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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P가 신나게 뉴욕 여행하는 법

대책 없는 아줌마, 그래서 어떻게 돌아갈 건데?

by 여행하듯 살고
P의 여행

저지르고 본다
어떻게든 흘러간다.
고민 마라 해결된다
그냥 흐르는 바람에 몸을 맡겨라

다시 오지 않을 순간
느끼고 즐기고
만끽하고 만끽하라
내일은 없다
하루살이 여행




다짜고짜 걸어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왔다. 잘 왔다, 잘 왔다.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 맨해튼 남쪽의 마천루, 바로 옆 맨해튼 브리지까지 다 보인다. 멋있다. 웅장하고 튼튼한 다리 자체가 멋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꼭대기에 펄럭이는 성조기와 하늘로 솟은 구조물이 양쪽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걸 보며 걸어가는데 어떤 뭉클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렇게 혼자 왔을 때 잘 걸었다. 좌우 사방으로 볼거리가 널렸으니까 아이들도 한 번은 잘 건넜을 수도 있겠지만, 오는 도중 멀다고 좀 힘들어했을 것 같다. 아무튼 뒷 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걸어서 건너왔다. 폴짝폴짝. 걷는 걸음이 하도 가벼워서 어린 시절 고무줄 놀이 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눈앞 예쁜 풍경 담느라 핸드폰 여기저기 들이대고, 꿈속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서 Dumbo에서 사진 찍고 놀다 보니 더워서 안 되겠다. 지친 다리도 쉬게 하고, 커피 한잔 할 때가 되었다. 카페 % Arabica 감동이다.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뉴욕에서의 날들이 길지 않다. 한 시간쯤 있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다시 걸어서 돌아가려니 막막하다. 땡볕 아래 브루클린 브릿지는 "한 번만" 걸어서 건너도 족한 것 같다. 이미 2만 보 이상 걸어서 힘들다. 기온은 더 높아졌고 구름이 다 사라졌다. 과연 난 무사히 걸어 돌아갈 수 있을까? 애들이랑 왔으면 마지못해 우버라도 탔겠지만 혼자서 그런 사치를 누릴 수는 없다.


안 그래도 물가 비싼 뉴욕에서 여행하며 할 게 많은데. 내일 샵에서 난생처음 페디큐어도 받으려고 큰맘 먹었고, 저녁에는 뮤지컬도 봐야 한다. 아, 정말 또 별생각 없이 저지른 거였구나. 걸어온 뒤에 대충이라도 어떻게 돌아갈지는 생각했어야지, 아줌마.


그러다 창 밖으로 바로 맞은편 도로에 씨티 바이크가 주르륵 주차된 게 보인다. 전부터 타보고 싶었는데 아이들 나이 제한이 있어서 함께 탈 수 없었다. 도시에 왔으면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 제대로 즐겨야지. 그래, 저거다. 오늘이 기회다.


헬멧이 없긴 해도 자전거 타는 건 자신 있다. 뉴욕에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 거 같아서 한번 꼭 타보고 싶기도 했었다. 바쁜 도로 위로 자전거가 아주 많이 다니는 걸 이미 눈에 담아 두었었다. 지금이다!


구글에 시티바이크를 치니 Lyft (우버 같은 회사)와 연결되어 나오고 엄청난 할인을 선사해 준다. 15일 동안 자전거 무제한 이용에 5 달러만 내라고 한다. 이게 웬 떡인가


전혀 망설일 필요가 없다.


커피 한잔 가격도 안 된다. 비록 3일밖에 못 타지만,

하루권이 25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결제를

하고 자전거를 향해 룰루 랄라 돌진했다.


근데 자전거 꼬락서니가...

멀리 서는 정말 멀쩡해 보였던 자전거를 타려고 꺼내어 보니, 사용 흔적이 과하다. 뭐, 대여용이니까 당연하지 하고 엉덩이를 대고 페달을 밟는 순간, 아이고. 이 핸들링 어쩌나.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묵직하고 방향전환이 원하는 대로 쉽게 안 된다. 스마트 폰을 쓰다가 다시 2G 폰을 만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 낫다. 불평하지 말자.


애플맵에 자전거로 소호까지 가는 길을 찾아달라고 하니 브루클린 브릿지가 아닌, 그 옆에 보이던 맨해튼 브릿지로 가라고 한다. 그래, 아까 걸어올 때 브루클린 브리지 인도에 자전거는 못 본 거 같다.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자전거가 다니는 건 민폐일 테다.


마음처럼 가볍게 움직여지지 않는 자전거가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까 있던 커피숍에서부터 맨해튼 브릿지 입구까지 닿는 길이 평탄치가 않다. 도로 오른쪽에 페인트로 구분해 놓은 자전거 하나 겨우 다닐 자전거 도로가 있다가, 없다가 한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는 자동차에 치이기 싫어서 인도로 잠깐 올라갔다.


그런데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그것도 좋은 선택은 아닌 듯했다. 그냥 차야, 네가 비켜가라 하는 심정으로 다시 도로로 내려가서 조심조심 움직였다.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라 어차피 차들이 빨리 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 신호등에 쫓겨서 주황색불이 빨강으로 바뀌기 직전, 전속력으로 골인하려는 차만 잘 피하면 된다.


꽤나 가까운 거리였지만, 묵직한 씨티바이크도 처음, 그 길도 처음이라 계속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맨해튼 브릿지로 올라가는 자전거 코스로 들어가자마자 다리에 닿기도 전에,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다.


광대승천이라 했던가. 그분이 내게도 오셨다.


맨해튼 브릿지의 자전거 도로는 걷는 사람도 없고 차 도랑 완벽히 분리되어 있다. 다리의 북쪽 한켠에 붙은 자전거 도로를 지나며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그 뒤로 보이는 뉴욕의 풍경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DUMBO 에서 바라본 맨하튼 브릿지와 내가 자전거 타고 건넌 루트, 애플 피트니스 기록. 초록색 선은 내리막길이라 진짜 신나게 날았다.

헬멧 없이 안전한 곳에서 타는 자전거 위에서

나는, 어떤 해방감을 진하게 누렸다.


4개월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가볍게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었다. 건널목을 지나다 나를 보지 못한 차한테 살짝 치여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약간 튕겨났었다. 응급실 가서 CT 촬영도 하고 그 결과 이상 없다는 의사의 판정도 받았지만, 두려움은 크게 남았다. 원래 자전거 타면서 가끔 위험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왔다. 내가 아무리 안전한 자전거 도로로 가더라도 어떤 부주의한 차가 뒤에서 나를 박을 수도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 무모한 생각이 동시에 스치기도 한다. '자전거에서 맞는 바람이 너무 좋아서, 날아다니는 느낌이 나서, 난 그 위험 부담을 안고 계속 타겠다. 이러다 죽을 수 있어도...'라고. 실제로 내가 제일 많이 이용하는 자전거 도로변에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십자가가 두 개나 세워져 있다. 최근에 당한 사망 사고 같았다.

저, 자전거를 한때 열심히 탔었습니다
그 엔돌핀이 마구 분비되는 시점에서
이러다 죽는 사람이 생기는구나 확실히 느껴지는데,
난 그래도 자전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실제로 나의 지인이 자전거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운다. 그 지인의 둘째가 한 살 때 일이다. 인도에서 네팔 넘어가는 산악자전거를 타다 그랬다고 한다. 별 기억이 다 올라온다. 안젤리나 아빠의 사고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지금 느끼는 이 해방감을 어찌하랴. 이 나이에 아직도 무슨 모험심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지.


한편으로 얼마 전 경험한 자전거 사고와 보험처리 때문에 몸도, 마음고생도 하면서 무조건 더 조심하면서 타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안전한 주행에 자신이 있었기에 온 해방감인 것 같기도 하다.


맨해튼 브릿지의 경사도는 심하게 높지 않아서 씨티 바이크의 어설픈 기아만으로도 오르막을 오르기에는 충분했다. 빨리 가려는 욕심만 버리면 된다. 러닝이랑 똑같다. 대회를 나온 것도 아니고, 시간도 있다. 그럼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허벅지 근육이 허락하는 만큼만 힘을 주어 발을 살살 굴리면 된다.




왜 이렇게 갑자기 일 벌이고, 결과가 기대 이상일 땐 이토록 신나는 걸까? 이런 즐거움들 때문에 나는 계획을 꼼꼼히 안 세운다. 오늘 계획은 대충 이랬다. 새벽러닝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 타기 + 브루클린 브릿지 걸어서 건너기 + 저녁에 뮤지컬 볼 수 있으면 보고 아니면 내일 보고!


실행 상황을 보고해 본다. 러닝은 이미 아침에 완료, 트램은 탈락, 충동적인 코리아타운에서의 식사, 방금 브루클린 브릿지 걸어서 완료. 심지어 계획에 없던 자전거 타고 맨해튼 다리까지 건너서 돌아왔다. 트램은 내일 타면 된다. 계획이야 바꾸라고 있는 거다. 이런 모습을 J는 정말 견디기 힘들어할까? 저녁에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표를 싸게 구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님 말고. 하쿠나 마타타



P여서 행복한 일인 여기 있다. 혹시 당신이 주변의 P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J라면, 이 부분은 스킵해 주기를 바란다. 그냥 갑자기 나의 대문자 P 면모를 자랑하고 싶어졌다. 물론 나보다 심한 P도 많을 테다. 나는 이제 루틴을 만들고 싶어 하니, 요즘에는 내가 J를 닮으려 하는 P라는 것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도 이런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생각을 실천에 옮기면 몸에 엔돌핀이 확 도는걸 어찌할까.


내가 P이고 나랑 비슷한 P 남편을 만나서, 별 다른 부대낌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런 우리 모습을 제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건 신혼여행이다. 우리는 라오스로 배낭 메고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호텔 예약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날그날 저녁 즈음에 호텔 프런트를 두드리면서, 저기 혹시 빈방 있나요?라고 묻고 다녔다. 5일 다해서 호텔비는 100불 정도라고 했었던 것 같다.


50년 전인가 할만한 가격이겠지만, 사실 20년도 안 된 일이다. 그때 2008년, 라오스는 배낭여행객에게 그런 가격에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매일 받았던 마사지는 또 어떻고. 베트남 태국 필리핀처럼 관광객이 많아지기 전 라오스였다. 5 달러만 내면, 한 시간 동안 손마디가 부러질듯한 정성이 들어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제일 좋은 것은 관광지의 때가 묻지 않았던 느낌. 사실 이 부분은 누가 J 이건 P 이건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냥 우리의 무계획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었던 라오스에 대한 추억에 묻어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립다, 정성스럽지만 저렴한 안마.



암튼 다시 현생으로 돌아와 보자. 브루클린 브릿지 까지는 어찌 갈지, 언제 갈지 같은 건 미리 정하지 않았다. 아침 러닝을 마치고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루스벨트 아일랜드 트램 타러 가자고 마음먹었다. 지하철보다는 시내를 구경하면서 갈 수 있는 버스를 택했다. 버스 타고 트램 타러 가다 보니 금방 배고프다. 버스에서 내려 코리안 타운으로 걸어갔다. 어젯밤에 그렇게 당겼지만 못 먹은 한국 음식을 드디어 먹었다.


배가 차니 우선순위가 좀 잡힌다. 아무래도 브루클린 브릿지를 먼저 가야겠다. 트램은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마음이 동하면, 그 자리에서 알아보면 된다. 바로 실행에 옮겨서 브루클린 다리를 무작정 걸어서 건너고는 신났다. 흡족할만한 카페에서 커피도 거하게 한잔 했다.


그 흥분이 가시니 어떻게 되 돌아갈지 좀 막막했다. 그러다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고 더 신나는 일이 생겼다. 이제 하루가 절반쯤 지난 것 같다.


또 어떤 신나는 일을 만나게 될까?
덤보에서 바라본 브루클린 브릿지


이렇게 신나는 순간에도 좀 아쉬운 것은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맨해튼에서 느낀 최고의 순간들에는 사진이 없다는 거다. 센트럴 파크 러닝과 자전거로 맨해튼 브릿지 건널 때 눈에 담긴 풍경들. 그래도 괜찮다. 전엔 없던 강력한 신 무기가 생겼다.


글로 기억 저장하기. 글 쓰면서 떠올린 장면들은 아직 생생하다.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그 장면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더 또렸해지고 뇌리에 새겨진다.




맨해튼 브릿지를 건너온 브루클린의 자전거를 차이나 타운 어딘가에 파킹을 하고, 리틀 이태리를 지나 소호에 가려고 한다. 또 걸으려니 바로 카페에 들어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덥고 다리 아프다. 그래도 돈이 아까우니 좀 고민된다. 카페에서 나온 지 두 시간도 안 되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음식 할인, TooGoodToGo 앱이 기억났다.



어떤 유튜버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그날 남은 음식을 1/3 가격 정도 저렴하게 판매한다.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건 아니고 보통 surprise bag에 담아주는 걸 받아 오게 된다. 우리 동네 근처에서 해봤는데 꽤 괜찮았다. 좋아하는 것만 파는 가게의 것을 사면 실패 확률이 없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그 앱에 참여하는 가게가 얼마 없는 게 아쉬웠다. 그게 생각나서 열어보니, 역시 뉴욕 뉴욕이다. 리스트에 가게들이 넘쳐 난다.


이 앱에서 득템을 하려면 크게 두 가지가 받쳐 주어야 한다. 픽업 시간과 남아있는 수량. 1. 그 가게에서 지정해 놓은 픽업시간에 맞추어 갈 수 있느냐, 2. 오늘 정해진 양을 제공하는데 그게 아직 남아 있느냐. 보통 하루에 5개 정도 제공하던데, 인기 많은 곳은 게눈 감추듯 없어진다. 그리고 집이 바로 옆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여행 와서 이용하려면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제공하는 픽업 시간에 맞추는 것도 어렵다.


그냥 앱에서 이미 결제한 서프라이즈백만 받아 나와도 된다. 하지만 예전에 몇 번 이용해 보고 깨달았는데, 카페들은 정말 남은 빵을 처리한다기보다 홍보용으로 참여하는 듯했다. 그래서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아줌마답게, 먼저 차를 하나 시킨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백도 지금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아주 친절하게 맛난 머핀 두 개랑 초콜릿 크로와상을 담아준다.


아직 마칠 시간도 아니지만, 지금 파는 것을 바로 꺼내 준다. 하나 가격에 세 개. 제대로 득템 했다. 저녁으로 먹고 내일 아침까지 해결이다. 여행 걸뱅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충전기를 꺼내 시들어가는 핸드폰에 생수를 공급한다. 진짜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오늘 씨티 바이크 만세, 투굿투고 만세!


The Lost Draft 여기 추천한다. 특히 이 앱 사용과 함께. 그냥 평범하고 깔끔하고 사람 많은 카페인데 내가 크게 할인을 받으니 좀 더 특별해졌다. 오후에 햇살이 부서지며 통유리로 들어오는 장면까지 더 예쁘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꼭 이 카페일 필요도 없겠다.



이 카페 비슷한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투굿투고 앱을 열고 근처에 좋아할 만한 음식 중 오늘 서프라이즈 백이 남아 있는 곳, 픽업 시간이 지금 거의 다 된 곳을 찾아라. 그리고 리뷰에 남은 별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기준에는 별 4.3개 이상이면 만족할 만한 것 같다. 그러면 미리 계획한 어떤 것 보다 만족하게 될 것이다.


본인이 J라고 생각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오늘 남은 수량이 있을지 없을지, 픽업시간도 제각각,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확신하지도 못한 채 검색하다가 스트레스가 커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P라고 생각하는 분에게는 매우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런 경험이 순간순간을 더 즐겁게 만든다는 건 이미 많이 체험해 보았지 않은가. 이제 여기서 좀 쉬면서 글 쓰다가, 공연 시작하기 전에 시간 맞춰서 브로드웨이로 가면 된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러 가는 길, 맨해튼은 퇴근시간으로 도로가 매우 붐볐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들어가기 싫은 듯, 눈부신 햇살을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에 흩뿌려준다. Maybe Happy Ending 표를 구하면 진짜 신나겠다. 아니면, 아직도 즉흥적으로 할 무엇이 남았을까?



어쩌다 해피엔딩 표는 못 구했다. 공연 십 분도 안 남았는데 줄이 정말 끝이 없다. 줄이 이미 들어가기 시작해 꾸준히 줄어드는 듯했지만, 어디선가 사람들이 솟아나 차곡차곡 다시 줄을 채우고 있었다. 마술쇼, 사람들이 퐁퐁퐁 샘솟는 듯 한 마술쇼 같았다. 천명이 넘게 들어가는 극장이라더니 내가 당일날 표를 구해보겠다는 건 어리석은 기대였을까? 일단 내일 수요일 낮, 밤 공연 두 번 남았으니까 괜찮다. 둘 중에 하나는 표를 구할 수 있겠지.


오늘 그 뮤지컬을 못 보는 건 괜찮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간단한 검색으로 다른 뮤지컬을 찾았다. 리뷰 좋고, 한 달 전 토니상을 5개 부문에서 받은 뮤지컬이라고 한다. 여기서 극장이 멀지 않다. 이것도 7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바로 출발. 49불 내고 스탠딩 티켓 구해서 골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와 잘한다. 감동이다. 계획에 일도 없던 뮤지컬을, 하루 종일 혹사 당한 다리로 버티고 서서 스탠딩 석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어 보는데도 신나고 즐겁다.


쿠바의 실제 음악 그룹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칠만한 뮤지컬이다. 배우들의 천상의 것 같은 목소리에 기교까지 더해진 노래, 피아니스트와 기타리스트의 음악의 완성도는 정말 전 세계 탑인 듯하다. 귀가 둔감한 내가 봐도 이리 흥분 되는데, 남편 같이 귀 예민한 사람이 오면 나보다 몇 배는 전율을 느낄 듯하다. 혼자 봐서 미안, 남편.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아, 오늘 제대로 P 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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