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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Mar 29. 2024

이토록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오늘

아이가 이끄는 리듬 있는 하루

문화센터 수업이 없고 외출도 없는 날.
잠도, 밥도, 모유도 모두 아이가 이끈다.
이 적당한 규칙성과 자유함, 기분 좋은 리듬감, 편안하고 소중했던 오늘 하루를 아이를 재우고 음미해 본다. 에너지가 충분히 남아있다는 얘기다.

아이는 돌이 지나고부터 배가 고프면 식탁 의자 앞에서 올려달라고 팔을 뻗거나 턱받이 옷을 가져오기도 한다. 잠이 오면 내 옷을 당긴다. 자기 전에 모유를 먹고, 양치를 하고, 잠자리 책을 읽고, 엄마와 함께 누워 뒹굴다가 졸리는 옹알이를 할 때 등마사지를 해주면 항복한 듯 엎드려 스스로 잠이 든다.
아, 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하루.

아이가 잘 때 같이 자고 먹을 때 같이 먹는다.
아무리 배고파해도 내 밥이 준비되기 전까지는 식사를 시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잘 먹고 잘 자지 못한 날에는 아이의 기분과 하루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의식적으로 내가 행복한 맛있는 식사를 하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다.

아이는 식사 준비에 바쁜 엄마를 보고 주변에서 물건들을 탐색하며 생각보다 잘 기다린다.
손이 느린 엄마라 아이가 힘들어할 때는 만드는 중에 하나씩 입에 넣어주면 아이는 좀 더 차분히 기다릴 수 있고, 배가 고파야 더 잘 먹는다.

사실 이렇게라도 기다리게 하는 연습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기다릴 줄 모르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요즘 아이들. 단 한 명의 아이, 즉각적인 반응에 길들여진 아이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두 명의 식사가 준비되면 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찐심으로 꼭 안아 올린다. 그전에 아이 전용 세면대에서 스스로 손을 씻으면 턱받이옷을 입혀 식탁 의자에 앉혀준다.

엄마표 놀이도, 대단한 요리를 해준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냥 함께 먹고 자고 깨고 놀았다.
아이는 아침에 늘 먼저 깨어 아빠, 엄마를 차례로 깨우고 엄마 젖을 찾는다.
아침에는 목만 축이고는 곳곳의 새로운 물건들을 탐색하다가
책을 하나둘씩 가져다주며 읽어달라고, 노래 불러달라고 한다. 요즘엔 노래가 듣고플 땐 우쿨렐레도 꼭 가져다준다.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에 익숙한 아이는 오후에 한 번씩 노래 CD를 틀어주면 놀라는 눈치다. 전자 음악은 엄청 좋아하며 계속 들려달라고 하지 않는다. 되려 둘 간의 연결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늘 노래를 틀어놓지 않아도 이제는 전혀 불안하지도, 적막하지도 않다. 아이가 건네는 옹알이에 답하고 끊임없이 말을 건넬 수도 있고 책을 읽어줄 수도, 노래를 불러줄 수도 있다.

좋은 밥친구가 생겼다.
느리게 오래 먹는 마라톤 식사를 하는지라
어느 누구도 내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해 늘 외롭던 식사가 인생 처음 고독하지 않다. 언제고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

약속이 없어서 행복하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다.

오늘도 제발 깨지 않고 잘 자렴, 우리 아가. 아이와의 무탈한 하루가 제일 감사한 선물이다. 자랑삼지도, 입밖에 내서도 안 되는 무탈함. 마음을 놓거나 자만하면 늘 아가가 아프거나 시련이 오곤 했다. 나를 키우고 내 영혼을 쉬게 하려 온 존재임에 분명하다. 무교인 내가 아이를 통해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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