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레터 #59|링크컨설팅
윙크레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디터 D입니다. 지난주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치인 31.3%를 기록한 선거였는데요. 누구 뽑으셨나요? 이런 질문, 당황스러우시죠? 이처럼 직장에서 ‘누구 뽑았어?’라고 묻지 않는 건 이제 불문율이 되었습니다. 정치 성향부터가 ‘직장에서 절대 드러내면 안 되는 7가지’[1]에 꼽힐 정도라고 합니다. 이번 윙크레터에서는 스포츠에서 불문율이 가지는 의미부터, 우리가 일하는 곳에는 어떤 불문율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불문율이 조직을 마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순서]
유난히 불문율이 많은 곳, 스포츠
스포츠에서 불문율의 의미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작동하는 불문율
불문율 vs 암묵지 vs 상식
불문율이 조직을 망치지 않게 하려면
[1] 〈직장에서 '절대' 드러내면 안 되는 7가지〉, 2022.01.28, 피플앤잡.
야구 좋아하세요? 지난 3월 말부터 국내 프로 야구 시즌이 시작되었는데요. 야구 팬이라면, 타자가 홈런을 치고 난 뒤 배트를 던져버리는 모습(배트플립, 빠던)에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국내가 아니라 메이저리그라면 어떨까요? 메이저리그에서는 ‘불문율을 어겼다’며 아마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같은 스포츠라도 미국에서는 ‘투수를 자극한다’며 불문율인 빠던이, 한국에서는 누가봐도 속시원한 퍼포먼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난히 불문율이 많은 곳, 스포츠
스포츠에는 유난히도 불문율이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불문율이 많은 스포츠가 바로 야구입니다. 2020년 MLB.com이 정리한 《unwritten rule book》, 즉 불문율 규정집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불문율은 다음과 같습니다.[2]
▷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경기에서는 더는 홈런을 치지 않을 것!
▷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루하거나 홈런 치고 과하게 좋아하지 말 것!
▷ 상대 투수가 백투백 홈런(연속타자 홈런)을 허용했다면, 다음 타자는 초구를 치지 말 것!
▷ 이닝 중간에 교체된 투수는 이닝이 끝날 때까지 더그아웃에 남아 있을 것!
▷ 투수 마운드를 밟거나 가로지르지 말 것!
▷ 타석에 들어설 때 포수 앞을 가로질러 가지 말 것!
▷ 퍼펙트게임, 노히트 게임 중인 투수에게 말 걸지 말 것! 또 번트 대지 말 것!
▷ 불문율을 어겼다면 반드시 보복할 것!
▷ 보복할 때는 볼을 등이나 엉덩이 쪽으로 던질 것!
[2] 허솔지, 〈메이저리그에는 대체 어떤 불문율이 있을까?〉, 2021.04.20, KBS.
스포츠에서 불문율의 의미
역사가 100년이 넘은 야구에서도 현재까지 다양한 불문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문율 중 시간이 지나면서 논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야구는 보기보다 위험한 스포츠입니다. 시속 150km가 넘는 공이 경기 내내 선수들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서로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다른 스포츠들은 어떨까요? ▷ 야구처럼 농구에서도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적극적인 공격이나 세레모니를 하지 않습니다. ▷ 축구에서는 쓰러진 선수가 있다면 공을 밖으로 차서 경기를 중단시키는 것이 불문율이고요. ▷ 당구에서는 300이하 맛세이 금지, 계산은 패자가 합니다. ▷ 볼링에서는 좌우 레인에서 투구를 준비하고 있는 경우 레인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고 ▷ 배드민턴이나 탁구에서는 자신의 셔틀콕(공)이 네트에 닿은 뒤에 떨어져 점수를 획득하면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인사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이 정도 불문율, 어때 보이세요? 지키지 않는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일 겁니다. 그건 스포츠에서 불문율의 기본 정신은 '상대를 존중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구 불문율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강조하는 건 ‘양심’인데요. 모두 서로 다치지 않고 감정이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끝마치자는 목적이 있는 것이죠. 스포츠에서 불문율을 지지하는 입장은 위에서 말한대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 하고, 반대 입장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 경기이지 선수들 간 친목 도모는 아니’라는 주장인데요.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작동하는 불문율
이런 불문율이 일상은 물론 우리가 일하는 조직에도 있습니다. 수직적인 문화가 강한 기업에서는 승진을 앞둔 사람에게 높은 고과를 몰아주고 있고[3], 장자승계 원칙이 작동하고 있고[4], 실력으로만 채용을 하면 ‘불문율을 깼다’고 파격적인 채용[5]이라고 합니다. 투자 업계의 불문율은 '이미 투자한 금액의 많고 적음이 기준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6]는 것입니다.
국내 유수의 한 게임 회사 불문율은 망한 게임을 제작했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PM을 맡아본 적 있는 사람한테 큰 프로젝트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내 소식통에 따르면, 다른 직원들도 이런 불문율에 불만이 많지만, 가만히 있어도 월급 잘 나오는데 굳이 나서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마 많은 조직에서 이런 식의 불문율은 작동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불문율이 많이 깨지고 있기도 합니다. 경쟁사 임원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7] 건 이제 꽤 많이 보입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고객사를 언급하지 않아 왔지만, 마이크론은 지난 2월 26일 엔비디아의 AI용 GPU H200에 HBM3E를 탑재하겠다고 발표했고,[8] 유통업계에서는 다른 유통사의 자체브랜드(PB) 상품은 팔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킴스클럽의 PB '오프라이스' 화장지는 킴스클럽보다 쿠팡에서 더 많이 판매되고[9]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어떤 불문율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나요?
[3] 김규희, 〈'신의 직장' 떠나 벤처행…20·30대 줄퇴사 원인 ‘임금체계’〉, 2022.04.05, 더벨.
[4] 박지수, 〈[여성CEO가 뛴다] 구지은 아워홈 대표, 범LG家 74년 불문율 '禁女의 성' 허물다〉, 2024.03.28, FETV.
[5] 윤미혜, 〈"사업 확장 신호탄" 핀테크 업계 취업 불문율 깬 토스〉, 2020.07.22, IT조선.
[6] 유호상, 〈[유효상 칼럼] 왜 망할 회사에 20조 원이나 쏟아부었을까〉, 2024.02.13, 머니투데이.
[7] 변윤재, 〈"불문율은 없다" 적군에게도 '러브콜' 보내는 기업들〉, 2022.04.19, 데일리임팩트.
[8] 이승주, 〈SK·삼성·마이크론 ‘HBM 삼국지’ … 2분기가 변곡점〉, 2024.03.07, 문화일보.
[9] 박종관, 〈'킴스클럽'이 쿠팡서 히트…PB 장벽 무너진다〉, 2023.02.01, 한국경제.
불문율 vs 암묵지 vs 상식
불문율과 비슷해 보이는 개념들이 있습니다. 바로 암묵지와 상식인데요. 전통, 관습, 상도덕 등도 유사한 개념입니다. 조금 더 연관성이 깊어 보이는 암묵지, 상식과의 관계를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불문율(Unwritten law):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규칙.
암묵지(Tacit knowledge):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으나,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는 지식.
상식(Common sense):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불문율은 암묵지일수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지일수도 있습니다. 암묵지라면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또한 불문율은 상식선에 있는데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에 포함되는 것이 대체로 불문율이기 때문에 불문율을 지켰을 때 모양새가 좋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 선수가 쓰러져 있을 때 공을 아웃라인 바깥으로 차내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뭉클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관행이 불문율이 되기도 하는데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불문율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을 경우,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져 대다수가 동의하기 어려운 불문율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불문율이 조직을 망치지 않게 하려면
조직에서 대표적인 불문율은 조직 내의 정치역학적 관계, 관행 등이 있으며, 이런 불문율은 기업 문화로 해석되기도 합니다.[10] 구성원고 조직 모두에 좋은 불문율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조직 내에 불문율이 있다면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식에는 꼭 참여해야 한다던가, 휴가를 갈 수 있는 시기가 있다던가, R&R이 정확하지 않은 일을 할 때는 힘이 약한 쪽이 한다던가죠.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자'는 구호가 들려오는 이유 역시, 이런 불문율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됩니다. 일 하고 싶은 조직, 일 잘 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애매한 것들은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이겠죠. 불문율에는 ‘깨지다’라는 동사가 잘 어울립니다. 왜냐면 불문율이 생길 때는 소리가 없기 때문이죠.
‘갈등과 대립을 넘어 공생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변화의 시작점’이란 카피를 단 《대화란 무엇인가》에서 데이비드 봄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의미를 공유하는 일’[11]이라며 의의, 목적, 가치 드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회는 붕괴된다’고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애매한 언어는 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더 나은 조직이 되기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조직에는 어떤 불문율이 있는 먼저 정확히 파악해 보면 어떨까요?
[10] 정헌택, 〈우리 회사, 무사안일의 '불문율'은 없나〉, DBR 5호 (2008년 3월 Issue 2).
[11] 데이비드 봄, 강혜정 역, 《대화란 무엇인가》, 2021, 에이지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