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중얼중얼

정의라는 합리화에 대해

#329

by 예원

저는 타인을 업신여기는

아니, 정확히는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그대로 복수해주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특히

'기만' 그리고 '업신여김'에 대해서는 좀 더 자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절대 다시는 나에게 그러하지 못하게 갚아주고 싶어 합니다.

마치 그게 정의구현이라도 되는 듯이. 정당하게 표현할 때도 많고요.


살면서 이런 감정에 휩싸여

실제 반응한 일이 2번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는 것만 2번이고 실제로는 훨씬 많겠지요.)

첫 번째는, 완전히 상대를 처참하게 만들었고, 15년이 지난 지금 후회합니다.

두 번째는, 5년 전 즈음인데 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터놓다 보니 의외로 인생 친구가 되었습니다.


헌데 작년에 동일한 분노가 밀려드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여러 번 고민 끝에,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갚아주지 않고 내버려 둔 게 후회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게 만들어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내가 그 버릇을 고쳐줘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만의 합리화되고 교만한 정의가 튀어나옵니다.



어제 말씀을 묵상하는데 정확히 제 마음에 대해 지적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정의를 위함이었습니까?

사실 복수를 합리화하고 고상하게 포장하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범죄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정의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응어리는 그냥 흘려보내십시오. 응어리를 안고 살지 마시고 비우세요.


모두가 자신의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기 시작하면

서로를 비난하다 이 세상은 끝납니다. 절대 서로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근데 이 말씀을 들으며 떠오르는 나만의 갈등이 있습니다.


제가 이럴 때마다 누군가는 저를 또 만만하게 여기고 기만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조차 흘러가도록 또다시 두어야 할까요?


저는 복수를 해도, 하지 않아도 후회가 남았습니다.

나는 이 응어리를 정말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나는 내 마음을 비우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하지만 비우지 않으면 더 힘이 들어서 매일 고백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정의라는 합리화'라는 이 마음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이제는 주변에 반응하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얼마나 어떻게 벌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