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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먹밥 반쪽, 그 여자가 찾아온 것

그것 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by 여행하듯 살고
- 주먹밥 반쪽 -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 마요
금방 지쳐 버릴지도 몰라요

나를 똑 닮은 아가가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다 내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밥 반쪽은 꼭 지키세요
더 오래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다면요

지속가능한 사랑을 해야 해요
내가 굶어 죽으면 누가 그 사랑 지키나요?

그건, 절대 욕심이 아니에요
사랑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에요




아이들 낳은 후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날

출발 직전 공항에서 적은 일기이다.



이런 혼자 여행은 처음이다.
상투적인 표현들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순간들이다.
그저 그런 공항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펼쳐질 4일의 시간이 벌써 눈부시다.
매 순간 귀하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혼자가 된 후에
(남편 미안, 내가 더 오래 살 거라는 가정인가 봐.
내가 다섯 살 어리니까..)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가족이랑 북적되는 시간을
왜 그리 잠시라도 떠나고 싶었는지,
홀로 시간을 어찌나 갈망했는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참 외로워 보이는데...

그 귀한 시간들을 더 즐기지 못했던 나를

어리석게 보게 될까?


아니다, 그 갈망에
대한 후회는 없을 테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 했고, 바빴다.
이런 쉼이 필요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딸, 아들, 남편,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충전하려고 떠난다!



벌써, 마지막날 아침이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했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하는 사흘을 보냈다. 어떻게 이런 여행을 두고 올까 말까 고민을 했었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다. 집에 가면 여행 때 받은 에너지로 좀 더 즐겁게 살아낼 수 있을 듯하다.


눈 부신 시간들을 이제 잘 정리할 시간이다.


'센트럴 파크에서 새벽 조깅 후에 씻고 오전 7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일찍, 어젯밤에 인정했다. 덕분에 짐 다 싸 놓고 새벽 5시 반에 눈 뜨자마자 부스럭부스럭 준비해서 나왔다.




요즘 나민애 교수의 강연에 푹 빠져 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나민애 교수는 나태주 시인의 딸이라고 한다. 우연히 EBS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영상을 하나 봤는데 그녀의 팬이 되었다, 나민애 언니의 매력은 다독이는 목소리와 말투에 있다. 물론 내용도 너무 귀하다.


중독된 것처럼 그녀의 영상들만 찾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원인을 찾아 보았다. 구수하고 포근한 억양으로 '너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이는 듯한 내용이 나를 끌어당긴다. 신선한 언어로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지식인사이드 채널의 영상*에서 나민애 교수가 소개해준 이야기는 내가 이 브런치북을 쓰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알게 해 주었다. 이 혼자 여행을 준비하면서 막연히 무언가 잃어버린 걸 찾으러 떠난다 생각했다. 그런데 무얼 잃어버린 지도 잘 몰랐다. 어렴풋한 느낌뿐이었는데, 드디어 찾아냈다.


주먹밥 반쪽.


나민애 교수가 산후조리 하려고 친정에 가 있을 때 이야기이다. 자기가 아이를 케어하는 능력으로만 평가되는 가축이 되는 느낌이 들어서, 자존감이 되게 떨어진 시기였다고 한다. 본인도 아기도 친정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넉다운이 되어 있을 때, 나태주 시인이 가만히 딸 옆에 들어와 발톱을 깎더란다. 그러면서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 듯 그냥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한다.


옛날에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두 명의 아버지가 있었대.

두 명의 아버지 중에 한 아버지는,
피난 생활을 하면서 주먹밥을 얻어왔을 때,
아들이 아브지 배고파요, 너무 배고파요 하면
아버지는 안 먹고 아들에게 다 줬대.

한 아버지는 주먹밥을 얻어오면 반절을 쪼개서,
반절만 아들을 줬대
그래놓고 이 반절은 자기가 꼭꼭 씹어먹었대.
아들이, 아브지 배가 고파요. 이래도 안 줬대.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알어?

주먹밥을 안 먹고 아들한테
다~~~ 준 아버지는 굶어 죽었대.
아버지가 죽고,
아들도 죽었대.

주먹밥을 나눈 두 부자는,
야위었지만, 둘 다 살았대
살아서 나중에 둘이 손 꼭 잡고 행복하게 다녔대.


듣다가 위로를 해주시러 오신 거라고 알았다고 한다. 딸한테, 두 번째 아버지처럼 살라고. 엄마도 그냥 다 양보하지 말고, 반쪽은 먹어야 한다고.


이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고인다.
이해받은 느낌에, 깊이 고마운 마음에.



시인 나태주는 이제 나에겐, 아빠 나태주가 되었다. 그래, 난 계속 나의 주먹밥 반쪽은 내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남편 목회 돕는 사모로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그 마음 자체가 욕심 같아서,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어렴풋하던 내 생각도 다 정리가 되었다. 이기적인 게 아니라, 살려고. 나답게 살고 싶어서, 함께 잘 살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나의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쏟을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 것뿐이었다.


엄마의 주먹밥 반쪽은 아이들한테 다 주지 말고 엄마가 먹어야 한다. 누구한테도 양보하지 말고. 그래야 결국 내가 먼저 굶어 죽는 일 없이, 자식 부모 모두 건강하게 함께 잘 살 수 있다. 그 주먹밥을 애타게 바라는 누군가가 옆에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도 살아야 한다.


손에 주먹밥 반쪽을 들고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이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자.


아이들 것, 남편 것, 다른 누구의 것을 빼앗아 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응당 돌보아야 할 "나"도 챙겨야 모두가 다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조심스레 알리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글쓰기가 내 주먹밥이 된 것 같다. 물리적으로 내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과 더불어, 그 후 이 여행을 정리하려 글 쓰는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내 주먹밥 반쪽을 한입씩 베어 물고 꼭꼭 씹고 있는 중이다. 또 내 주먹밥은 곧 다른 모습을 하고 올 수도 있겠다.


당장 직장을 잡고, 월급을 받지 않아도 좋다. 당장에 책을 출판하지 못해도 괜찮다. 단지, 포기하지 말고 글쓰기, 러닝, 식물 키우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착착 모아서 기록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그 이야기들이 다시 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줄 테니.




호스텔을 떠나기 전, 커피랑 어젯밤 TooGoodToGo에서 사 온 초콜릿 크러와상을 먹으며 로비에 앉았다. 어제는 정신없이 구경 다니고, 자전거 타고 뽈뽈 돌아다니느라 뭐 끄적일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저녁즈음에는 완전 김이 빠져서 여행이 시큰둥해지기까지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결과다.


공항에 출발하기 전, 그 여유를 다시 찾고 싶어서 새벽같이 나왔다. 여행동안 느낀 것들이 아직 생생할 때 써내려 갔다. 감사노트에 쓸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대개 러닝 했다. 자전거 탔다, 뮤지컬 봤다 등의 활동 위주이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다. 그냥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감사 제목들도 널렸다.




행복은 참 소소한 것에 있다. 코리아타운 가는 길에 버스를 잘 못 탔다. 꽤 많이 걸어야 했는데, 걷다가 귀여운 과일 가게를 발견했다. 귤 5개 2불, 토마토 3개에 1불, 사과 2개 1불... 내가 여행할 때마다 제일 아쉬운 건 과일을 제대로 못 먹는 것이다. 이 가게는 나 같은 관광객을 위한 가게이다.


관광지에서 파인애플이나, 수박, 망고등 예쁘게 컵에 담아 파는 것은 너무 비싸다. 과일을 많이 좋아하지만, 열번 고민하다가 겨우 한번 사 먹는다. 그런데 여기 과일은 고민이 필요없을 만큼 가격이 합리적이다.

이 과일가게가 반갑고 고마워서 바로 펜을 꺼냈다.

상큼한 게 먹고 싶었는데, 2불에 귤 다섯 개나 준 게 고마웠다. 귤을 받아 들고는 오늘 여행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과일을 손에 넣은 기쁨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여행 중에 과일 먹고 싶었지?"하고 이해받은 거 같아서 진심 고마웠다. 뭐, 공짜로 준 것도 아니고, 이윤 추구하다 보니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럼 뭘 요란스럽게 고맙냐 할지 몰라도, 그냥 진짜 고맙다.

곧 브루클린 브리지 행군할 텐데,
전투식량 준비 완료.


물론 이 아저씨가 과일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낸 아이디어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게 여행객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서, 필요를 간단히 채워주면 마음까지 얻는다.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모자를 살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거기 다리 중간까지 몇 백개 되는 모자들을 걸어서 모두 날랐을 테다. 단지 돈을 내고 모자를 받은 것 이상으로 고마웠다. 땡볕 아래에서 지친 내 정수리를 확실히 보호해 주었으니까.




이제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전에 여행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쉬러 왔다는 뉴욕에서 참 많은 걸 했다.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내 마음 움직이는 대로 전부 다 할 수 있었다는 거다.


나 혼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시간을 모두 다 써보는 것은 많은 엄마들의 로망이다. 아이 낳기 전에는 절대로 몰랐을 작고 거대한 소망이다. 물론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다리가 너무 아파서 더는 못 걷는 그런 변수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3일 동안 내가 더 걷고 싶으면 걷고, 자전거 타고 싶으면 질릴 때까지 타고, 먹고 싶은 곳에서 먹고, 앉고 싶으면 앉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내 롤모델 어느 60대 아주머니는 젊은 엄마들이 어린 아이를 쫓아다니는 걸 보며 말했다. 우리 애들이 저만할 때 내 소원은 '딱~~ 하루만 혼자서 있는 것'이라고. 왜 그리 공감이 가던지... 나는 이제 그런 시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그 시절 갑갑하던 감정은 생생히 남아있다.


아주 사랑 많은 분이라, 아이들을 귀찮아하지도 않고 다 받아주고며 본인도 행복한 육아를 한 줄 알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랑 넘치는 분도 그랬었구나'라고 격하게 이해받고는 눈물까지 고이더랬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와 시간 보내는 걸 즐기지 않는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거나, 방문 꼭 닫고 통화하거나 한다.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임을 알기에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좀 내버려 뒀으면 하던 게 엊그제같으니, 갑자기 바뀌어버린 아이들의 태도가 못내 서운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껌딱지처럼 내게 붙어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작고 귀여운 아이들은 눈물 나게 그립지만서도.


온전히 내 시간을 내가 다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육아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아이들을 길러 내는 매 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까, 그 시간을 아이들과 나를 위해 잘 나누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을 몰랐다.


그냥 아이를 위해 나의 모든 시간을 다 내어 주었다. 수유 시간, 낮잠 시간, 이유식 시간, 책 읽어 주는 시간, 아이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 등등 그냥 다 맞춰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이 들면 밀린 집안일들을 해야 했다. 그땐, 남편이 너무 바쁠 때여서 최대한 집안일과 육아는 내가 전담하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나는 없어지고, 엄마와 아내와 사모만 남았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은 포인트는 나의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 쓰는 것이다. 엄마들은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그냥 내 것 포기하는 게 마음이 제일 편하다. 그런 식으로 여러 면에서 시나브로 포기하게 된다.



또래 아이들 엄마를 만났는데, 그중에 유독 말이 잘 통하는 엄마가 있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길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 아이들이랑 놀 때 유독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잘 맞는 집은 부모끼리 그다지 결이 맞지 않고, 부모들은 너무 잘 맞는데 아이들은 잘 맞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그 아이들 엄마랑 즐겁게 수다 떠는 사이 어느 아이 혼자 화가 나있거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땐 무조건 아이들한테 맞추게 되었다. 일단 나중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각자 길을 떠난다. 갑자기 떠날때면 아쉬워서 나중에 아이들 없이 그 엄마를 만나려도 시도한다. 하지만 엄마 모두들 아이들한테 묶여있는 몸이라 쉽지 않은 일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아이들이랑 놀아줄 땐 난 보통 밥을 한다. 밥을 하고 나면 치우고 청소하고, 책 읽어 준다. 남편이 밥 다먹고 다시 아이들과 놀아줄때면 난 육아 퇴근 후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또 나를 찾고, 남편도 함께 놀자며 잡아 끈다. 까르르 소리와 행복한 순간에 빠지기 아까워 그냥 동참한다. 그러고 나면 아까 읽고 싶었던 책, 오늘은 꼭 하고 싶었던 운동은 뒷전이 된다. 그러면서 점점 내 취향은 잊혀진다.


한국에 사시는 시부모님도 자주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 멀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시니 가능한 한 오래 머물고 싶어 하신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와, 은퇴 후 남는 시간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렸다. 남편 본가는 원래 서로 '안 돼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순종적인 아들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더란다. 그러면 나는 더 사라져야 한다.


그렇게 육아하며 이민 정착하는 시기에 내 단짝이 생겼다. 편두통. 어떨 때 내가 잘 아프게 되나 분석을 해 보니, 어떤 스트레스 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시간을 못 쓸 때 무기력해지면서 편투동이 시작되었다. 내 시간은 대체 누구 것이라는 말인가?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시간을 쓰고 싶은 대로 쓰지는 못한다는 건 안다. 많은 직장인들이 사표를 안 주머니에 품고 다니며 자기 시간을 돈 또는 커리어랑 바꾸기도 한다. 많은 학생들도 공부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부모의 강요로 졸업장을 따기 위해, 본인의 시간을 마음대로 못쓰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월급이나 학위라도 남지 않은가. 엄마들의 육아는 어떤 공로 인정을 받기가 힘든 분위기이다.


혼자 애들 키우나? 다들 하는 거에 왜 그리 유세야?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들이나 키우는 게 상팔자라고, 엄마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말도 자주 공공연하게 듣는다. 보통 전업주부이면, 육아와 함께 온갖 집안일을 다 맡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도 안 난다. 그러다 조금 손을 놓아버리면 걷잡을 수 없이 집안 꼴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육아를 도와줄 이모님, 가사를 전담해 줄 가사도우미, 청소, 요리를 도와주는 전문 직업인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엄마들이 모두 했던 그 일들이 이렇게 분담되어 전문가가 늘어난 다는 사실은 혼자서는 모두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잘 대변해 준다.


이런 현실을 더 슬프게 만드는 건 "맘충" 같은 단어가 보여주듯, 엄마의 위상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무슨 유세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로를 그다지 인정받지도 못하는 일에, 자신의 많은 걸 희생해서, 자기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게 아닐까.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친구에게 진심으로 '노키즈' (No Kids, 딩크족과 비슷한 개념)를 권하기도 했었다. 엄마 되기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를 하면서는 오해가 있을 까봐 분명히 하고 넘어가고 싶다. (노키즈 관련 내용을 글​)


분명 엄마가 되고 힘든 것도 많고 내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 때도 있지만, 이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엄마가 된 일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딸 하나, 아들 하나로 두 명의 자녀가 있지만, 좀 젊었을 때, 그러니까 둘째가 2-3살이었을 때로 돌아간다면 셋째도 가지고 싶다.


단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힘든" 엄마의 삶이 아니라, 엄마가 더 가치 있게 본인의 삶도 누릴까이고,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것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좋은 엄마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서툰 엄마라서 아이에게 실수도 많이 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지만, 그게 내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보증수표 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꼭 거식증-폭식증에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eating disorder로 같이 취급된다고 한다. 동전의 양면 같은 그 병은, 정반대 질환 같지만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십 대 소녀가 날씬해질 거라며 먹는 걸 모두 거부하고 뺴빼 말라가다가, 참다못한 몸에서 음식을 과하게 요구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친 듯이 폭식하는 모습. 그리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장애.


내가 육아하는 모습에 그런 면이 있었더랬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시간 정성 관심 모두 쏟아서 아이에게 다 맞추어주다가, 내 자아가 고개를 내밀 때면 가끔 폭발했다. 아이들 작은 잘못에 크게 화를 내기도 했고,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과민하게 반응해 태도의 일관성을 지키기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지나친 무관심을 보여준 뒤 미안한 마음이 들면 그때부턴 사랑을 과잉해서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 놓치려고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음식을 만들던지, 하루종일 책을 읽어주던지 하는 식으로 내 잘못을 만회하려고 했다.


그런 나의 육아태도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자아가 고픈 내 안의 나를 달래 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혼자 여행을 결정했을 때도, 내 자아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오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알 거다. 며칠 음식을 덜 멀을 수는 있는데, 그럼 결국 입 터지는 날이 온다. 굶어서 빼고 나면 반드시 요요가 온다.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과하게 음식을 줄이면 안 된다고 한다. 몸에게 항상 음식을 잘 공급해 줄 거라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허기지지 않게 조금씩이라도 음식을 공급해서 '거식'이라는 현상을 없애면, '폭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을수 있을 것이다.


내 육아 거식증과 폭식증 방지를 위해
주먹밥 반쪽을 손에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난
주먹밥을 크게 한입 베어 물고 꼭꼭 씹었다.




뉴욕에 여행 갔다 왔다.

고작 4일이지만, 혼자여서 의미가 컸다. 아이들이

수련회에서 돌아오기 두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딸 아들 나흘 동안 한국음식 못 먹었으니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아야지.


그렇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부엌으로 출근이다.


그 동안 일을 했지만 저녁 시간에 혼자서

심심했던지, 남편은 온 집을 뒤집어 청소해 놓았다.

이렇게 산뜻할 수가.

이번 홀로 여행만큼이나 감동이다.


사실 가기 전날 밤에 가득 쌓인 그릇을 보면서

한숨이 푹푹 나왔었다. 여행 가면서 치우고 가야지하고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 여행 짐도 못 쌌다. 해야 할 빨래도 산더미이고,


일정이 무리였다. 아들 큰 수영대회가 있어서

3일 동안 집을 비우고 주일 하루 집에 있다가 출발하는

스케줄이다. 대회로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딸은

써머 캠프갔다가 3주만에 돌아왔고, 주말이 지나면

아이들도 나랑 같은 날 수련회로 출발한다.

그 말인즉슨, 정리하고 챙길 게 아주 많다는 거다.


쌓아놓은 그릇을 향한 내 눈길을 남편이 보고는,

설거지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정리해 놓을게,

집은 신경 쓰지 말고 여행 잘 다녀와,라고 했다.


내가 전업 주부로 오래 지내다보니

집안일과는 점점 멀어진 남편이다.

하지만 믿고 맡겨도 될까?라는 질문은 우문이다.

그런 건 따질 때가 아니다. 혼자 4일 동안 집에 있을

남편을 위해서 정리를 하려던 것일 뿐이다.

남편이 괜찮다면 나도 신경 안 써도 된다.

진짜 고마워 남편.


그렇게 어질러진 집을 탈출했을 땐,

더 심해지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런데 웬걸. 보이는 설거지, 빨래는 물론

그냥 두어도 될 바닥 닦기, 침대 시트 빨고 정리하기,

거라지 정리하기 완료. 정말 구석구석을 닦아놓았다.

결혼 17년 차,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또 발견했다.

새로운 것보다는, 진화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키친에서 아이들 밥 준비하는데,

This is where you belong~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의 넘버,

그 가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헬퍼봇과 주인이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


삼시 세끼 밥을 해야 하는 방학이라

지긋지긋하던 키친이,

가끔은 나를 옭아매는 듯 느껴지던 그곳이,

콧노래 소리로 흥얼거리게 되는

취미 생활의 공간이 된 듯했다.


내 기꺼이 가족들을 섬기리이다

This is where I belong~

This is where I belong~

This is where I belong~


이 감정, 감사 오래 기억해야 할 텐데.



* 나민애 교수 영상​ :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가치


내일 연제 예정인 브런치북 '네 인생이니까'의

<단호함, 엄마의 필살기>는 한주 건너뛰고

다음주 토요일 9/13에 찾아뵙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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