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방치로 볼 수도 있겠으나,
뒤뚱뒤뚱 걷던 오리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보트 위에 앉은 듯
미끄러지며 물 위를 떠 다닌다.
그 장면의 수면 아래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수면아래 오리의 발길질과
우아하게 유영하는 오리의 모습.
물을 경계로 맞닿아 있는 두 장면을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다.
사실, 잔잔한 수면아래 오두방정을 떠는
발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오리는 유유자적 앞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거 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의 발.
아이가 물 위에서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게 돕는
엄마 오리발.
쿨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내 신경이 온통 딸 아들에게 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냥 놔두면 더 잘 큰데,
아이들 너무 쪼으면 안 돼,
그 나이 때 꼭 그걸 해야 한다는 법이 있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아이들이 무얼 한다 그러면 나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반영한 내 육아의 모습은 이랬다.
쿨한 척했지만,
오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물 밑에서 발을 동동동 구르기.
물 위에 떠다니는 우리 딸 오리 아래서
제대로 발을 씨게 굴러본 기억이 있다.
물론 호숫가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다.
심지어 오리도 자신도 알아챘나 모르겠다.
아무튼 작년 여름 일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당시 일기를 옮겨 본다.
2024.7.2
딸 혼자 멀리 있는 친구집에 자전거 타고 보내기
어제, 요 며칠 버릇없이 군 딸에게
제대로 교육해 보자고 각 잡고 있는데,
딸이 친구 집에 놀러가기러 했다고,
데려다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퉁명하게 'No' 했더니
이내 자전거 타고 가도 되냐고 물으러 왔다.
그 친구집까지는 차로 15분.
구글맵에서 자전거로 30분이면 간다고 나왔단다.
그래 자전거 타고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가라고 승낙해 줬다.
'난 안 태워 줄 거야,
요 며칠 너 엄마한테 버릇없이 했지?!'
엄마한테 함부로 하다가,
자기 필요한 거 있을 때는 와서 살랑살랑 애교 떨고…
그 나쁜 버릇은 고쳐야지.
딸한테 쿨한 척 말했지만, 내심 걱정이 된다.
어른들도 자전거 사고가 워낙 많으니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믿고 맡겨 보련다.
지금 딸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막히면
어렵게 돌아가서라도 해내는 걸 연습하는 중이다.
플로리다의 7월은 한국의 장마철 습도에,
열대지방처럼 해까지 줄기차게 내리쬔다.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 날씨에 대해
조금 더강조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플로리다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시기는 에어컨 개발 직후라고 한다.
반대로 짚어보면 에어컨이 없으면
사람 살 데가 못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되도록 밖에 안 나간다.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면 모를까.
그리고 이곳 플로리다 교외지역에서는
모두 차를 타고 다닌다.
특히 여름 땡볕아래서는 더욱.
운동하려고 걷는 사람은 있어도
장을 보러 가거니 지인집에 갈 때
3분 이상이면 무조건 차를 타고 다닌다.
한국처럼 5분 10분 걸어서
어디를 가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딸은 더위를 싫어한다.
눈을 많이 그리워한다.
그런데도 땡볕에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한다.
딸아 응원한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했다.
내가 왜 화났는 줄 딸도 아니까
진짜 싹싹 빌면서 잘못했다고,
앞으론 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싶기도 했다.
사실 그러면 태워주려 했다.
(그렇게 심하게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자기 기분 안 좋다고 친구들한테는 안 낼 짜증
같은걸 며칠 째 나한테 찔끔찔끔 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기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듯.
그래 그럼,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다.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고
지금 글을 적는 이 시간, 삼분의 이쯤 간 것 같다.
지금 난 아이폰의 Find My 앱으로 지도에서
딸의 핸드폰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있다.
딸이 이 사실을 알면 스토커라고 기겁할 테다.
그래도 엄마는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는지,
사고가 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는 시간 내내 눈을 뗄 수가 없다.
해리포터랑 친구들이, 호그와트 맵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 딸 이동 경로를 녹화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이렇게 딸을 길렀다고
얘기라도 하고 싶었나. 암튼.
어제 자전거 타고 가라고 허락하고는,
‘그래 난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입가에 미소를 물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밀고 들어오는 걱정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냥 믿는 것 만으로 모두 딸한테 맡겨버리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하다
그래서 사전답사를 감행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자전거 타는 코스를 바꿨다.
딸이 가기로 한 친구집까지 자전거로 왕복해 보기.
내가 원래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는 코스는
집 근처에서 인기 있는 곳이다.
아침에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반면에 그 친구집 가는 길은
큰 길가를 따라가야 해서 차도 많고,
중간중간 신호등이 많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해서
이건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보기 힘들다.
단지 자전거를 이동 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는 코스다.
가는 길 보행자 도로가
대부분 넓고 쭉 잘 연결되어 있지만
친구집 거의 다가서 마지막 1/4 정도 되는 거리에서
보행자 도로가 잠시 끊어져있다.
신호등 건너서 좌회전하려고 했는데
길이 끊기는 바람에 당황해서
일단 아래로 쭉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가야 하는 도로 한편에 자전거 차선이 있지만
차가 너무 빨리 달리는 곳이라
사이클 선수가 타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와 보길 잘했다.
딸이 그냥 쭉 가다가 그 길을 만났으면 당황했겠다.
금방 자전거를 돌려 방금 건넌 신호등을 다시 건넜다.
신호등 건너자마자 우회전을 해서,
원래 가려 전 곳의 반대쪽에 있는
보행자도로로 올라탔다.
방금까지 오던 넓은 보행자도로 보다 많이 좁다.
걷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멈춰 서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도로 갓길에 그려진 자전거 차선보다는 낫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 후로 이어지는 길은 좁기는 하지만 적어도 안전하다.
그럼 딸이 오늘 자전거로 와도 되겠다.
정말 만족스러운 길이 아니지만,
내가 태워줄 순 없다.
나는 오늘 딸의 교육을 위해서
태워주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딸이 고쳐야 할 건 고쳐야 한다.
사전 답사가 꼭 필요했다.
뿌듯하다.
자전거 운동 평균 시속도 떨어지고,
평소 운동 후 느낀 상쾌함도 찾아볼 순 없었지만
엄마 미션 수행 완료.
이보다 더 개운하고 성취감 높은 일도 없다.
딸이 출발하기 전에 무심한 듯 얘기해 주었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그 친구네 집까지 자전거 타보고 왔어.
길이 다 좋은데 cross creek 만났을 때
신호등 건너면 갑자기 길이 끊어져.
그쪽으로 건너지 말고 신호등 건너기 전에
바로 좌회전을 하면 만나는 보행자 도로로 계속 가.
길이 좁아지니까 반대편에서
사람이 걸어오고 있으면 잠시 멈춰야 돼.
거기만 조심하면 가는 길은 무난해"
내가 태워주면 서로 편하다. 당장에는.
에어컨 빵빵하게 튼 차 안에서
왕복 삼십 분 보내면 끝이다.
효율을 따지면 그냥 태워주는 게 맞다.
실제로 내가 거게에 쓴 시간과 정성은
훨씬 더 많이 들었다.
아침 자전거 사전 답사 한 시간,
딸이 가는 내내 마음 졸일 삼십 분
하루 넘게 벌인 신경전...
그래도 양보할 수 없다. 딸을 교육할 좋은 기회다.
헬리콥터 맘처럼 필요한 거 족족
다 재깍재깍 해주고 싶지 않다.
엄마한테 함부로 했으면,
그에 상당한 보응도 해주려고 한다.
엄마니까 다 받아줘야지 하는 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가끔 투정 부릴 여지는 물론 남겨 둔다.
사실 난 말랑한 엄마다.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웬만하면 다 하는.
그렇지만 내가 아이의
감정 쓰레기 통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도 우리 가족들에게
내 더러운 감정을 투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가족이라면 더더욱 신경 써야 한다.
딸은 그 친구집에서 자고 다음날 오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갔으니 타고 올 수밖에.
그런데 내 미니밴에 자전거가 쏙 들어가긴 한다.
그래서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통화에서
딸한테 슬쩍 말했다.
자전거 다시 타고 오던지,
아니면 엄마 차 타고 돌아오던지.
제대로 사과하고 엄마가 요구하는 거 하겠다고 약속하면, 네가 오고 싶을 때 데리러 갈게.
다음날 아침 딸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데리러 와줘. 짜증 낸 거 진짜 미안해."
"그래 알았어. 그럼 엄마가 데리러 가는 대신
엄마랑 같이 두 번 운동하러 가자."
그렇게 딜이 성사되고 일은 마무리되었다.
내 입이 귀에 걸렸다.
실룩실룩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다.
단지 딸을 이겨 먹어서가 아니다.
딸이 이 작은 이벤트에서
얻은 교훈이 많은 것 같아서다.
나도 교훈을 얻었다.
그 주간에 뉴스에 나온 이야기다.
미국 어느 마을 여고생이 대낮에 자전거로
이웃 마을에 가다가 실종당했단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교육은 좀 더 순화해서 해야겠다...
쿨해 보이고 싶지만 진짜 쿨하게
아예 신경 안 써버리는 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는 그냥 방치가 되어 버리기 쉽다.
그냥 내가 좀 허우적 대더라도
아이들이 바르게 멋지게 잘 자라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물밑 오리발이 되리이다.
이런 내 교육 방식을 보면
조금 차갑게 보일 수도 있겠다.
아이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게
돕는 과정에서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방치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을 테다.
건네들은 얘기로는 남걱정 많은 지인이
내가 내 아이를 방치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극히 일부분만 보면서 타인의 얘기를 제삼자에게,
자기가 다 아는 듯하는 사람.
그냥 타산지석으로 삼고 넘긴다
이번 친구집 자전거 건도 언뜻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저 더위에 애가 불쌍하다...
엄마가 좀 태워주지, 뭐 하는 건가?라고.
아무튼 상관없다. 보여주려고 교육하는 거 아니니까
내 딸이, 아들이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기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진짜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거니까.
기억에 강하게 남은 이런 일들 말고도
비슷한 '오리발 동동동'은 일상 다반사다.
허우적 대는 듯
촐랑대는 듯
멋없는 그 동작이
오리를 매끄럽게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오리발을 자처하며
발을 동동동 굴러 본다.
대신 아이들한테는 비밀로하고.
아이들은 자기 혼자서도 잘 크는 줄 알고 있으니까,
그 성취감을 굳이 깨부수고 싶지 않다.
지도 자기 자식 낳아 길러보면 알게 될 테지.
엄마가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안 보이는 곳에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응원했는지를.
사실 나 역시도 몰랐었다.
내가 아이 키워 보기 전까지는.
중풍병으로 누워 계신 시어머니를 평생 모시느라
우리 한테는 신경을 잘 못써준 엄마.
갑갑한 했던 엄마는 탈출구로
신앙생활에 푹 빠졌었다.
할머니 돌보느라, 교회 예배며 모임 출석하느라
꼼꼼하게 우리를 챙기지 못했던 엄마였기에
나랑 언니들은 우리가 그냥 스스로 큰 줄 알았었다.
이제는 안다.
엄마가 매일 도시락 싸고 따뜻한 밥 해대며
얼마나 든든하게 그 자리 지켜주었는지,
우리 자매들을 얼마나 사랑으로 길러냈는지.
아니, 어쩌면 아직 다 모를 테다.
내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발을 이렇게 동동 거리지만,
쿨해 보이는 척하며 길러냈다는 걸
몰라도 된다.
그냥 건강하게 자기 삶을 즐기며
사랑 나눠주며 살아가는 어른으로
잘 자라나기 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