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오시면 오랜만에 엄마 밥을 얻어먹고 싶어 하는 나는 철부지 딸이 된다.
환갑이 넘은 엄마가 평생 안팎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시는데 가끔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자기 주방이 아닌 곳에서도 또 일을 시켜야겠냐는 남편. 마땅히 우리가 해드려야 하는데 내가 요리가 어렵고 아이가 어려 외식은 어려우니 시켜 먹자는 남편.
평생 식당에서 일하신 엄만 더러운 걸 하도 많이 보셔서 외식이나 바깥 음식은 정말 싫어하신다. 바깥밥이 입에 안 맞아 엄마밥으로 평생 도시락을 싸다니시는 아빠도 마찬가지. 일주일에 한두 번 시켜 먹는 배달음식인데 엄마가 와서까진 정말 싫은 나. 그리고 장모님이 일하시는 게 좌불안석인 사위가 있다.
난 간절히 엄마 밥이 먹고 싶다. 정말! 그리던 엄마 밥을 겨우 몇 끼 몰아 먹고 사랑을 충전해서 또 몇 달 못하는 요리며 집안일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왜 그걸 못하게 하냐. 우리는 그렇게 투닥거린다.
처음엔 그의 마음이 놀랍고 멋졌다. 그에겐 결코 당연한 게 없었다, 엄마밥조차도. 나에게 엄마는 밥이고 그게 엄마의 사랑이 내게 오는 방식이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는 걸까.
일을 못하게 하는 사위 앞에 엄마는 손이 묶여 불편해하며 잠만 주무시다 가셨다. 비싼 기차표 들여 멀리서부터 바리바리 싸 온 식재료들로 요리 몇 가지를 해놓고 가주신 덕에 매일 아침이 사랑으로 가득 찬다. 건강한 요리로 그득해진 배로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도 나도 우리 모두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 엄마는 내가 해주길 대접받길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가 배운 건 다르다. 전혀 다른 집안 문화에서 오는 걸까, 그가 세상에 다신 없을 반듯한 유교보이인 걸까, 내가 철딱서니 없는 걸까. 사랑으로 충만해지던 몸이 나락으로 침잠했다. 목도 몸도 아팠다. 생각을 멈추고 보니 모두가 사랑이다.
상대가 주고픈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것도 사랑이다. 엄마가 내게 주고픈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행하게 해 달라. 그게 나의 외침이다.
그와 나의 사랑방식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그것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날들.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가 부모님께도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반성한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전해진다. 그래서 더 어렵다. 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건데 왜 이렇게 힘들지 우리 서로? 내게는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뜻대로 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그에게는 상대의 몸을 편하게 해 주고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빠가 내가 한 고추장멸치볶음이 맛있다며 밥 한 공기를 더 드시고도 계속 집어드셨다. 아마도 내가 처음 해드린 음식이다. 사위가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준 방울토마토도 새롭다며 너무 맛있게 드신다. 아빠는 별거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랑을 맛있게 잡수셨다. 나는 그 마음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다음에 오시면 양가부모님께 어렵지 않게 사랑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 수 있게 커야겠다.
나는 늘 그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의 방식에는 저마다 허점이 있다. 그래서 배울 수 있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는 사랑하고 있다. 그걸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