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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Mar 31. 2024

'나는 엄마가 없는 셈 살어.'

중년인건가

'나는 엄마가 없는 셈 살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멀리 나와 산 스무살 이후로 그랬지만 결혼 후에는 더욱 그랬다.


'임신 기간 절반을 혼자 누워있었어. 그 때 엄마는 어디에 있었어? 왜 한 번도 와보지 않았어?'

'애 낳고도 일한다고 안와봤잖아. 시엄마를 대신 보내는 친정엄마가 어딨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가까이 있으면 니도 챙겨줄건데..'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 마음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예전처럼 택배로 음식을 보내줄 것도 아니면서.. 자주 택배로 음식을 보내주시는 시엄마를 떠올리며 마음이 없어서 혹은 적어서라 여겼다. 매체나 택배같은 신문물에 특히나 약하신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렇게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일이 없어지니 잡히지 않는 마음마저 잊혀져가고 있었던 거다.


오늘 아빠가 눈 수술을 하셨다. 나한테 오늘 한다는 말도 없었고 가보지도 못했다.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처음으로 요즘 몸상태가 최악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왠만해서는 아프다는 얘기도 안하시는 분이 그렇게까지 표현하는데는 정말 심하다는 얘기다.

허리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 비싼 의료기를 샀을까. 절대 돈을 허투루 안쓰는 분이. 자기를 위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소비하지 않는 엄마다.


서운한 건 나뿐이 아니겠구나.

유독 전자기기나 인터넷 등에 까막눈인 두 분이 딸한테 도움도 받고 싶고, 아플 때 불편할 때 휴대폰이며 최신 정보들을 얻고싶을 때 나는 부모님을 위해서는 하나도, 곁에서 챙겨드리지 못했다. 내 만족을 위해 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살뜰했으면서도, 정작 부모님을 위해서는 옷이나 신발 하나 사드린 적이 없다. 사이즈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언니에게 물어보거나 메모를 찾아봐야 한다.


엄마, 아빠야 말로 딸 하나 없는 셈 사시겠구나. 내가 멀리 나와 살기로 작정한 후부터, 돌아오지 않는 딸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마음을 얼마나 접고 또 접으셨을까. 그러면서도 내가 필요할 때는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내 철부지같은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울면서라도 먼저 말하지 그랬어. 그냥도 입을 떼지 못했다.


'나 눕눕산모일 때 얘기할 사람 하나 없이 누워만 있어야 해서 정말 힘들었어 엄마...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했어...'


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건 내 안의 양심 때문이었을까. 자식들에게 도움 청하지 못하고 불편하고 외로운 날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허리 아프나. 그러니까 일 좀 그만해."

"그럼 네가 먹여살려 줄꺼가?"

"......"


부모님 용돈도 매달 못드리는 주제에 일 그만하고 좀 쉬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자식이다. 부모님 노후를 내가 책임져 드릴 수도 없으면서. 엄마 인생은 엄마 인생대로 계속 열심히 사시게 두어야 하는 거지.


곁에서 엄마 사는 걸 보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나와 산다. 엄마 곁에서는 모든 소비가 죄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으로부터의 도피로, 나는 고독한 독박 육아, 아니 적막한 나홀로 육아를 하고 있다. 자업자득. 한편으론 내가 만든 기회이다.


가까이 사는 언니네 조카들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다보니 정이 뚝뚝 묻어 난다. 그런데 내 아이에게는 그런 정이 별로 안느껴진다. 자주 봐야 정이 들텐데. 그게 못내 늘 서운했다. 그 마음 부모님도 같으실까.


오랜만에 목구멍이 따갑다. 못꺼낸 얘기가 있을 때 그렇다. 담아둔 말이 차올라올 때 목울대가 묵직해진다.

아이의 자람을 공부하다보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독립과 의존을 평생 반복한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20대에는 내 맘대로 살고 싶었고, 내 걱정 좀 그만했으면 했는데, 30대에는 정말 그리 되었는데도 되려 부모님의 돌봄이 그립다. 아이를 낳고 더 엄마밥이 먹고 싶고, 정말 자주 부모님 꿈을 꾼다.


늘 일이 먼저인 엄마. 평생 실질적 가장인 엄마.

나이가 들수록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용돈으로 효도를 해야하는데

나는 아이를 위한 3년 육아휴직을 꿈꾸고 있었다. 이상적이었을까. 육아 외에 경제적인 부분은 덜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부모님이 아프셔도 1년의 내 근로 소득만큼의 현금 유동자산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나는 3년 가정보육을 후회하지 않겠지?

어차피 빚으로 사는 요즘,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 생각하고 산다.


아이가 온다는 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이 모든 지리한 삶의 문제로부터 나를 멈추고 쉬게하는 일이었다.


"오늘 예쁘네."


자기 딸 예쁘다는 소리 잘 안하는 우리 엄마가 오늘 화상통화하다 갑자기 나더러 예쁘단다.

옆에서 신랑도 요즘 내가 미모에 물이 올랐단다. 둘 다 빈 말은 안하는 사람들인데.

아이와 셀카를 찍으면 빈 머리숱만 보이고 늘어난 주름만 보여 사진찍기도 싫은 내게 왜?

더 못자고, 더 못먹는데 왜?놀리는건 아니겠지.


생각해보니, 일하며 자주 짓는 표정과 아이와 있으며 자주 짓는 표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힘을 주어 말하고 인상을 쓰고 세보이려 애써온 내가

매일 웃고 예쁜 말을 하려 애쓰고 있으니까.

엄마의 삶은 늘어가는 주름과는 별개로 아름다워지는 걸까.


맙소사,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나도 이제 중년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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