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크컨설팅 Jun 29. 2021

의미있는 숙의 과정 & 대규모 원탁 토의란?

2021년, 합의가 필수인 시대에서

#숙의과정 #원탁토의 #시민워크숍 #토론


최근 몇 년 사이 100명 이상의 대규모 주민참여 원탁토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는 주로 '퍼실리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곤 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인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지요. 민주주의가 성숙해 갈수록 숙의 과정, 원탁 토론, 시민 워크숍 등은 더 활발히 진행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그 의미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출처: https://www.re-work.co)


1. 참여

'많은 사람의 참여'가 가능하므로 상당히 민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계획 등 공공 기관의 사업 추진에 있어, 답을 다 만들어 놓고 사후 의견을 듣는 공청회에 비한다면 상당히 진일보한 주민참여 방법입니다.




※ 관련 자료

① 윤상연 기자. <경기도, 도내 청년대상 여론조사와 숙의토론 종합 '청년...'>. 2021.06.24. 한국경제.

② 이병희 기자. <경기도, 도민 제안 사업 '숙의토론' 벌여 내년도 예산 반영>. 2021.06.20. 뉴시스.

③ 서동일 기자. <춘천시, 2022년 예산안 ‘시민공감 예산’으로 편성>. 2021.06.18. 프레시안.

④ 박종일 기자. <도봉구 ‘협치도봉 50+원탁회의’ 열어 지역사회문제해결...>. 2021.06.03. 아시아경제.

⑤ 정지윤 기자. <조형물 설치 전 숙의과정 거쳐 '시민 공감' 얻어야>. 2021.06.01. 영남일보.




2. 대표성

제 귀에 들리는 바, 단순히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심지어 '보여주기 위해' 워크숍의 참석자 규모를 늘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대표성이 커진다는 논리는 일견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대표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그것뿐인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3. 숙의(熟議)

왜냐하면, 참석자 규모가 커질수록 주최 측에서 바라는 '숙의'가 요원해지기 때문입니다. 숙의되지 않은 결과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에 봉착합니다. 예를 들어, 10명씩 앉아 있는 10개의 테이블이 있다고 하지요. 1조에서 누군가 엉뚱해 보이지만 상당히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1조 내에서는 그 안이 왜 중요한지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지만, 10개 테이블에서 나온 모든 의견, 그 의견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100명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겠지요.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참석자들은 지루해지며 주의집중이 매우 흐트러질 것입니다. 결국 다른 아홉 개 조 사람들은 이유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워낙 대규모이니 보통은 단순히 각 조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종합하여 대형 화면으로 보여주고, 투표에 부치기 십상입니다.



즉, 숙의과정이 없이 단순 브레인스토밍 후 투표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퍼실리테이터들은 참석자 규모가 12명을 초과하면 사실상 '숙의에 의한 합의 도출'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제 경험으로는 24명(6인 1조 x 4개 조)까지는 책임 퍼실리테이터 한 명과 주제의 난이도에 따라 필요한 경우 보조 퍼실리테이터 한 명 정도가 투입되어 '숙의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4. 기초자료(Raw Data) 수집 그리고 참여의 '학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관점이 도출될 가능성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도출하여 기초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주민들 입장에서는 우리 지역의 일에 내가 '참여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고, 이것은 '앞으로도 참여해야겠다'는 자발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집단 토론에 참여한 경험이 쌓이면서 간접적인 학습이 일어납니다.


사실, 대규모 원탁토의의 가장 큰 의미는 4번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주민 워크숍이 바람직할까요?



(1) 단지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원탁토의를 열지 않는다.


(2) 대주민 홍보와 참여 확산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에 맞춰 프로세스를 설계한다. 그리고 토의 결과가 '최종 결론'으로 유의미한지 판단하여 다음 과정을 진행한다.


(3) 숙의가 목적이라면 규모를 확, 줄인다. 대표성은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엄선하여 확보할 수 있다. '대규모'를 포기할 수 없다면 최소한, '나'항목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원탁토의 후 분과별 소규모 워크숍을 여러 번 개최한다.


(4) 대규모이지만 어느 정도 숙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싶다면, 역시, 목적에 맞는 조건을 만들고 정교하게 프로세스를 설계한다.


특히, '(2)'항목과 '(4)'항목은 당연해 보이지만 욕심이 앞서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되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행사는 성과를 얻기 어렵고, 결국 많은 주민들의 직접 참여의 길인 원탁토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비판을 받으며 시나브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2021년 6월 29일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http://liink.co.kr)

국제인증 마스터 퍼실리테이터 CPF/Master of IAF

국제인증 소시오크라시 전문가 CSE of ISCB

《더 퍼실리테이션》 저자

《퍼실리테이터, 소통을 디자인하는 리더》 공저자

《소시오크라시, 자율경영 시대의 조직개발》 감수자


매거진의 이전글 수평적인 조직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