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적 엄마 박혜란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또 여름 방학이 왔다.
이곳 플로리다의 여름방학은 아주 길다.
5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두 달이 넘는다.
아무튼 아들도 중학생이니 이제는 뭘 좀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무언의 압박이 생겼다.
그런데 아들은 방학인데 왜 무엇을 해야 하냐고,
아무것도 안 하겠단다.
고등학교도 가기 전에 공부하라고 푸시하다가
성과는커녕, 나중에 사이만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나도 쉽게 포기한다.
그래도 마음 한켠은 찝찝하다. 이번 여름 지나면
7학년인데, 한국에 있는 또래들은 이미 공부모드로
들어간 아이들이 대부분일 터였다.
멀리 한국까지 아니더라도 미국에서도
중학교부터 어려운 단어 외워야 한다,
이제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해야지
아니면 늦는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곳의 국어나 마찬가지인 영어는 좀 불리한 면이 많다.
집에서는 한국말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기본적인 자극이 일반 미국집 보다 당연히 적다.
그래서 온라인 스쿨에서 북클럽 같은 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단호하게 거절한다.
방학이라고.
놀 거라고.
수학은 학교에서 이미 두 학년 먼저 듣고 있어서
그걸로 위안 삼으려 한다. 오늘도 정신 승리다.
아들은 아침에 수영 연습을 하고 오면
그때부터 방에서 뒹굴 거리며 논다.
드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그럼 바이올린 연습이라도 학교 다닐 때보다는 좀
길게 하자고 사정을 해도, 딱 삼십 분 연습하면 땡이다.
책도 좀 읽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전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심지가 곧으신 분이시다.
스마트폰이 생기고는 망했다.
학교 공부 잘 따라가고 성적도 잘 받는데 내가 왜
방학 때 뭘 더해야 하냐고, 저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그래 지금 학교에서 하는 만큼만 하면 알아서
웬만한 대학은 가겠지.
그런데 엄마가 하자는 대로 조금만
더 하면 탑 대학도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생길 테고,
장학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텐데…
나중에 후회해 봐야 그땐 늦을 텐데…
나이 들어갈수록 전문직 친구들의 빵빵한
경제력과 사회에서 받는 대우를 볼 때
‘이래서 어른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했었구나'라고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공부
많이 해서 꼭 전문직에 종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나중에 큰 후회가 없길 바랄 뿐이다.
큰 명예와 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지난날 만들어 놓은 성과가 없어서
그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해서.
무얼 좀 시켜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수영과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것 외엔
하루 종일 노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맘껏 놀다 보면 학교 수업 때는
최소한 더 집중하겠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사실 아들에 관해서는 걱정이 좀 있다.
두 살 많은 누나는 뭐든 스스로 잘 알아서 해왔다.
학교 공부는 물론이고, 시키지 않아도 클럽이란 클럽은
다 참여해서 대회도 나가고 상도 종종 받아 온다.
그런 딸 덕분에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를
길러낸 부모가 되어 버렸다.
그 때문인지 친구 부모들도 딸아이를 좋아하고,
우리 딸이 하는 것이라면 자기 아이도 해도 된다며
신뢰를 받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엄마 아빠는 둘 다 MBTI의 P라서
꼼꼼한 계획을 세우는 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 딸은 돌연변이로 J 다.
아들은 기질적으로 누나랑 많이 달라 보였다.
엄마 아빠를 닮아서 P인데,
누나한테 안 간 것까지 다 받은 건지 초초초 극 P이다.
초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전하라는 이야기를 집에 와서 얘기한 적이 몇 번 없고, 나도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체험학습 돈내기, 점심값 내기 정도 아주 중요한 것만 체크했다.
아들의 세세한 걸 모두 챙기기에는 내 삶이 너무 바빴다.
졸업 직전 놀이동산으로 종일 놀러 간 날 학교 티셔츠를 입지 않은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다는 걸, 마칠 때 데리러 가서 알았다. 그날 아침 학교 가는 건 스쿨버스를 탔고,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는 아이 혼자 나가서 우리 아이만 다른 옷을 입었다는 걸 몰랐다. 딸아이는 그 나이 때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빠짐없이 다 따라 했었다. 아들도 그럴 줄로 믿었는데.
그날 아들이 차에 타자마자 “너만 학교 옷 안 입고 갔었나 봐, 선생님이 했던 말 기억 잘했어야지! 엄마는 직접 들은 게 아니잖아!”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사실 가정통신문을 열심히 안 읽어서 그랬지 거기 적혀 있었다. 돈 만 내고 제대로 신경 안 쓴 내 책임도 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나 만 그런 거 아니고 두 명 더 있었어!”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들의 저 쿨 한 성격 때문인지 어딜 가나 친구들이 많이 따르는 걸로 위로 삼으며, 애써 나의 민망한 마음을 지우려 노력해 본다. 그래, 부끄러움은 니 몫이 여야 하지. 네 인생이고.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했지만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아들을 보며, 이제는 좀 더 맡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나하나 다 챙겨주기 시작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후까지도 신경 써줘야 할 게 많을 거다.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것을 챙기는 연습 해야지. 이제 그럴 나이 되었으니까. 누나도 하는 걸 다 봤으니까.
주변 엄마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딸이랑 아들은 정말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들은 안 챙겨주면 자기가 성적을 받든 말든 신경을 안 쓰더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기본 이상으로 챙겨줘야 한다.
자기 인생에 별 관심 없는 게 아들이더라.
이런 말을 들으면 난 흔들렸다. 난 팔랑 귀를 가졌으니까. 나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하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게 더 현명한 거겠지? 즉흥적이고 항상 무얼 빠뜨리는 아들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가 전에 읽은 박혜란 작가의 책을 떠올렸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아들 셋 다 서울대를 보냈고, 특히 그 둘째 아들이 싱어송 라이터 가수 이적이라고 한다. 이적 같은 아들 키운 엄마는 대체 어떻게 교육한 걸까? 어떤 특별한 교육법이 있었겠지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보통 육아 교육책 같이 '이렇게 했다', 어떤 환경을 조성했고, 엄마의 잘 짜인 플랜에 따라 서울대에 합격했다 등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독특한 교육관과 실천만 보였다. 예로, 고 3 아들을 남겨 두고 본인의 일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었다. 아이들 학교 성적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 결과 초등학교 때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부터 공부가 재밌다며 아이들 스스로 성적을 올렸단다. 둘째 아들 (이적)이 고등학교 올라가는 막내에게 한 이야기를 보면 어떤 환경이 었었나 확실히 이해가 간다.
"야, 너 괜히 어머니를 믿었다가는 큰일 난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 혼자 알아서 해야 해.
어머니는 너 대학 못 들어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실 거야." p.155
그 글을 읽는 순간 딱 이거다! 싶었다. 그래, 딸도 내가 챙기지 않으니까 점점 더 스스로 하게 된 거잖아! 아이들의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챙기려니 힘들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니. 이런 기쁜 소식이 있나!
꼭 좋은 대학을 가야만 인생 성공한 것도 아니니, 만약 스스로 하게 뒀다가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못 가더라도 그만이다. 인생 길게 봐야지. 좋은 대학 가는 것보다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생각에 신나서 부풀어 올랐다. 잠깐은.
그러나 이내 내 팔랑귀로 흘러들었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애들 어려서 아직 몰라, 특히 남자 애들은 늦게 철들어. 나중에 왜 어렸을 때는 신경 안 써 주었냐는 얘기해. 당장엔 싫어해도, 나중에는 그렇게 시켰던걸 고마워한다니까! 내 말 믿어." 아이비리그 대학에 아이를 보냈던 선배 맘이 했던 말이다. 팔랑 대는 귀를 부여잡고,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논리적으로 따져본다.
1. 아들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잘 알아서 해서, 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Best)
2. 아들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했지만, 누구나 학비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대학에 간다.
3. 엄마가 옆에서 좋은 정보들과 자극들을 줘서, 그대로 잘 따라해 탑 대학에 합격한다.
4. 엄마가 옆에서 좋은 정보들과 자극들을 주었지만, 아들은 끝내 공부는 안 하고 둘의 관계만 나빠진다. (Worst)
박혜란 작가처럼 1번의 결과를 얻으면 제일 좋은 건데, 그런다는 보장이 있나. 3번처럼 된다는 확신이라도 있으면 당장 실천하겠는데... 그러다가 4번이 될 수도 있으니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러면 그냥 스스로 하게 놓아두었을 때 잘되면 1번이고, 잘 안 되어도 2번이니까 그러면 답이 나왔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이에게 맡긴다.
아이 인생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떤 불편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좋은 대학 가지야만 인생에 성공한 건가? 아이가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면 꼭 대학을 안 가고 그쪽 길로 일찌감치 나가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대학이 뭣이 중요한디?
그런데 특출 난 재능이 보이지 않을 경우 일단 학생일 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현명한 것 같다. 12년 넘게 자세히 관찰한 결과, 우리 아들은 아주 평범한 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원래 고민으로 돌아가서, 아이에게 맡겨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스스로 본인의 시간을 잘 활용하게 두어야 한다.
머리로 내린 결론을 따라가자면 답답해도 아쉬워도
그냥 못 본척하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보고 있자면, 열두 살 꼬맹이가 빈틈이 많은 게 계속 보인다. 조금만 체계적으로 계획해서 시간 활용을 잘할 수 있게 해 주면, 이 방학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능력을 키울 수 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남는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하다. 차갑게 머리로 생각한 대로 살면 인간미가 없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받게 된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게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정말 아이가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계속하는 나를 보면서 현타가 왔다. 이게 뭐냐? 왜 아이들 것에만 내 시간과 신경을 다 써버리는 거지? 내 일이 바빠지면, 그 고민할 시간도 줄어들 테고 자연스레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나누게 될 터였다. 그걸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라이드를 해야 할 시간이 더 많아지고, 성장기 아이들 건강하게 잘 먹이려니 내 시간 대부분을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는데 쓰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미루게 되었다.
그래, 브런치 글쓰기도 일 년 가까이 멈추면서 방치했었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확실한 결심이 선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이한테 맡겨버리자. 아이 인생이니까. 대신 엄마가 자기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면 그 모습 보고 배우지 않을까?
아들에게 결심한 걸 통보했다. "아들, 이제 엄마가 바이올린 연습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게. 책 읽으라고도 얘기 안 할 거야. 아웃스쿨에서 무슨 좋은 수업이라도 들어보자는 말도 안 할게. 네 인생이니까, 이제부터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거야. 언제까지 엄마가 하나하나 다 하라고 얘기해 줄 수 없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해방감에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들반응이 재밌다. "어? 뭐라고? 왜?? 그건 엄마가 알려줘야 하는 거잖아?"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내가 요즘 가지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해 준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책을 읽고, 나도 이렇게 해야겠구나 결심했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쿨하게, 알았어라고 말할 줄 아들이 적잖게 당황한다.
그리고 강하게 싫다고 한다.
"엄마가 계속 얘기해 줘, 내가 까먹을 수 있잖아!" 아들의 반응이 이렇게 나오자 난 점점 확신에 가득 찼다. 그래 이거구나. 이게 답이 구나. 그럼 자기가 좀 더 알아서 하겠지. 처음에 물론 시행착오도 있을 거야. 그러다가 점점 잘 다져질 걸 믿자! 자기가 해야 되는 것들 스스로 챙기면서, 주어진 시간 더 잘 쓰려고 노력하는 날이 오겠지?
낮에 아들 상대로 작은 승리를 거두고 종일 의기양양해 있는데,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아들과 있었던 이야기, 이적 엄마의 책 내용을 듣던 남편이 말한다. 이적은 엄마 아빠도 서울대 나왔다 그러던데? 그 식구 다섯 명 모두 서울대라고. 너랑 나는 서울대를 안 나왔어. 공부는 유전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 책 따라 한다고 애가 서울대 가겠어? 할 말이 없다.
내가 이야기한 포인트는 그게 아니잖아? 좋은 대학 가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된다고! 아이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지금부터!! 그리고 혹시 또 알아? 어쩌다 갈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