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꼭, 다 해야겠어??
여행이 시큰둥해졌다.
많이 보려고 욕심낼수록,
잰걸음으로 스스로를 독촉할수록.
여기도 봐야겠고, 저기도 안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고.
걷고 뛰고, 쉬면서 글 써보겠다는 뉴욕에서
너무 많은 걸 했다. 이동 중에 검색을 하면 할수록
여기도 봐야겠다는 다짐만 늘었다.
그렇게 찾아간 루스벨트 아일랜드.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은 별 감흥이 없었다.
야경이 멋지다는데 덥고 조명하나 없고 모기에 물렸다.
그 자체는 신선하나 에어컨과 조명이 없는
여름의 이동수단이라, 다시 타고 싶지 않다
이제 딸 아들 남편도 보고 싶고,
친정 엄마랑 단둘이 왔었던 뉴욕 여행 생각도 나고,
집이 그립다.
그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센트럴파크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 때만 해도 기분이 날아갔었다. 전날 러닝하면서 좀 아쉬웠던 부분을 다 만회했다. 집에 두고 온 로드 바이크보다 속도가 느려 조금 답답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디에나 있고 사용이 편리한 시티바이 크니까. 둔한 핸들링과 빈약한 기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이런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에 감사할 뿐이다.
힘을 다해 달렸는데도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이 있다. 언덕 때문에 경사가 높다는 증거.
그리고 그 낮에 했던 걸 생각해 봐도 신나고 짜릿하다.
아침에 자전거 탄 후 숙소에서 잘 씻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산뜻하게 여행 출발했다.
길거리에 선생님 손잡고 놀이터 가는 아이들이 병아리 같이 귀엽고, 거리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루즈벨트 아일랜드에 트램 타러 버스 타고 가던 길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중간에 마음을 바꿨다. 12시가 다 되어가니 아무래도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표를 먼저 알아보는 게 좋겠다. 오늘 못 보면 또 언제 보겠나! 마디막 기회다. 거기 가는 길에 나를 위한 이벤트도 하고, 코리아 타운에서 밥도 먹어야지. 가려던 곳을 갑자기 바꾼 것에 야릇한 쾌감은 느끼는 나, 우리 P들은 이해해 줄 테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만족감은 더 커졌다.
나를 위한 그 이벤트는 바로 난생처음 샵에서 페디큐어 받는 것.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거의 20년 전에, 교회 동생이 아직 대학생인데 샵에서 페디큐어 받는 것 보고 저 친구는 팔자 좋구나 생각했었다. 그 친구가 미국에서 유학한 걸 알고 나서는, 그렇지? 그런 환경이니 저렇게 누릴 수 있구나, 쉽게 이해가 갔다.
나는 그때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다. 돈을 벌기 시작한 첫 해라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사실 나는 별 관심도 없었고, 약간의 돈낭비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민 없이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그 친구의 여유 자체가 부러웠다.
첫째 임신하고 한쪽 발에만 발톱 무좀이 생겼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임신 중이라, 수유 중이라 미루었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났지만 미국 의료체계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병원에 가기가 꺼려졌다.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 피부과에 갔지만 약을 주기적으로 와서 타가야 한다고, 몇 개월치를 한 번에 줄 수 없단다. 그래서 치료를 포기했었다.
그래도 고쳐야 할 것 같아서 지인찬스를 썼다. 처방전이 필요한 먹는 그 약을 곧 한국에서 보내주었다. 덕분에 발톱이 깨끗해졌다. 그런데 그 해 건강검진 피검사 결과에서 유독 간수치가 안 좋게 나왔었다. 원인으로 찾을 수 있는 건, 그 독한 피부과 약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깨끗이 나았었던 그 발톱에 그 병이 재발했다. 일 년만이었다. 그리고는 포기하고 몇 년이 또 훌쩍 지났다.
더 참지 못하고 작년에 여기 주치의를 통해서 약을 받아 꾸준히 먹었고, 간수치 검사도 하고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왼쪽 엄지발톱에 붙어 십 년을 넘게 나를 괴롭히던 그 무시무시한 병은 임신 육아에서 얻은 전투 흔적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국의 좋은 의료체계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 미국에서 매년 건강보험에 돈을 쏟아봐야 제대로 혜택도 못 보는 이민자로 사는, 내 설움의 대표작이었다.
결국에 쟁취해 내고만 승리를 자축해야 한다. 어제 이곳을 지나다 본 샵의 Happpy Hour 시간에 맞추어 왔다. 페디큐어와 10분 마사지까지 더해주는 서비스를 $40에 누렸다. 이 가격이면 팁도 넉넉히 줄 수 있어 서로 행복해진다.
계획을 갑자기 변경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후 2시 뮤지컬 공연에 맞추려 한 것이다. 돈가스를 먹다가 늦을 것 같아서 남은 건 투고박스 담아 배낭에 넣고 극장으로 출발한다.
시간절약을 위해 시티 바이크를 탔다. 정말 한 두 블록 가면 어디에나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다. 뉴욕 여행객들에게 하루 정도는 이용해 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지도에 보이는 파란 점이 자전거 주차장이다. 뉴욕에 이렇게나 많이 있다고 한다.
34 번가에서 자전거를 타서 42번가 까지 달렸다. 숏팬츠에 힐 슬리퍼 신고, 헬멧은 고사하고 선글라스만 꼈다. 그 차림에 긴 머리 날리며 신나게 라이딩했다. 자전거 도로가 있으나 전동 자전거랑 스쿠터가 빠른 속도로 많이 다닌다. 신호위반을 하는 자전거들도 많아 완전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그런 와중에 자전거 사고 난 걸 내 눈으로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신나게 달렸다. 나도 그 무법천지 무리에 휩쓸려 금방 극장으로 도착했다. 늦지 않았다. 걸어가거나 버스를 탔으면 분명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했을 테고, 늦었을 수도 있다. 오늘도 시티바이크 만세.
공연이 끝나고 여운을 길게 씹었다.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뮤지컬 리뷰 글) 그리고는 천천히 서쪽으로 향해서 버스를 타고 허드슨 강가로 갔다. 이제 하루가 저물어 가려한다. 이 강변을 따라 배터리파크까지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다. 그곳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까지 운행하는 페리가 다니는 곳이다.
또 신나게 달린다. 미지근한 바람마저 좋다.
허드슨 강가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놀랍도록 잘 만들어져 있다. 길 옆으로 예쁜 식물들과 꽃이 하늘하늘 거린다. 오른쪽으로는 바다처럼 보이는 강의 풍경도 보이고, 왼쪽 옆으로는 첼시마켓이 지나간다. 한참을 더 달리니 9/11 테러에 에 무너져 내린 쌍둥이 타워 자리에 다시 올려 세운, One World Trade Center 도 보인다. 그리고는 퇴근길의 월 스트리트도 만난다. 사람에 미어터지고 복잡한데, 관광객들의 분위기와는 물씬 다른 무언가가 있다.
빡빡한 하루를 잘 살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에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관광객의 오후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긴장이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린 해방감이 해 질 녘 주황빛에 물 들어버린다.
이 여행의 제일 큰 목적 세 개, 센트럴파그 러닝(화요일 새벽)+브루클린 다리 걸어서 건너기(화요일 낮)+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보기(수요일 낮)를 모두 달성했다. 덤으로 배터리 파크까지 자전거 타고 내달린 땐,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생긴 피로를 몸소 간직하고 있는 발 근육들이 아직 뭐가 더 남았냐고 소리쳤다.
사실은 아침에 센트럴 파크 한 바퀴 돌고 에너지가 남아서 조금 더 탔었다. 시티바이크는 한 번에 45분 이용 가능이기 때문에 처음 탔던 자전거는 파킹하고 다른 자전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는 센트럴 파크 북쪽 1/3 정도를 다시 돌았다. 진짜 신난다.
중간에 조금 걷다가 다시 자전거 탔다가 하면서 배터리 파크에 도착했다. 이제 다리가 파업 직전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면 없어질 통증이기에, 조금 참고 주변 커피숍을 검색했다. 787 Coffee 가 당첨 되었다.
디카페인 커피 마시며 글 쓰러 갔는데, 그곳은 아예 디카페인은 팔지 않는 다며 스티커를 건넨다. 카페인 뉴욕인간을 강조한 스티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때 다른 카페를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나 목도 마르고 더는 걷기 싫은 마음에 아무거나 주문했다.
내가 주문한 게 Iced mint tea였나 보다. 차가운 민트티를 플라스틱 컵이 아닌 독특한 봉지에 받아 들고 자리를 잡자마자 시티바이크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협박 같은 경고 메시지. 파킹이 잘 안 되었으니 만약 누가 훔쳐가면 $1,200를 변상해야 할 수도 있단다. 뭐? 제대로 파킹해 놓고 왔는데! 너무 놀라서 그 알림은 화면 캡처도 못 하고 날려버렸다. 다시 찾아보니 안 보인다.
암튼 그때부터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있나. 엉덩이 대자마자 떼서 다시 배터리 파크 자전거 거치대까지 부랴부랴 갔다. 그 커피숍에는 큰 미련이 없기도 했다.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좋은 자리까지 이미 누군가가 다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탔던 자전거 넘버를 확인해 잘 파킹되어 있나 확인했다. 혹시나 해서 한번 더 타는 것처럼 빼서 다른 주차 자리에 넣었다. 다시 찰칵 소리 듣고, 잘 받았다는 알람까지 받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신남 게이지가 급 하강했다.
손에 들려있던 차가운 민트티 봉지는 힙한 디자인이 아니라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젠장, 심지어 한참 마시다가 발견한 건데, 손잡이로 쓰는 종이 부분까지 내가 마시는 차 안에 퐁당 담가놨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게다가 난 뜨거운 여름에도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고 믿는다. 잘못 시켰다. 차가운 건 딱 한입 좋고 뜨거운 건 두 시간 후까지 좋다. 그냥 다 마음에 안 든다. 습도도 너무 높아 몸이 끈적댄다.
아무튼 스트레스 때문에, 아까 코리아 타운에서 보았던 떡볶이를 먹어야 하겠다는 강의 의지만 남았다. 다시 코리아 타운으로 향한다. 낮에 다른 걸 먹을 때 눈에 밟혔는데, 지금 먹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에 끌려왔다.
떡볶이 첫 입이 너무 맛있다. 두 번째 입도 너무 맛있다. 건강이고 뭐고, 사이다도 쭉 들이킨다. 세 입까지는 진짜 맛있었다.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아, 그런데 떡볶이가 솔직히 너무 달다. 미국 맛으로 달게 만든 거 아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다 먹으려니 너무 달다. 그래도 아까워 버릴 순 없다.
폭식으로 기분이 더 나빠져 버렸다. 아까 시티바이크 변상 가능성 알림 문자부터 살짝 나쁘던 기분이, 아이스티에 퐁당 빠진 종이 손잡이와, 떡볶이 과식으로 인해 주르륵 무너진다. 무슨 나쁜 기분 도미노를 세워 놓았나, 하나가 건들리니 연쇄 작용이다. 탁-탁-탁-탁.
더 이상의 도미노가 기다리고 있지 않길 바라며 떡볶이 먹고 Q34 버스를 탔다. 트램 타러 가는 세 번째 시도다. 이제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진짜 가 보자, 했는데 멍 때리고 있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쳤다. 빠르게 맨해튼을 벗어나고 있다.
아, 내가 징크스를 만든 건가. 입이 방정이다. 기분 망치기 도미노 하나 추가요. 트램 타고 건너려던 강을, 버스에 앉아 퀸즈버러 브리지로 건너고 있다. 이 긴 다리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아득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사람. 여행이 좋은데 그래도 사람들, 관계가 먼저구나. 아들딸남편이 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다.
엄마한테 전화드린 지도 오래됐고, 팔 년 전 엄마랑 둘이 했던 뉴욕 여행이 생각나서 바로 보이스톡을 했다. 다리를 건너는 버스의 한 정거장은 아주 길구나. 괜찮다. 라며 나를 위로해 본다. 나는 뒤의 일정이 없다. 여행도 이미 시큰둥해졌는데, 내 마음 돌아갈 곳은 엄마다.
이젠 엄마랑 통화가 엄마 안부 살피는 것, 혼자 사시는 엄마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주다. 결혼하고 아이가 어릴 무렵에는 엄마한테 질문이 많았고, 들을 이야기도 많았다. 이제는 엄마 덜 외로우시게 좀 더 의무감에 하는 통화이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어떤 포근함을 바라고 전화한 적은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 대한 짠한 감정,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하는 죄송함 등이 얽혀 선뜻하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 때문에 더 바빠지면서 좋은 핑곗거리도 널렸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참 좋다. 무언가 하나 좋은 걸 발견하면 너도 꼭 해봐야 한다고 강하게 권하는 우리 엄마. 예전에 그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는데, 나도 나이 먹고, 머리 굵어지고, 딴에는 더 많고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엄마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어차피 내 통화의 목적은 엄마의 안녕을 살피는 거다. 엄마한테는 그럴게요,라고 대답하지만 통화를 끊고 나면 그 정보는 온 데 간데 없이 흩어진다. 그럼에도 계속 자세히 물어본다. 혼자 사시는 엄마는 누군가 본인 말 들어주는 게 분명 좋을 거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와 함께 살았던 이십 년이 넘는 세월들, 이제 그와 비등하게 떨어져 살아온 시간의 온도차를 가늠해 본다. 그 온도는 같은 사건을 기억할 때도 나의 마음상태에 따라 확연히 달라졌다. 어떤 때는 그 미적지근한 사건이 날카롭게 내 피부를 파고들 때가 있고, 다른 때는 그 무채색의 공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내 어릴 적 온 우주만큼의 무게를 실었던 엄마를 조금 비껴 나, 이제는 우리 아이들과 남편에게 그것을 실어가고 있다.
그 이동이 못내 서운할 때가 있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느끼는 죄책감을, 바쁜 일상은 그걸 그냥 날려버리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사탄이 사람들을 나쁘게 만들려다가 실패하면 바쁘게 만든다고 하는데, 진짜인 것 같다. 항상 지니고 있는 그 죄책감이, 통화가 길어지면서 조금 가벼워지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짧게 통화를 끝낼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바쁘지 않다. 이모 손녀딸 결혼식에 모두 모였던 이야기를 듣고는 부럽다. 난 왜 이리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나, 신세한탄도 해 본다. 엄마와의 긴 통화가 십 년, 이십 년 전과 같지는 않다. 요즘은 엄마가 늙어가는 게 더 느껴지고, 그 느낌에서 파생된 죄책감은 곧 부담감으로 모습을 바꾼다.
둘째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내가 좀 자유로워지면, 딸 노릇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단 시간을 벌어 놓고는 손 놓고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한 순간들도 있다. 이 짧은 글을 보면 엄마를 퍽이나 생각하는 딸로 보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나.
우리 엄마는 일 중심적이다. 혼자 사는 엄마가 외롭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는 나는, 엄마가 관계에 좀 더 신경 쓰길 바라고 잔소리 마저 한다. 전에 언니가 엄마한테 밥 먹자고 했는데 엄마 어디 가는 중이라고 거절했다면서... 혼자 일처리 하러 가는 건 그냥 좀 다음에 하고, 누가 만나자면 제발 바로 만나. 큰 이모가 밥 먹자 그래도 종종 튕기는 걸로 안다. 엄마 별 중요한 일도 아닌데.. 시간 아까운 듯해도 사람들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좀 소중하게 여겨줘...
그러면 엄마는, 큰 이모도 밥 해주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밥하고 나면 힘들어한다, 언니는 나중에 또 만나면 된다... 등등의 반응으로, 지금 본인의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을 것을 확실히 내비친다. 그래, 칠십 훨씬 넘은 노인을 누가 어떻게 바꾸랴. 그 시도가 어리석은 것일지 모른다.
대화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면 서로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몇 번 그러다가 이제 서로 흩어져야 할 거리를 찾는다. "엄마 나 트램 타는데 다 왔어, 나중에 집에 가서 전화할게"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곧 후회를 한다.
후회를 해도 별로 바뀌는 건 없고, 누구도 변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또 그러게 말해버리는 나,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 먹지만. 또 반복이다. 도박 중독자의 심정이 이런 걸까. 하고 후회하고 하고 후회하고. 도미노 또 하나 추가요. 무슨 연쇄 살인범이 일 저지르고 나면 뒤늦게 쫓아간 어설픈 탐정이 증거품 챙기는 듯, 손에 도미노 하나를 더 들었다.
아, 나는 왜 딸한테도 엄마한테도
잔소리나 하는 아줌마가 되었을까.
사랑을 좀 더 세련되게 할 수는 없을까.
엄마와 오랜만에 길게 통화했다는 뿌듯함이, 아쉬운 대화로 마무리하면서 연기처럼 날아갔다.
트램은 시내버스 가격으로 탈 수 있다. 메트로카드 7일 권에 포함되어 있어, 원하는 만큼 타도 된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주 많이 있었고, 제대로 된 조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기실 같은 건 따로 없고, 그냥 야외에 모두 노출된 곳이다. 모기가 오른 종아리를 뜯었다. 하루 종일 자전거 타고, 땀은 대충 식히고 돌아다니니 모기가 좋아할 수밖에.
트램은 큰 아주 큰 케이블카처럼 생겼는데 삼사십 명이 넘는 사람이 한 번에 들어가게 생겼다. 자리는 양쪽 끝에 치하철 의자처럼 길게 된 두 군데뿐이다. 무엇보다 불편한 점은 에어컨이 없다는 거다. 이 여름에. 이미 깜깜해졌지만 그렇다고 시원해지는 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보다는 나 같은 여행객이 많은 듯했다.
뉴욕의 야경을 볼 수 있으나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다. 공짜로 타는 거라도 다시 타고 싶진 않다. 그럴 목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걸까? 사실 에어컨만 있어도 여기 안아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함정은 한번 목적지에 도착하면 출구로 나왔다가 다시 카드를 긁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 아, 제일 큰 도미노다. 여름 야간 트램은 진짜 비추다.
그렇게 시큰둥해진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되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과 무척 멀었으며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심지어 첫 번째 버스 정류장 까지는 십 분도 넘게 걸어야 한다. 또 걸어야 해… 조금만 힘내자.
호스텔에 비어있던 침대가 오늘은
우리 방 6명, 꽉 차 있겠지?
아, 이제 진짜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