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가을에 태어났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에 울긋불긋 단풍이 든 가을 풍경이 좋다.
어쩌다 보니 결혼식도 가을에 하게 되었다. 작년 10월 말 즈음에 결혼을 했는데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같은 날짜임에도 날씨가 많이 추워진 것 같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낙엽들이 발끝에 와 부딪치고 곳곳에 새빨간 단풍이 든 잎들이 떨어져 있다.
어느 날은 낙동강변을 따라 달리는데 반짝이는 강물에 눈이 부시고 강변에 피어난 억새들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푸릇했던 나무들이 저마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서는 마치 한편의 그림으로 변해 있었다.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가을입니다! 가을이라고요!'라고 외치는 듯했다.
언제 이렇게 풍경이 달라졌지? 분명 초록 초록한 여름이었다가, 갑자기 성큼 겨울이 온 것 같더니 갑자기 완연한 가을이 되어버렸단 말이야?
분명 작년 이맘때에도 단풍이 한가득이었을 텐데, 작년의 나는 이 광경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 가을을 보내버렸다. 이유는 뭐 결혼식이 임박해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단풍에 눈길을 주지 않았겠지.
집 주변에도 단풍나무가 많지만, 갑자기 단풍이 보러 가고 싶어졌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온전히 단풍을 감상하고 그 속에 있고 싶었다.
특히 결혼 후에는 남편과 카페를 가거나 어딜 가도 서로 일할 거리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온전히 쉬거나 둘만의 대화를 즐기는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데이트마저 일의 연장선이었달까?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머리도 식힐 겸 산책 다녀올까?라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지만 오랜만에 석촌호수에 가보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석촌호수는 가을을 즐기기에 정말 최고의 장소였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호수 건너편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림인가? 이거 그림일까?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석촌호수가 이렇게 예뻤던가. 늘 여름에만 왔기에 가을 풍경이 이렇게나 멋진 줄은 미처 몰랐다.
여기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단풍이 가득한 산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예쁠까?
내년에는 산에서 단풍을 즐겨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이 풍경을 눈에, 마음에 담아 가야지. 최대한 핸드폰도 하지 않고 풍경을 보며 걸었다.
이렇게 걸으며 데이트를 하니 남편과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결혼 전엔 서로 하고 싶은 말도, 나누던 대화도 끝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결혼 후에는
대화가 줄어들고 카페에 가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남편과의 대화에 목말라했었는데
노트북도, 핸드폰도, 모든 걸 내려두고 그저 '쉬자, 머리를 식히자!' 콘셉트로 걸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게 되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 데이트를 할 때, 일하는 데이트와 놀고 쉬는 데이트를 구분해서 조절해야 할 것 같다.
핸드폰도 보지 않는 데이트라면 더 좋을 것만 같다.
웅장한 롯데타워도 멋있지만 오늘은 주변의 나무와 호수가 더 예쁜 것 같다.
결혼 후에는 실내, 도심 데이트보다는 점점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인데
탁 트인 공원을 걸으니 그나마 조금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작년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을 풍경을 올해는 실컷 보았다.
발끝에 채인 떨어진 낙엽들을 발견하곤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고 푸른 하늘을 보았더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잠시나마 모든 걸 잊게 하고 마음에 쉼을 가져다주었다.
언제나 마음에 여유를 지니고 있어야 세상을 더욱 멀리 보고 넓게 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같은 것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완연한 아름다운 가을. 곳곳에 꽃들이 피어있는 알록달록한 봄,
새하얀 눈이 덮인 반짝이는 겨울. 푸르른 초록의 여름.
언제나 탁 트인 푸른 하늘, 반짝이는 밤하늘의 달과 별.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도 분명 보통날의 우리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만 보고 걷고 있다면
잠시만, 아주 잠시만 고개를 들어 눈앞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보라.
어쩌면 길가에 피어난 풀잎 하나가 내 마음에 위로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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