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엄마 혼자 여행, 떠날 수 있을까?

엄마인 당신도 나도 소중한 딸이란 걸, 우리 꼭 기억해요

by 여행하듯 살고

나는 이제 남편의 말처럼

나 혼자서는 즐기지도 못하는

그냥 그런 아줌마가 된 걸까.


나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엄마의 혼자여행

뭣하러 가 뭣하러 가
손사래 치던 엄마가
혼자서 여행을 가

혼자서는 무슨 재미야
의미 없어
라던 엄마는

이제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구나
자극하는 아빠의
응원을 듣고는

못 이기는 척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척
날아가

날개를 편 그곳에선
엄마가 진짜
엄마를 만날까

짧은 여행 마치고
엄마가 돌아오며는
우리 엄마는 그대로
우리 엄마일까




여행을 떠나야 하나 고민 중이다.

무슨 대단한 여행은 아니고

'홀가분히' 나흘 동안 혼자서

살듯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아이들 낳고는 처음 떠나는 홀로 여행이다.


여행이란 여행은 다 좋아했고,

종종 혼자 떠나기도 했었다.

오래도록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무언가에 묶여 버린 듯했다.

뭐 날개 같은 게 있기라도 했었나?

그랬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만 남았다.

지금은 날개가 없어져버린 것 같으니까.



아이들이 크니까 여름에 더 바빠진다.

각자 스케줄이 많다. 남편도 여름이면 일로

더 바빠지고 비행기 타는 일이 잦아진다.

아무튼 이번 여름엔 나 빼고는 셋이 다 비행기를 탄다.

남편이 미안한지 나에게 계속 여행을 다녀오라고 한다.

아이들이 둘 다 교회 청소년부 수련회 갈 때가

좋은 기회라며.


7월 중순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이다.

한 2주라도 되면 한국에 다녀오겠는데...

4일 가지고 어딜 가나.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이랑 남편만

한 달 넘게 두고 한국을 다녀오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부모님이나 본인의 병 때문에 급하게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다.


아닌 경우를 볼 때마다, 아이들을 아빠에게

한 달 넘게 맡기고 혼자서 훌훌 한국 가는

자유부인들,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한테는 그런 용기가 언제 생길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멀리 어디든 비행기 타고 놀러 갔다 오라는

남편의 말에 머리를 굴려본다.

오랜만에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날까.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친구들한테 연락해 본다.




다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키우느라 나보다 더 정신이

없다. 미리 몇 개월 전부터 계획을 했으면 모를까,

내 시간에 딱 맞춰 만나서 4일 내내

같이 놀기란 쉽지 않다.


그냥 진짜 혼자 여행을 가볼까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어디? 시카고나 워싱턴 DC,

시애틀, 덴버 같은 곳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뉴욕으로 마음이 기운다.


센트럴 파크랑 브로드웨이 공연은

그곳에 살며 매일 누려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많이 걸으려고 하지 않아서 걷지 못했던

브루클린 다리도 걸어서 건너봐야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다.

걷는 거라면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는 내가,

그곳은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자주 그려봤다.


뉴욕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세히 해쳐보니

뉴욕 구석구석을 걷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내가 걸으며 “나”를 더 발견할 수 있다면 어딘들,

그곳이 순례길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같이 여행 갈 때마다 더 걷고 싶었는데,

힘들어해서 그냥 우버나 지하철을 탔다.

나 혼자면, 그냥 발길 닿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4일 동안 걸으면 된다! 언젠가는 센트럴 파크에서

여유롭게 하루 종일 뒹굴어 보고 싶기도 했다.


신용카드로 쌓아놓은 마일리지로 비행기랑 호텔을

따로 돈 안 내고 쓸 수 있다. 비행기를 검색해 보니

꽤나 저렴한 가격에 직항이 있어서 바로 샀다.

호텔은 천천히 하면 되지, 하고 별 생각이 없었다.



이제 더 늦지 않게 호텔도 예약해야지 하고

검색해 보는데, 뉴욕에는 싼 방이 없다. 보통 웬만한

도시들은 그래도 저렴한 호텔이 종종 있는데,

뉴욕 맨해튼은 좀 차원이 다르다.

여름방학 때라 더 그런가?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비행기는 어차피 한 명당 내는 가격이라

아깝단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보통 넷이 함께 머무는 호텔을

같은 마일을 내고 나 혼자 쓰려니 아까워진다.


남편은 신용 카드에서 나온 고급 호텔의 무료 숙박권이

있으니 일단 하루는 거기 묵고, 나머지 날들은

좀 저렴한 걸 찾아보자고 한다.


그런데 아까워서, 도저히 혼자는 그렇게 좋은데

못 자겠다. 나중에 애들이랑 시간 맞출 수 있을 때,

우리 가족 넷 다 갈 때 쓰면 함께 누릴 수 있는 건데,

굳이 왜 혼자서 그걸 아깝게 써?

나만을 위한 '낭비'가 가끔 필요한 거 안다.

그렇다 해도 이건 심한 낭비다.


아닌가…

홀로 여행이라고 거창한 이름까지 붙였는데

나를 위해 한번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데 유튜버 '해그린달'의 영상이

떠오른다. [청소하고 싶어지는 영상 브이로그]*

청소 영상인 줄 알고 봤는데,

한 편의 영화이고, 시였다.


단정하고 차분하게 청소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청소를 마치고 홈 카페를 연다. 맛난 걸 먹고, 본인의

일을 하고,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고, 가족여행으로

이어지는 15분 정도 되는 영상이다. 이 영상에

오디오는 음악과 생활소음으로만 채워져 있고,

그녀의 생각은 감성적인 자막으로 전해준다.


청소 후에 토스트와 커피를 만들어 먹으며

그녀가 가볍게 던지는 듯한 권유

또는 위로에 눈물이 빵 터진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수고한 나를 위해. 지금은 내가 나를 대접해요.


어떤 드라마에서
“아빠가 딸에게"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이제는 딸에서 아내로,
또 아이들의 엄마로
그렇게 너의 인생은 이어지겠지…

그런데 딸아…
네가 누구의 아내든
또 누구의 엄마가 되든

딸아…
너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거라…
이 애비의 소중한 딸이란 걸
잊지 말거라…


나도 당신도 소중한 사람이란 걸…
우리 항상 잊지 말아요.


이 시간만큼은 풍성한 시간으로 채워졌어요.



아줌마가 된 뒤로는 그랬다.

요리해서 좋은 건 애들하고 남편부터

담아주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자투리 부분을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상관없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나 혼자 먹자고 요리하는 일도 드물었다.

남편, 딸, 아들의 서로 완전히 다른 입맛을

다 맞추어주느라 요리에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차라리 안 먹고 말지,

또 요리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여느 엄마처럼 이런 생활에 아주 익숙해져 있고,

별 다른 불만은 없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여행을 생각하면서도 이런 습관이 나온다.


무 취향. 아무거나 다 괜찮다.
가도, 안 가도, 별 상관없다.


습관처럼 가성비를 먼저 따져본다

이번 여행 가서 남는 게 더 클까?

이 여행, 나를 위한 '낭비'를 허락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를 위한 '절약'을 고수해야 할까?




이렇게 고민하며 망설이는 날 보고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저 여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디만 가자면 신나 하며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여자였는데...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구나…


뭐래, 남편의 놀림 따위는

가볍게 넘겨보려 한다.

그 정도에 긁힐 수는 없다.

그런데 속에서 뭔가, 확실히 꿈틀거린다.


그래... 나도 그런 모습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어디든 당장 떠날 수 있으며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다.

그게 그때의 낭만이었다.

단지, 젊은 날엔 젊음을 몰랐을 뿐이다.


나한테 아직도 낭만이 남아 있는가?


솔직히 귀찮은 마음이 크다

애들이 수련회 가기 전과 갔다 온 직후에는

손이 훨씬 많이 간다.

요즘 루틴으로 만들어 놓은

나의 러닝 습관도 깨기 싫다.

여행 가려면 신나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게 더 많다.


지금 내 하루는 너무 꽉 차있다.

충만하다는 말은 아니고,

만석이라 손님을 더는 못 받는 식당처럼

그냥 정신없이 바쁘다, 하루하루가.

매일 애들과 남편 밥해먹이며

자질구레한 것들 감당하기 벅찬데

거기다, 여행 계획까지 생각하라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들이 집을 잠시 비울 때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하고

밀프렙도 많이 만들어 놓고

방치된 가든도 좀 가꾸어 주고 하면,

이 정신없는 삶에도 구원의 빛줄기가 비칠 텐데.


게다가, 나가면 다 돈이다. 물 까지도.

물가가 너무 올랐다. 여행 가면

뭐 하나 먹을 때마다 고민해야 할 테고,

가서 돈을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갔다 온 후에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리고 내 육아의 훈장, 고질병 편두통.

여행을 가면 꼭 한 번씩 편두통 때문에 토하며

호텔에서 하루를 통째로 죽어지낼 때가 있다.

미국 국내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방문이나, 일본 여행 때도,

베트남여행 때도…


4일 중에 하루씩이나 호텔에서 죽어지내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집에서 그럴 때도 억울한데,

여행 가서… 특히 호텔 비싼 뉴욕에서 하루를

그렇게 낭비해 버린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행이란 그전 후로 내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나에게 그 파장을 감당할 에너지가 남아 있는가?

이 모든 걸 감당하더라도 여행을 갔다 오는 게

나한테 좋은 일이 맞는 걸까?


이제 나는 이것저것 재다 보면

날 위해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그냥 그런 재미없는 아줌마가 된 걸까.

왜 별로 내키지 않는 이유들만 찾아내는 걸까.

무엇이 정말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정말,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마음 흔쾌히 떠날 수 있을까.



* 유튜버 '해그린달'의 영상

[청소하고 싶어지는 영상 브이로그]

https://www.youtube.com/watch?v=M_35QbazHsk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