 환하게 웃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그 마음에 집중하며 함께 즐기자. 역시 나처럼,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이끈 대로, 내가 기도한 대로 아이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구나. 음악으로 남편과 내 아이를 만났고, 음악으로 태교를 했고, 문화센터에서도 음악 놀이 수업을 듣고 있다. 쉼 없이 노래를 불러주고 있으며, 아이는 자기 전에 내 목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 아이가 내내 사운드북 버튼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태어나서 단 하루도 음악과 함께하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타이니모빌부터 시작해 매일 수유 시 틀었던 클래식, 깨어있는 시간 동안 틀어주고 불러줬던 동요와 마더구스. 아이는 영어든 한국어든 노래면 다 좋아서 환해진다. 그 웃음이 얼마나 환하냐면 주변이 다 화사해질 정도다. 해사한 웃음과 씰룩대는 궁둥이에 웃음이 터진다. 건전지가 있는 장난감을 치우고 사운드북은 책장 위켠에 다 올려두었는데, 아이가 사운드북이 있는 자리를 알고 손을 뻗는다. 엄마가 어디서 꺼내는지를 유심히 보았던 게다. 똘똘도 하지.



내가 책을 읽어주면 튤립을 가지고 저만치 걸어갔다 내 곁에 오가기를 반복해서 속이 상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처럼 '읽어주려'하지 않고 책을 닦고 정리하고 있으면 꼭 내가 꺼낸 책을 한 번 만져보고 가져가서 읽는다. 내 아이는 '아기'나 '아이'의 사진이나 그림이 나온 책을 좋아한다. 높은 월령을 위한 글밥이라 닦고 치우려는데 아이가 신기하고 행복한 웃음소릴 내며 다가왔다. 책을 펼쳐 들고 읽었다. 아이들의 사진을 1분 정도 함께 보았다. 그 책을 치우지 않고 전면책장에  꽂았다. 엄마가 책을 분류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책에서 추천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 아이'가 되어야 한다. 내가 관찰한 내 아이가 좋아하는 대로라면 뭐 어떤가. 아이가 그 책을 좋아하고 우리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책육아'지. 글밥이 있는 대로 다 읽어주고 가르치려 들면 아이도 나도 지치고 재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내가 힐링이 되어서 혼자 읽는다. 읽고 있으면 아이가 궁금해서 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은 블루래빗 꼬마책을 만지작 거리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집어드는 책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책놀이를 리드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각자 책장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따로 또 같이. 함께 읽을 때도 있고, 따로 읽을 때도 있다. 이게 내 '현실 책 육아'이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책육아'다.




아이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다니





아이 앞에서 엉엉 울었다. 오늘의 세 번째 식사를 함께 할 때였다. 아이는 계속 음식을 집어던지고 내 수저는 거부했다. 잘 먹을 때도 있지만 한 끼에 그런 시간은 반드시 있다. 자기 주도 이유식 책을 괜히 읽은 걸 후회할 때가 있다. 자기 주도 이유식의 장점은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덕분에 당장에 내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나는 살아났다. 아이는 매 끼니 촉감놀이를 통해 소근육을 발달시키고 식사에 대한 주도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먹기 싫으면 던지고, 책대로 매 끼니 숟가락 연습을 시켜주려 하면 맘대로 되지 않으니 짜증을 내며 숟가락과 함께 음식도 집어던진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로 화를 냈다. 내 아이에게 이렇게 화를 내고 혼낸 적이 없었다. 어제 새로 산 이케아 식탁매트를 그대로 당겨 떨어뜨렸다. 아침 식사가 다 엎어졌다. 거기서부터 나의 하루는 이미 짜증으로 시작되었다. 덜 깬 눈 비비며 만든 음식들을 데웠는데 한 순간에 순삭. 바닥에 떨어진 건 내 입으로 다 털어 넣게 생겼다. 마지막 끼니에선 눈물이 났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진짜 제발 누가 좀 나를 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육아를 한지 두 달쯤에 항상 이런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곧 설이다. 부모님 찬스 덕분에 오랜만에 편히 해주는 밥 먹으며 나는 또 에너지를 챙겨 와 한두 달을 버틴다. 



아이를 혼내기보다 눈물이 난 것은 죄책감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해먹이지 않아서, 내가 자기 주도 이유식을 잘못 가르친 것 같아서, 내가 젖 물려 재우는 습관을 끊어주지 못해서. 그렇게 못해준 것들만 생각나서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울었다. 내 눈물을 보고 아이는 떨어뜨리지 않고 착하게 먹고,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예쁘게 먹었다. 내 아이는 엄마의 감정에 잘 공감하고 공명한다. 내가 정말 웃겨서 웃으면 정말로 진짜 웃음을 짓고, 내가 친절하려 애쓰는 말투로 애써 웃어주면 정말로 사회적인 미소를 잠깐 보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시선을 돌린다. 아이는 맑아 엄마의 감정을 잘 읽고 느낀다. 



'아이에게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양육자가 필요하다'는 어제 읽은 구절이 떠올라 그 부담감과 무게감이 나를 반대로 이끌기도 한다. 이런 날의 엄마도 있다. 울고 화내는 엄마도 있다. 그게 사람이고 삶이다, 아가야. 미안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네 엄마는 사람이란다. 



아이에게 누구보다 늘 잘 보이고 싶었고, 내내 사랑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럼 스스로 침잠하고, 육아효능감, 자존감,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어떤 마음들도 모두 가라앉아 나를 할퀸다. 



같은 월령의 아이를 지닌 엄마들끼리 온라인 책모임을 이끌고 있다. 사실 만들어만 놓고 운영은 다른 좋은 에너지를 지닌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책임감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 읽고 나누고 생각하고 깨어있자 얘기한다. 오늘 읽은 책장의 사진과 하루를 나누며 서로를 도닥인다. 내가 읽었던 책을 타인의 시선에서 다시 읽는 일만큼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 아이 기질 맞춤 양육 매뉴얼'이라는 책을 함께 읽어나가고 있다. 육아로부터의 도피나 딴짓이 되지 않았음 해서 모임에 쏟는 에너지를 스스로 절제하는 중이다. 모임에 대한 열정은 모두 다르다. 여러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규칙을 만들고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와 영감이 많이 되고, 사실 지금의 내게 거의 유일한 유희이자 중단한 SNS를 대신하고 있는 소통창구이기도 하다.



약속을 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나누기로. 읽은 책과 함께 아이와 함께한 오늘의 이야기를 담아. 그게 모임에 대한 '다방 지기'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 여긴다. 그리고 그게 나와 아이를 더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이 오히려 나와 아이를 불행으로 이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가차 없이 내려놓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나와 아이보다 더 귀해져서는 안 된다. 



자라면서도 정답만 적힌 교과서가 가장 재미있던 나였고, 그래서 공부를 곧잘 했지만, 현실은 교과서대로 되지 않았다. 이상주의자로 현실을 살아가면서 불편한 이상주의자로 연명하다 지금은 지극한 현실주의자로 이상을 내려둔 채 살고 있다. 내 삶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돌이표 하지 말자. 책은 책일 뿐. 책은 안내할 뿐. 나는 오늘을 살고 나와 우리만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책은 책일 뿐. 책은 안내할 뿐. 나는 오늘을 살고 나와 우리만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 읽은 책 : 1. 꿀잠 자는 아이/알렉시스 더비프 2. 글렌도만 0세 육아/글렌도만, 제닛 도만 3. 잠수네 프리스쿨 영어공부법/이신애 4. 도시숲에서 아이 키우기/정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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