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를 괴롭히는 틀

육십 네 번째

by 예원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나눴다.


"친구가 회계사인데 그런 말을 하더라. 엄마 아빠가 고등학교 때 잔소리 같은걸 안 했데. 그때 좀 쪼아줬으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부 더 잘했으면? 그냥 그 리그에서 조금 더 연봉 더 받고 정해진 삶? 뭐가 달라? 지금 후회하면?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게 낫지."


회계사 리그에서는 아무래도 학벌이 기회의 장벽이자 지름길로 통한다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공부를 덜한 게

지금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것 같다는 후회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냉정하게 대답했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표는 지금 우리네 나이에는 최소 10년 전 이야기다.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이니까.


후회를 푸념하듯 반복할 때는 그것이 반성이기보다는 무기력으로 찾아올 때가 더 많았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할 것 같은 루틴으로 무기력감이 찾아오곤 했다.


나도 저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해 무기력함에 빠져 지낸 시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저런 얘기를 들으면 괜히 더 이렇게 냉정하게 말을 한다. 나라는 놈은 뭐 잘나기라도 하듯이.

내가 만든 그 틀이 나를 괴롭히던 그 시간이 떠올라서 인 것 같다.


아직, 무기력한 마음과 말들만 가득했던 시간으로부터 내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같다.


사실 저 말이 쏟아지기 전에

'안타깝다. 참 무기력하고 힘들었겠다.'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냉정한 말을 쏟아내 버렸다.

남을 향해 정신 차리라고 비수를 꽂은 건지 나를 향해 비수를 꽂은 건지 모를 정도로.


18살 시절 만들어진 삶의 틀을, 10년 넘게 마음에 탑처럼 계속 쌓으며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프고 답답했다.


그런 식으로 자꾸 후회하듯 읊조리다 보면,

정말 18살 시절 삶의 틀만 마음에 가득해져서 벗어날 여백조차 사라져 버리니까.

이제는 정말... 너도 나도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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