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직 과정 중에 있답니다만,
우리 딸은 뭐든 혼자서 잘 알아서 하는 편이다. 이제 14살, 이번 여름 지나면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라 아직도 갈길이 멀긴 하지만, 남동생도 지금의 누나처럼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어떻게 했길래, 딸이 혼자 알아서 잘하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 같기도 한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교육의 힘을 믿는다. 분명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렇게 타고났었네 라는 느낌만 남을 것 같아서 생각을 쥐어짜 본다. 아침에 달리면서 생각해 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객관성을 좀 높여 보고자, 학교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에 중학교 졸업할 때 8학년 ELA (영어) 선생님한테 최고 학생으로 뽑혔다. 능력 있고 인기 많은 Mr. Canonaco 한테 받은 상이라 아주 뿌듯했다.
그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한테 했던 이야기인데, "Via (우리 딸 영어이름)는 지금 당장 직장 생활해도 잘할 학생이에요"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고 예전에 딸이 전해주었다.
똑똑해요나 성실해요 등을 넘어서, 딸의 자기 주도적인 면 또는 독립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표현인 듯하다. 혹시 나만 딸을 자기 주도적이라고 생각하나? 하고 객관화시켜 보다가 생각난 에피소드니, 팔불출 엄마의 자랑질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아이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은 게을러야 한다.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딸이 아기일 때부터 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양말 신는데 십 분이 걸려도 혼자 하라고 했다. 그래도 완전 방치는 아니었다. 처음 한 두 번은 공을 들여 설명한 후, 너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천천히 해봐 하고 기다려주었다. 사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자면 답답해서 그냥 해주고 싶어진다. 물론 아주 바쁘게 외출 준비할 때는 내가 쉽게 해치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예외일 뿐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조급해하지 않기만 하면 될 뿐.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도 내가 떠 먹이기보다는, 옷이 다 더러워져도 혼자 먹게 두는 편이었다. 뭐 매사에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이건 많은 걸 귀찮아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기도 하다. 되돌아보니 게으른 엄마 덕에 아이는 더 독립적이 되었다.
딸이 5학년 때 우리는 타주에서 지금 동네로 이사 왔다. 미국은 주마다 법도, 환경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다시 이민온 느낌으로 새로운 동네 적응하기에 바빴다. 둘 다 공립학교이지만 수준 차이가 꽤 많이 났다.
새 학교로 오자마자 수업시간에 배우는 수학이 너무 쉽다고 나한테 이야기했었지만, 나도 이사 온 곳에 적응하기 바빠서 잘 신경 써주지 못했다. 우리 딸은 엄마가 무엇을 해주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수학시간에 좀 더 어려운 프로젝트 주었다. 수학 시간마다 딸이랑 수준이 비슷한 다른 친구 한 명을 교실 한쪽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따로 준비한 문제들을 풀게 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이미 그 학년에서 공부해야 할 것은 다 마쳤다. 그러자 선생님은 곧장 온라인으로 6학년 수학 듣는 방법 안내해 주었다. 따로 메모를 해서, 엄마한테 이렇게 등록해 달라고 하면 된다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막 휩쓸고 간 때라, 온라인 수업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다. 5학년 2학기 때는, 학교 교실에서 6학년 수학을 듣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이곳은 초등학교는 5학년 마치고 졸업, 6학년부터는 중학생이 된다) 6학년 수학코스를 다 끝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시작한 것이니 여름방학 때 집에서 마무리하면, 6학년 때 7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딸은 방학 때 플로리다 온라인 스쿨 어드밴스드 6학년 수학을 잘 마무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해준 건 없다. 밥 잘 차려주고 어디 가야 할 곳 있으면 데려다주고, 중간중간 아이 이야기 들어주는 게 다였다. 온라인 수업 듣고 시험 치고 마무리하는 걸 혼자서 다 알아서 했다.
그 코스 선생님이랑 일주일에 한 번 전화 통화하는 것도 아이에게 다 맡겼다. 보통 엄마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선생님이랑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좀 나누었을 것 같은데, 그냥 두었다.
내 영어가 짧아서인지, 내향적인 성격 때문인지.. 아무튼 나는 그런 일들은, 내가 진짜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면 그냥 둔다. 그럼 딸이 다 알아서 하더라.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한 학년 위인 7학년 학생들이랑 같은 수학 수업을 듣게 되어서, 본인 스스로 아주 만족해했다.
그 과정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칭찬의 포인트는, 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 가 아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찾아서 했다는 것! 수업시간에 그냥 여유롭게 놀 수도 있었을 테다. 엄마 아빠가 바빠서 잘 못 챙겨 줬지만 선생님께 스스로 요청하고, 안내받은 정보를 활용해 등록한 후 그걸 잘 이행했다는 것, 주도적으로 잘했다는 걸, 작은 단계마다 엄청 칭찬해 주었다.
칭찬을 두리뭉실하게 "잘했다"라고만 끝내면 효과가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특히 그 노력한 과정을 알아주고 칭찬해야 한다.
"어떻게 선생님한테 이야기 꺼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용감하게 잘했네!", "그냥 쉬운 수업 듣고 가만히 있어도, 아무도 뭐라도 안 했을 텐데... 기특하네!", "선생님한테 받은 정보 까먹지 않고 엄마한테 잘 전달해 줘서 고마워", "방학 때 들으려면 귀찮을 텐데 안 미루고 매일 조금씩 잘했네!" 등등처럼.
친구 엄마들이 그걸 우연히 알게 되어 딸 공부 잘한다고 부러워했다. 그때도 제일 뿌듯한 건 단지 한 학년 먼저 간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했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뿌듯해하는 부분이다.
그 일련의 과정은 거치면서 작은 걸림돌들이 많이 있었다. 그걸 하나씩 치우면서 딸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맛보았다. 처음 그 온라인 스쿨을 등록할 때, 선생님이 안내해 준 대로 했지만 한 번에 잘 되지 않았다. 온라인 스쿨 코스 담당하는 선생님이랑 연결이 빨리 안 되었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 그냥 두었을 것 같은 걸, 딸은 이메일 보내고 계속 체크를 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결국 연결이 되었다.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그 코스를 끝내지 못했다. 그래도 방학 때 부지런히 끝내서 중학교 시작 전에 마쳤다. 이렇게 작은 성취를 반복해서 맛보게 해주어야 한다.
매번 성공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조우한 작은 성취가, 다음에 다른 것에도 도전하게 만든다.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모든 것에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더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여태껏 해 온 게 조금 아깝지만, 혹시 방학 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안 한다고 하면 아쉽기는 할 테지만 진심으로 말했다. 딸은 생각을 좀 해 보더니 하겠단다.
어떤 일이든 이렇게 접근하면 책임을 묻기 쉽다. 아이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고 선택하게 해 왔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매우 중요한 일까지.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것부터, 악기를 고르고, 어떤 고등학교를 갈지 등등.
'오늘은 이거 먹자, 너한테 플룻보다는 피아노가 어울릴 것 같아.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그 고등학교를 가야 한대'라는 식으로 내가 미리 정해 놓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 나름의 정보가 있고 그게 더 고급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십사 년을 넘게 살아온 아이의 취향이 분명해졌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아이의 눈에 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졌다.
딸이 수영팀에 있으면서 체조 수업도 듣던 때가 있었다. 딸은 몇 번이나 이제 수영 연습은 안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까워서 좀 억지로라도 수영은 계속 시키고 싶었다. 솔직히 딸이 체조를 좋아하는 것이지 잘하지는 않았다. 딸이 체조에 비해 더 잘하던 수영을, 체조에 집중하기 위해 그만두고 싶다고 하니 속상했다.
효율을 따져도, 결과를 따져도 수영을 선택해야 했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하고 루틴대로 수영팀 연습 가는 길 차 안에서, 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 눈물을 보면서 정신 차렸다. 아, 나한테 벌써 세 번 넘게 이야기했었는데, 내가 들은 척 만 척하고 있었구나. 그래, 딸은 이미 충분히 생각했던 거구나. 그렇게 수영팀은 그만두고 체조에 집중해서 일 년 뒤에 체조 팀에 들어갔다.
팀의 다른 아이들보다 이미 나이는 많고, 그렇다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딸의 인생이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물론 나는 머리론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시간이 걸렸다. 올라오는 화를 몇 번이나 꾹꾹 눌러야 했다. 그래도 그건 내가 해결해야 할 내 문제였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것이라, 딸도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그에 대한 책임감을 확실히 갖게 된다.
앞에서 해온 이야기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부모나 보호자가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다 보고 있다. 아이들을 방임해 키우면서도 크게 걱정해 오지 않은 건 내가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나처럼 자기 것을 열심히 할 거란 걸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듣고 배우는 게 아니라, 보고 배우니까.
특히 아이들 공부시키기에 모든 걸 올인하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는 걸 보여주려 한다.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관심 있는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취미 생활을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땐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은근슬쩍 흘린다. 오늘은 엄마가 무얼 하며 이렇게 열심히 살았어. 요즘은 이걸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 등등. 그리고 내가 하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유튜브를 매우 좋아한다.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신기한 세상이다. 여행을 비디오를 보다 질리면 요리를 보고, 러닝 하는 사람들을 보고, 유퀴즈도 보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즐거운 세상에 넋을 놓기가 쉽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겠다. 그래서 나도 더 절제하려고도 한다.
아이들한테 당당하게 이야기하려면 일단 내가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책 읽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땐 말을 꿀꺽 삼키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내가 책을 읽는다. 핸드폰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내가 핸드폰 들고 있는 모습을 덜 보여주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따라 한다.
이 글을 적다 보니까, 하나 더 선물처럼 생각이 났다. 성적을 잘 받으면 보상을 해줄 거란 약속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내적 동기를 와해시킬 수 있다. 몇 년 전 학기 말 시험이 다가올 때 이야기다. 아이들이 친구들한테 들은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 성적을 잘 받으면 엄마 아빠가 큰 보상을 해준다고 약속 단다.
클레어는 All A를 받으면 아이폰을 사준다고 했다, 리암은 100불을 받기로 했다, 데이지는 디즈니 월드에 가기로 했다, 로건은 성적표에 따라 강아지를 사주고 안 사주고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사람들이 교육에 열을 내는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미국사람들도 만만치 않구나.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한테서 들은 딸이랑 아들이 나도 All A 받으며 선물 줘!라고 요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걸 성실하게 따라갔기 때문에 성적에 별 아쉬움은 없었다. 지난번에 아들이 B를 하나 받은 게 있어서 아깝긴 했다. 나도 All A 받으면 뭐 사준다고 약속할까? 잠깐 고민이 되긴 했다.
그런데 뭐가 좀 내키지 않았다. 한번 그러기 시작하면 왠지 중독의 늪에 빠질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원래 열심히 하던걸, 좋은 물건을 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좀 흔들릴 뻔했지만 중심을 잡았다. 그리곤 되물었다.
니 성적인데 왜 엄마 아빠가 돈을 줘야 해? 그 성적 잘 받는다고 엄마 아빠한테 뭐가 좋아? 아이들이 조금은 당황한 듯했다. 다른 집들은 다 그러는데...라고 말 끝을 흐린다. 논리로 안 될 거 같으니까 마구 우기기 시작한다.
둘이서 이럴 땐 환상의 팀이 된다. 세상 이렇게 사이좋은 남매도 없다. 브랜든도, 릴리도, 밴도, 엠마도... 친구들 이름이 다 나오는 것 같다. 상황 종료를 위해 난 한마디만 한다. "그럼, 그 집 가서 살아! 입양해 달라고 해!"
대신 아무 약속도 안 했지만, 큰 성취를 보일 때 깜짝 선물은 가끔 한다. 같은 상황에 안 할 때도 있고. 결과적으로 선물을 받은 게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미리 약속은 하지 않는다. 가끔은 조금 못 했을 때 선물을 주기도 한다. 위로하는 차원에서.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거야. 네가 잘했을 때만 선물 주는 게 아니야 라는 메시지도 평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잘했을 때만 보상을 해준다면, 그렇지 못할 때는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본인이 열심히 한 것에 대해서 내적인 보상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외적인 보상은 한계가 분명하다. 이번 시험에 평균 95가 넘으면 스마트 폰을 사주기로 했다고 하자. 원래는 별로 열심히 안 했던 아이가 그걸 목적으로 열심히 했고, 목표 달성을 했다고 하자.
그다음 시험에는 아이가 열심히 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걸어야 할까? 한계가 분명한 달콤한 보상은, 내적인 보상을 조금씩 좀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자기 주도'라는 단어 뒤엔, 당연한 듯 '학습'이란 단어가 붙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기주도학습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의 인생을 길게 보고 생각할 땐, 학습이 아닌 자기 주도라는 단어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인생을 짧고 공부하는 기간은 더 짧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응원하자.
소제목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도 아직 갈길이 멀다. 이 글이 괜히 설레발 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혹시나 이런 주제를 고민했던 분들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보다 더 이 문제에 대해 고민 많이 했던 분들, 경험이 많은 분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의 조언을 간절히 기다린다. 구체적인 방법이든, 관련 책이든, 이론이든 환영하니,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다.
요약.
아이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태껏 내가 찾은 어렴풋한 답들
1. 부모가 아이의 일에 대해서 조금은 게을러져야 한다. 그러나 방치는 금물
2. 결과의 크기보다, 과정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3. 작은 성취를 반복해서 맛보게 하라
4. 선택권을 주어라. 본인의 선택했기 때문에 책임지려고 한다
5. 부모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여주어라
6. 성적을 잘 받으면 보상을 해줄 거란 약속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내적 동기를 와해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