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었더라면...
"엄마는 그럼 누구야?"
"크롱!"
"그럼 너는?"
"뽀로로!!!"
"내가 루피도 아니고 크롱이래ㅋㅋㅋㅋㅋ"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한테
낮에 딸아이가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 아빠는 뭐래?"
"포비."
11년 전, 세 살이 된 딸이랑 나눈 대화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막 웃고 넘겼던 이야기를 십 년 동안 곱씹었다. 곱씹을수록 마냥 웃을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매일 맛난 거 챙겨주는 엄마가, 뽀로로의 엄마 같은 친구 루피도 아니고 똘마니처럼 데리고 다니는 크롱이란다.
뽀로로를 몇 편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뽀로로는 가끔 말썽을 피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이고, 루피는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는 엄마처럼 다정한 친구, 포비는 아빠처럼 듬직한 친구, 크롱은 뽀로로가 시키는 대로 하는 동생 같은 친구라는 걸.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거부했던 나는 딸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딸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이라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매사에 딸의 의견을 존중했다. 존중을 넘어서 내 생활을 그 아이의 의견에 맡겼다. 갓난아기 때부터 잠자고 먹는 시간을 지키는 것 이외에는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했다.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면 읽어 주었고, 놀이터에 계속 놀고 싶다면 서너 시간도 거뜬히 기다려 주었다. 육아 휴직 중이라 나는 오롯이 아이 기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었다. 어려서부터 두 언니에게 나를 맞추는 게 편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누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딸이 만 두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아직 갓난 아가는 몰라도 첫째는 다 알고 있다. 첫째가 동생을 갖게 된다는 건, 남편이 첩을 데리고 와서 한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니 둘째가 울더라도 첫째한테 더 신경을 많이 써주어야 한다. 첫째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주어야 한고, 둘째 보다 먼저 안아 주는 것이 좋다.
논리적이고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라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둘이 동시에 울고 있으면 첫째 아이를 먼저 안아주었다. 둘째가 막 잠에서 깨어 눈 마주치고 옹알이를 할 때에도, 첫째가 내 관심을 자기에게 끌어가려고 하면 주저 없이 응했다.
그렇게 일 년이 넘게 지났고, 동생도 자기주장이 강해지기 전까지는 평화로웠다. 물론 오리가 평화롭게 물에 떠 있을 때에도 수면 아래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처럼, 엄마의 몸은 바쁘긴 해도 말이다. 난 주변에 갈등이 있으면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더라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몸을 조금 더 많이 움직이더라도 두 아이들의 요구를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다.
둘째가 걷기 시작하고 동시에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일이 많아졌다. 동시에 엄마를 부르는 일도 많아졌다. 이제 내 몸 하나 가지고는 빗발치는 요구를 다 받아내는 게 불가능해졌다.
둘째를 낳고도 이 년 가까이 첫째의 요구를 항상 먼저 들어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둘째도 다 알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계속 누나의 요구만 먼저 들어주는 것이 불공평했다.
그래서 이제는 둘 다, 모두에게
공평한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 년 평생을 살아온 딸아이의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공평해지려는 엄마가, 첫째에게는 세상 불공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었으니까. 동생이 한 단어 두 단어 말하기 시작하며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데 옆으로 누나가 와서 똑 부러지고 명료하게 엄마에게 부탁을 한다. 자연스레 누나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려다가 멈칫하고, 그동안 우리 가족 내의 다이내믹을 기억해 낸다.
그래서 이번엔 동생이 먼저 왔었고 네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상기시킨다. 그러면 누나는 또 동생먼저냐고 서운해한다. 나는 그동안의 역사를 떠올리며, "여태까지는 너한테 다 맞춰주지 않았냐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교육학을 전공했고 선생님으로 일했던지라 교육 이론을 행동으로 완성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니까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변수가 너무 많았고 타고난 기질이란 것도 한 몫했다. 열에 아홉은 조곤조곤 말로 설명했지만 어쩌다 한 번씩 폭발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어떻게 세상이 다 너 중심으로 돌아가겠어?
엄마는 지금 우리 먹을 밥도 차려야 하고, 동생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저기 산더미처럼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지금은 너랑 같이 놀 수 없다니까! 그냥 혼자 좀 놀아!!!!" 잠깐만 기다려라는 말을 듣고 5분에 한 번씩 "지금 와서 해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아직 다 안 됐어?"라고 보채는 딸에게 결국 소리를 질렀다.
딸이 세 살이었을 때,
자기는 뽀로로, 아빠는 포비, 엄마는 크롱이라고
했던 말이 자주 떠오른다.
그냥 웃고 흘려보낸 이야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하게 곱씹게 된다.
강아지는 가족의 서열을 아주 정확히 파악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그 집의 가장 어린 사람은 무시하고 자신을 그 위 어디 즈음으로 여긴다고 들은 적이 있다. 강아지도 아는데 아기라고 모를까? 그때 막 세 살이 된 딸은 엄마는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하는, 크롱 같은 동생 즈음으로 여겼었나 보다. 웃을 일이 아니라 그때 상황을 파악했어야 하는데.
딸은 엄마를 좋아하지만 무서워하진 않는다. 아빠는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한다. 그렇다고 행동에 제약이 생길 정도로 무서워하진 않는다. 다만 아빠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거나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바로 말을 잘 듣는다. 그런데 엄마가 야단을 치면 잘 듣지를 않던지 아니면 같이 언성을 높인다. 엄마가 더 소리를 지르며 불 같이 화를 내면 그제야 꼬리를 내린다. 내가 평소에 그냥 잘해주고 너무 만만하게 보였던 걸까?라는 반성을 한 후 좀 더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결심한다.
단호한 엄마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천성이 뭐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 아이들도 엄마를 '말랑이'라고 놀린다. "엄마 5분만 더, 딱 5분만 더"라고 물으면 계속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 그냥 "알았어"라고 할 때가 많으니, 내가 봐도 말랑이가 맞다. 아무튼 그래도 결심한 대로 노력해 본다. 조곤조곤 설명해 주면 이해하고 잘 따라온다. 아이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조곤 조곤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될 때가 많은 게 문제다.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점점 커가는 딸을 교육하려고 보니 태도와 연결된 인성이 교육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이 교육이라는 건 수학이나 언어 같은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학문적인 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스킬과 능력을 말한다.
평생 배우고 살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상대의 권위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아이로 키워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길러지면 문제가 더 크다는 걸 안다. 내가 바라는 부모 자식 간에 필요한 권위는 이런 것이다. 부모는 합리적으로 이해시키며 교육하고, 자녀는 기본적으로 순종하되 납득 가지 않는 건 대화로 정정해 가는 모습.
똑 부러지는 다섯 살 나의 딸은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아이라 무얼 하나 제시했을 때 고분고분한 법이 없었다. 자기 나름의 논리가 강해서 엄마가 말한 건 지금 자기가 들을 필요가 없단다. 그러면 나는 긴 설명이나 설득을 시작한다.
긴 설명 끝에 아이의 동의를 얻어내고는 제대로 교육했다는 잠깐의 기쁨을 얻는다. 그런데 매사에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진이 빠진다는 느낌이 든다. 똑똑하면 그런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잠깐 위안이 되는 것 같다가도, 딸과 내 관계가 뽀로로-크롱 관계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천천히지만 딸아이의 태도 가 바뀌어 갔다. 키우는 건 힘들었지만 이제 틴에이져인 딸은 사랑스러운 아이로 잘 커가고 있다. 어렸을 땐 좀 걱정했었다. 나랑 부딪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랑 이렇게 트러블이 있으면 어쩌지? 하고. 이걸 보면 문제는 천성이 아니라 나의 교육 방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태도를 가르쳤으면, 그렇게 진이 빠질 일도 적었을 것 같다. 비슷한 기질을 가진 둘째는 갓난 아가 때부터 울어도 바로 못 안아 줄 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울고 보채는 횟수도 줄어들었었다. 첫째한테 보다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상황에서도 더 빨리 엄마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보인다.
첫째 둘째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내 양육 태도에 따라 아이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이렇게 글로 남긴다. 기질이 비슷한 두 아이를 직접 키워본 경험으로 말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고난 기질이 중요하지만, 교육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금쪽이"들은 부모를 포함한 교육자의 권위를 존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금쪽이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금쪽이들의 문제를 파고들어 분석하다 보면, 교육의 방법이 어떻게 잘 못 되었던 것인지 시청자들도 한눈에 알게 된다.
만 두 살이면 아이들은 자의식이 막 생겨나 고집이 세진다고 한다. 그래, 만 두 살이면 한국나이로 세 살이지... 내 경험상 세 살 이후에도 행동이 바뀔 수 있지만, 더디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더라. 그래서 세 살 버릇을 강조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옛말 틀린 것이 없다고 저 마음 깊은 곳서부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교육의 주도권 쟁탈은 세 살 이전에 해야
평생 갈 자녀교육이 조금은 수월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