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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후회 안 할 결심

자녀교육, 선택과 집중의 연속

by 여행하듯 살고

선택과 집중: 나름 잘하지만 큰 관심 없는 수영 vs 덜 잘하지만 엄청 하고 싶어 하는 체조


딸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수영을 그만두었다. 체조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데 솔직히 체조는 좋아하는 것뿐이지 잘하진 못했다. 이미 또래들은 더 어릴 때부터 시작해 진작 팀에 들어가서 대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려서부터 해온 수영은 기본기가 탄탄해서 수영팀에 쉽게 들어갔었다. 대회에도 나가고 실력을 확 늘릴 수 있는 기회였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번 가면 두 시간씩 수영을 하니 체력 좋아질 일만 남았다.



학교를 마치고 수영팀 연습을 가는데 딸이 어느 날부터인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는 수영 말고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체조 레슨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는 있었지만, 팀에 들어갈 실력이 아직 안 된다.


지금 수영을 그만두긴 아까워서 토닥토닥하면서 계속 연습을 가게 했다. 잘해서 들어간 팀인데 그만두게 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누나가 그만 두면 같은 팀에 있던 두 살 어린 아들까지 그만둔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렇게 몇 주를 어르고 달래서 보냈는데, 어느 날 연습 가는 길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수영 연습 가기 싫다고 한다. 아-그렇게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인가. 지금 그만 두면 너도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일단은 참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 잡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체조에 집중하기 위해 수영을 그만두는 걸 허락했다. 그게 벌써 거의 4년 전 이야기이다.



하루하루가 선택의 연속이다. 점심에 뭐 먹을지, 저녁에는 어떤 요리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어떤 옷을 골라 입을까도 은근히 고민된다. 먼저 장을 보러 갈지, 은행 업무를 먼저 볼지도 선택해야 한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무지 고민이 된다.


아이들 키우면서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 대부분이다. 분만 때 무통주사를 맞느냐 마느냐, 아들 태어나자마자 포경수술을 시키냐 마느냐,


시작부터 뒤쳐지기 싫어서 디럭스 유모차를 사느냐 마느냐, 고가의 카시트를 거금 주고 사느냐 마느냐, 학군은 위해서 지금 이사를 가냐 마냐, 영유를 보내느냐 마느냐, 고액과외를 시키느냐 학원을 하나 더 보내느냐 엄마표 영어를 하느냐...


명품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유모차를 고를 때는 조금 많이 고민이 되었었다. 카시트를 고를 때도 가격이랑 안정성이 정비례하는 게 아닌 걸 알았다. 하지만 점점 높은 가격대를 알아보다 좌절하고, 그래도 미련 못 버리고 할 때가 있었다. 아이에게만큼은 무조건 좋은 걸 주고 싶었다. 아이들 물건을 고르면서 내 안에도 물욕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구나 발견했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하니, 선택은 단지 돈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돈은 물론 시간 노력까지 들일 각오를 하고, 다른 걸 포기하면서 선택을 해야 했다. 다른 것에 집중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를 하는 선택을 해야 할 경우, 여태까지 들인 돈 보다도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점점 더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졌다.


딸은 피아노를 배우며 비올라도 해봤고, 결국 풀룻을 선택했다. 여러 선택하는 순간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가지치기하게 된다. 매번 선택을 할 때마다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이거야! 하고 100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딸은 원하는 대로 수영을 그만두고 일 년 뒤 체조팀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두 번가고, 한 번에 세 시간씩 훈련한다.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주말에 대회도 나갔다. 딸이 선택했고 집중할 수 있게 허락은 했지만, 내 마음도 같이 쉽게 움직인 것은 아니다.


체조팀 연습에 데려다줄 때마다, 대회를 보고 있을 때마다 좀 속이 쓰렸다. 팀에서 나이가 많은 편인데,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엔 참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한다. 이곳에 산지도 십육 년이 넘었다. 미국 체조 국가 대표들만 보면 흑인, 동양인 백인 등등 인종적으로 다양해 보인다. 그런데 동네 체조팀이나 지역 대회에 보면 체조선수들은 90퍼센트 이상이 백인인 것 같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닌데, 확실히 백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동양인인 나에게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느껴진다. 문화적으로 다르다 이상의 어떤 보이지 않는 벽.


백인 우월주의가 알게 모르게 깔려 있는 사회인 것을, 학교나 사회에서는 크게 못 느끼다가 체조대회에 가면 왠지 더 와닿았다. 처음엔 그게 내가 가진 언어 장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도, 영어가 완벽해 보이는 동양인들도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걸 느낀다고 하니, 단지 나의 언어장벽이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인지 한인 2세들도 어려서는 여러 인종과 놀다가도 대학 가고 크면서 점점 더 동양인들끼리 모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문화적 인종적 벽 때문에, 딸이 체조를 선택한 게 못 마땅한 게 아니다. 솔직히 들여다보면, 딸의 실력이 문제였다. 만약 딸이 눈에 띄게 잘해서 내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으면, 어떤 인종이 유난히 많고 적은 것 따위는 신경 쓰일 것도 아니었다. 시간 돈 노력을 엄청들인 그곳에서 내 딸이 확 띄게 잘하지 않는 게 속상했을 뿐이다.


그럼 꼭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니 그곳을 훌쩍 떠나면 되는데, 내 사랑하는 우리 딸이 그곳이 그렇게나 좋다고 한다. 팀에 계속 있을지 말지 일 년에 한 번씩 결정을 해야 한다. 그 결정을 할 때에도 선택권을 딸에게 주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었지만, 아이 인생이니 존중해야지.


나는 내심 그만두길 바랐다. 딸에게도 좀 티를 냈었다. 사실, 많이. 대회가 주일에 많이 있어서 예배에 빠져야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돈도 너무 많이 든다... 그렇지만 네가 원하면 일 년은 더 하게 해 주겠다. 어차피 일 년 뒤면 고등학교에 가니 바빠질 테고,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될 테니까.


딸은 고등학교를 가서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못 들은 척했다. 정말 그때도 계속하려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이제 더는 체조팀 서포트 못해주겠다고 말해야지.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면 바빠도, 경제적으로 무리가 된대도 내가 계속 시키려고 하겠지!! 실력이 안 되는 걸 객관적으로 좀 보라고! 마음속의 소리가 딸의 귀까지 들릴까 걱정인데, 사실 이미 엄마 마음을 진작에 느끼고 있어서 좀 서운해하는 것 같다.


일 년 더 하기로 했던 체조팀을 갑자기 그만둔 건 친구들 때문이었다. 팀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그만 두자, 딸도 나름 쿨하게 그만둔다고 했다. 다들 현실을 알고 떠나는 분위기였다.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하니까.


어차피 체조를 잘하는 친구들은 너무 많고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친구들은 다른 것들을 선택했다. 체조는 즐길 만큼 즐겼으니까 이제 실속을 찾을 때도 되었지. 학교 배구팀을 들어가기 위해 그만두는 친구, 자기에게 더 잘 맞을 치어팀으로 옮기는 친구,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업에 열중하려는 친구 등등.



어릴 때 축구 일 년, 댄스 일 년, 스케이트랑 스키를 겨울마다 조금씩 다 경험했던 딸은 이제 수영도, 체조도 그만두었다. 취미로 하는 운동은 있을지언정, 고등학교팀에 들어갈 만한 스포츠는 없는 것 같다. 공부, 악기보다 운동에 완전 진심이었던 엄마로서는 매우 유감이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 한 이후로 무언가 조금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설레발 일 때가 많았다. 수영을 좀 하는 것 같으면, 나중에 선수하면 좋겠다, 스케이트를 좀 타니 김연아처럼 피겨를 시켜 볼까 하고 들뜨기도 했다. 그러다 한해 한해 지나며 현실을 자각했다.


어떤 종목을 하든, 우리 아이가 뛰면 그 위에 나는 애들이 수두룩 했다. 뭐, 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아이도 좀 날아가는 부분도 있으면 좋을 텐데, 날개가 없나 보다. 날개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날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도 뭔가 좀 아쉬웠다. 유튜브에는 영재도 천재도 넘쳐나던데...


아, 아줌마 정신 차리자. 운동을 일등 하려고 하는 거냐. 물론 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즐기면 되는데! 금메달만 기억하던 한국 사회에서 자라서일까? 뭔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 결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의식 저면에도 깔려 있는 것 같다.


은메달, 동메달 받았다고 아쉬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키우다 보니, 수영시키고 체조시켜 보니... 올림픽에 선발되어 나갔다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건데... 아, 일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


내가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라났다 보니 그런 압박감을 한 번에 다 버리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노력해서 서서히 녹여서 꼭 버려야 할 것들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하지만 말고 그 자체를 즐기자! 우리 딸 아들은 무얼 하든 그걸 기억하면 좋겠다.


그래도 현실 세계에선 내 아이들이 무엇을 하던, 해오던 것을 가지치기하고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오고야 만다. 시간과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때 아이들이 좋은 선택을 잘 내릴 수 있기를, 나중에 후회가 없기를.


꼭 운동, 악기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 방학 때는 수학 학원을 보낼까 영어 과외를 시킬까, 생일파티를 어떻게 해 줄까, 이번 휴가는 어떻게 보낼까... 끝없는 선택의 순간에,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을 잘 분별해 낼 수 있기를.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를. 선택했다면 다른 것에는 더 미련두지 말고, 그것에만 초 집중할 수 있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바란다.



딸이 수영을 그만둘 때 아들도 그만둔다고 팀에 말해버렸다. 내 짐작으로 아들이 누나 그만둔다고 하면 당연히 자기도 안 한다 그럴 것 같았다. 나중에 아들한테 확인해 보니 누나가 그만두어도 자기는 계속하겠다고 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어설픈 게 많다. 그래서 부랴부랴 팀에 연락해서, 아들은 계속해도 되냐고 물었다. 이미 코치한테 찍힌 뒤였다.


암튼, 그게 아들 3학년 때 일인데 곧 7학년 들어가는 아들은 아직도 수영팀에 있다. 점점 더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게 보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2025년 6월 12살 아들이 처음으로 Event 1등한 순간. LCM 50 Meter Breast 37.43

아이들이 같은 액티비티를 하면 한 번에 라이드 할 수 있고 다른 신경 쓸게 줄어서 좋았다. 어쩌면 그거 때문에 내가 딸이 계속 수영을 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효율성 때문에. 누나가 수영팀을 떠나고는 아들이 좀 더 수영은 '자기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부분 때문에 아들은 더 수영을 즐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아빠의 관심이 대부분 첫째에게 쏠려 있는데, 이제 진짜 자기만의 활동이 된 것이니까.


이렇게 되돌아보니, 내가 그때 딸의 선택에 속 쓰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딸은 운동 악기 공부 등등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선택하고, 그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도 수영에 더 집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선택이 미더울 때가 있다. 충분히 다른 선택지를 주었지만, 그걸 선택했다니... 내 상식 내 기준으로 볼 때 이해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닥치면 나는 속상해할 테지. 그래도 한걸음 떨어져서 아이를 응원하려고 한다. 최선을 다해 길을 터 주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택하던지, 그건 아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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