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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쓰기. 계속되는 홀로 여행 1

쓰면서, 마음공부 중

by 여행하듯 살고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아이들 개학 2주 전 다시 황금 같은 기회가 생겼다. 어쩌면 뉴욕 여행보다, 이 귀한 5일 동안 제대로 혼자서 여행을 한 것 같다.


여행을 되새기는 글쓰기 여정,
쓰면서 더 깊이 나를 만나는 여행.


5일 동안 딸이랑 둘만 집에 있게 되었다. 딸이 있긴 하지만 밴드 캠프 때문에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학교에 가있는다. 아침 9시에 내려놓고 오면 오후 5시까지 고스란히 내 시간이다.



읽는 걸 좋아했다. 쓰고도 싶었다. 그런데 제대로 써본 적이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랐다. 일기부터 써보라는데, 노력을 해보아도 그날 한 것의 나열이 전부였다. 일기 쓰기는 왠지 부담이 되기까지 해서, 삼 년 전부터는 감사노트를 썼다. 하루에 감사한 제목 3개씩, 아주 간단하게 기록했다.


첫 2년 동안은 아이들 스케줄이나 식단을 기록한 게 전부였고, 그것마저 건너뛴 날이 절반이 훨씬 넘었다. 그래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적다 보니 어느 날은 내 속마음에 있는 깊은 이야기들을 끄적이게 되었다. 그런 날들이 쌓여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내 생각을 드디어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제대로 쓰려고 알아보니 브런치 만한 플랫폼이 없었다. 작년 여름, 브런치 작가가 되고는 글 4개를 적었다. 쓰는 걸 지속하지 못하고 일 년 정도를 그냥 흘려보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는 너무 당연하게 잊혀져 갔다. 아이들 라이드 하며, 밥 하며, 청소하며, 남편 목회 돕는 사이사이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 해를 돌아 다시 여름. 아이들 방학을 맞이하면서 나도 무얼 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떤 강제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찾은 브런치. 아이들 교육에 대한 글을 일주일에 하나씩은 꼭 올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성실하게 지켜갔다. 7개의 글을 적고는, 뉴욕 여행 때문에 흐름이 끊겼다. 사실 글이 잘 안 써졌는데, 여행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내가 무얼 해도 그리 끈기가 많지 않은 건,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혼자 다녀온 뉴욕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 놓아야 한다. 사진을 찍어 놓지 않으면 기억이 휘발되는 것처럼, 이 여행은 곧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흩어지기 전에 선명하게 남겨 놓아야만 한다. 브런치에 글로 잘 정리해 놓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다짐을 아직 실행으로 옮기기 직전,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응모가 한 달 뒤 즈음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설레었다. 어차피 쓰려고 한 글인데, 출판 프로젝트 덕분에 나를 즐겁게 몰아갈 기회가 되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염려도 된다. 이제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 학교가 다시 시작되면 라이드도 많아진다. 교회 여러 프로그램과 대심방도 시작될 텐데, 글 쓸 시간이 있기나 할까.


그러던 중에 만난 '5일 동안 집에 거의 혼자 있게 된 시간'은 가뭄에 내린 단비 같았다. 내내 글쓰기 캠프라도 들어온 것처럼 쓰고 또 썼다.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진짜 필요할 때만 먹게 되고 과식하는 일도 없었다.


방학 내내 아이들 챙기면서 나도 필요 이상으로 먹게 되니 몸이 힘들었다. 꼭 필요한 영양소를 적당한 만큼만 섭취하니 몸이 진짜로 깨끗해지는 것 같다. 보쌈 삶은 냄비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지방을 긁어내고, 세제로 깨끗이 닦아 버린 그런 느낌이다.


이번 뉴욕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 글쓰기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학이 글쓰기'라고 적고 보니 좀 민망하다. 대단한 작가라도 난 줄 알겠다. 이제 막 글 쓰는 연습을 시작한 초보가 그냥 일기 같은 글을 끄적거려 놓고, 작가 놀이라니.


하지만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던 사람이 브런치에서 '작가'로 불리며 브런치 북을 연재하고 있으니,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루 종일 집중해 글을 쓰는 이런 경험이 처음인지라 낯설다. 낯선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일 째 글을 쓰면서 눈뜨자마자 글 쓰고, 먹으면서도 쓰고, 커피 마시면서도 쓰고, 잠깐 청소하다가 또 쓰고, 또 썼다.


아침에 눈뜨고 다시 잠들기 직전까지 틈틈이 글 쓰느라 유튜브를 켠 지도 며칠이나 됐다. 한국에 멀리 떨어져 살며 유튜브는 내 소식통이자, 육아 퇴근 후 콘서트였다. 때론 심리치료사가 되기도 했고, 요리책이었다. 티브이이자 라디오이고 인터넷 강의이기도 했다.


십오 년을 유튜브 바다에서 헤엄치며 물가로 나와 볼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 바다에서 제일 편하게 숨을 쉬는, 한 마리 물고기였다. 그런 유튜브를 5일 동안 아예 보지 않았다는 건 나 스스로도 믿기 힘든 얘기이다. 이런 도파민 중독 치료제가 또 있을까.




쓰면서 내가 평소에 '별거 아닌 조그마한 것'에 스트레스를 쉽게 받았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좀 더 즐겨보자. 한숨 푹 내쉬는 대신, 숨 크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가볍게 후후 뱉어보자. 그리고 그냥 한번 웃어보자. 마음 넓게 가지려는 연습을 매 순간 잊지 말자 다짐했다. 이런 사색들이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내 글에 사랑이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는 게 조금 슬펐다. 하지만 억지로 그런 척하며 쓰고 싶진 않았다. 마음에 넘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썼다. 나를 찾는 게 목표니까 최대한 솔직하게 써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 해체시키고 남아있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를 향한 사랑이 가장 컸다. 무조건 더 인정받기 바라는 모습, 손해 볼까 전전 긍긍하는 모습, 빨리 많은 걸 성취해야 가치 있다는 삐뚤어진 생각들.


거울 같은 시를 만났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과 똑같을까. 이런 나의 납작한 생각을 시에서 발견하다니, 완전히 정곡을 찔렀다. 나태주 시인의 <마음공부>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순간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나

끝내 나는 세상에서 잊혀서는 안 되는 사람이고
내일도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

그것부터 날마다 내어다 버려야만 했다


아니,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만 받아들일 것 같은, 사랑 넘치는 '풀꽃 시인' 나태주 어른도 이런 생각을 품었다니... 그것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정겹고 따뜻한 시인으로부터 뜨겁게 마음공부를 배운다. 이제 나도 그처럼 '그것부터 날마다 내어다 버리려고' 한다. 나를 더 비워버리려고 마음을 먹자, 진짜 소중한 순간들 마다 그 속에 푹 담겨서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가 딱하게 보인다.


아, 또 자기 연민인가…


아니다. 이번에는 모두 해체시켜 본 후에, 선한 것만 남겨서 재 창조 하려는 의도다. 지금 더 많이 안 봐도 괜찮아. 많이 달렸다는 기록을 다 안 채워도 괜찮아. 빨리 가려다 옆에 사람 어깨를 건드렸을 땐 무감각하게 차가운 눈길만 던질게 아니라, 미안하다는 짧은 인사나 웃음을 보여주는 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 같아. 조금 늦어도 괜찮아. 그거 다 못해도 괜찮아.


아 괜찮아, 괜찮아. 이 구절을 반복하는데 눈물이 고인다. 가끔 너무 흥분하거나 좌절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한숨 쉬며 괜찮다고 위로한 적은 있다. 그런데 이런 고요 속에서 모든 걸 해체시킨 후 남은, 태고의 자아에게 괜찮다고 말을 건넨 후 만난 눈물은 결이 다르다. 분노나 답답함은 이미 사라지고, 정화의 눈물만 남았다.



또 나를 위로해 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내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큰 감정이 생겼을 때, 그걸 바로 표현해 내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러다 내 마음 읽어주는 섬세함을 만났을 때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박노해 시인의 시도 나를 토닥여준다.


<멈춰야 보인다> - 박노해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꽃은 달아나지 않는다

너무 앞서가려고 하지 마라
삶은 가끔 돌아가기도 한다

멈춰야 보이는 게 있고
침묵해야 들리는 게 있으며
비워야 채워지는 게 있다

오늘 잠시 멈추어

너 자신을 다독여보아라

참 수고하며 살아왔다고

괜찮다고

아주 잘해왔다고


다시 한번, 나를 또 너를 위해 반복한다. 아주 잘해왔다고, 괜찮다고, 참 수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잠시 멈춰 우리를 다독여보자고.


이렇게 나태주 시인과 박노해 시인, 거인들의 어깨에 서서 더 큰 곳을 바라본다. 이렇게 잠시 멈추어 여행하고 글 쓰며 나를 비워내 보고,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다.




2021년에 클래스 101 강의를 론칭했었다. 2020년 12월에 응원하기를 시작해, 강의 계획서를 보여주고는 선결재로 수강생들을 모았었다. 이미 결재를 한 수강생들 덕분에, 세 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대본을 만들고 비디오를 찍고 편집하는 것을 아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9살, 7살이고 코로나로 모든 게 닫혔을 때다.


네 식구가 하루 종일 같이 집에서 뒹구는데 조용히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강의를 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저녁 7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남편이 기꺼이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고, 그렇게 3개월 보냈다.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강의를 오픈한 3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강의를 신청해 주셔서 첫 달에만 강의료가 천만 원이 넘게 들어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번 제13회 브런치 응모 프로젝트에 당선이 되면 출판 기회와 함께 상금 500만 원이 준다고 한다. 나 같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생아 같은 작가가 당선될 리가 있나, 하면서도 어떤 기억 하나가 딴지를 걸어서 기대는 해보게 된다.


클래스 101 강의 만들기를 도전했을 때이다. 처음 강의 개설 여부를 결정하는 '응원하기'가 부족해서, 그 프로젝트가 무산될 뻔했다. 다행히 주최 측에서 오픈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주어 조금 예외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감사한 기회를 얻고, 결국에는 2021년 최다판매 클래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혹시 아나? 볼링 처음 치는 사람이 높은 점수 내고, 포커 처음해보는 친구가 돈 다 따가는 Beginner's Luck (초보자의 행운) 같은 게 따를 줄을. 그럼 정말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출판기회가 생기고, 상금 500만 원을 받는 행운이 생긴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제 받고 못 받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대상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는 계산기가 막 돌아간다.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쓸지도 다 정해버렸다.


일단 십일조 50만 원 드리고, 엄마랑 시댁 50만 원씩 선물을 드린다.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벌어서 사려고 미루어 둔 게 있다. 러닝 할 때 나를 따라오면서 영상을 찍어줄 아주 작은 드론, DJI NEO. 독일에 사는 어떤 한인 러너가 쓰는 걸 보고는 정말 부러웠다. 그게 있으면 다시 유튜버 크리에이터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100만 원은 우리 가족 남편 딸 아들, 세 명의 글쓰기 대회 상금으로 걸겠다. 읽는 거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상금을 걸어서 까지, 어떻게든 써보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 글쓰기 자체에 치유 능력이 있으니까.


심사 같은 건 없을 예정이다. 내가 마련한 아름다운 노트에 무엇이든 손글씨로 한 권 가득 채우기만 하면, 선착순으로 70만 원 20만 원 10만 원 상금을 줄테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써보기만 하면 평생 그 자체를 잊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다.


당장에 계속 쓰는 습관이 생기지 않더라도, 어느 잠 못 이루는 답답함 밤 너를 위로해 줄 친구가 생기는 거다. 너무 감정이 커져버려서 어디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낮에도 그 친구는 다시 너를 만나러 올 거다.


그 친구를 평생 가까이할 수 있게 소개만 해주고 싶은 것이다. 60만 원, 30만 원, 10만 원이 나을까? 세상, 정말 갖고 싶게 생긴 노트를 세 권 사 와야겠다. 한 사람이 상을 모두 쓸어가도 좋다. 100만 원으로 글 쓰는 재미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습관을 사 줄 수만 있다면, 내가 앞으로 30개월 동안 밖에서 커피를 안 사 먹는 한이 있어도, 내 기쁘게 챙겨줄 테다.


즐거운 상상덕에 도파민이 마구 솟는다. 이런 설레발 때문에 당선이 안 되겠다. 그럼 내 글이 문제가 아니고, 내 설레발이 문제인 걸로ㅋㅋㅋ 내 브런치 북을 일단 13화나 써볼 수 있게 된 충분한 동력이었으니까 그걸로 됐다. 정말 충분하다. 여행이 나를 찾아보려는 시도였다면 글쓰기는 결국 나를 직접 찾아준 은인이다.


글 쓰고 싶어서 매일 새벽 3시면 눈이 떠졌다. 알람이 없이도 이렇게 일어나 지는 건 기적이다. 새벽예배 갔다가 아이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나면 아침 시간은 대충 다 간다. 집중이 가장 잘되는 시간을 잡기 위해선 피곤함 따위는 고려대상도 아니다.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낮에 틈틈이 자려고 했고, 아침에 러닝 하는 시간도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닷새를 지나면서, 나도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자신감을 얻었다. 글 쓰며 틈틈이 읽은 브런치 작가들 글 중에는 정말 좋은 글이 많았다. 그런 작가의 글을 읽으면 마냥 신난다. 좋은 글을 내 눈에 담을 때 입가엔 미소가 절로 고인다.


그러다가 내가 쓰던 글을 떠올리면 자괴감이 들고 무기력해질 때도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내가 그런 느낌의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 때문이다. 부러움 때문에 마구 뻗어 나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쉽게 멈추게 되는 것도 글쓰기 덕분이다.


잠깐, 이런 비교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만, 이 생각을 접어 두자.

나만의 글을 쓰는 것이니까.
어떤 글이든 가치는 있으니까.


이제 나를 내려놓고 조금 더 넓은 글을 써보자. 이제 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소설을 써야겠다. 내가 다 억울하던 그 이야기를 언젠가는 써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의 시집살이. 그걸 쓰게 된다면, 쓰면서 쓰라린 부분을 건들어야 하니 조금 힘들지 모르나 결국 써내려 가면서 치료가 될 거란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쓰다가 대충 초고는 만들어진 것 같아서, 다른 글을 쓰려고 저장하고 나갔다. 그리고는 지금 충만한 이 감정을 좀 더 기록해야 할거 같아서 오늘 달력에 일기를 적었다. 그때도 또 글쓰기에 대한 예찬만 줄줄 흘러나와 그 일기를 이곳으로 가져와 본다



2025년 8월 1일 금요일 오전 9:30

필 받은 대로 글을 써내려 갔다. 아침 러닝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기 바로 전에 짧게나마 기록했다. 딸 도시락 싸서 보내고 돌아오자마자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글을 썼다. 그 글은 러닝 하면서 든 글쓰기에 대한 생각의 연장이다.


여행을 기록하려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날것의 생각들이 딸려온다. 사랑이 부족한 내가 보여서, 조금 더 마음 넓게 가지기로 다짐한다. 지금 5일 동안 만들어온 클린 한 몸을 지속시킬 선서도 해본다.


글이 정말 쭉쭉 줄줄 잘 써진다.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껴진다. 아침에 무리하지 않고 딱 5킬로만 뛰고 와서 몸이 더 단단해졌다. 피곤하지 않고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어준다. 러닝을 하면서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날아갔다. 정제되어 가라앉은 생각들만을 가지고 뼈를 만들고, 거기에 살을 입힌다.


이렇게 깨끗한 기분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운동 후에 느끼는 상쾌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중독되었다. 이내 찾아드는 피로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덤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더 정갈하다.


팔레트에 두 개의 물감을 섞으면 아름다운 색깔이 만들어진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한 가지씩 더 섞어본다. 의도와는 달라진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여러 물감을 섞을수록 나중에는 똥색만 남는다. 어디에도 쓰고 싶지 않은, 그래서 쳐다보고 싶지 않은 색이 되어버린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색의 혼합에 대해 배우면서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았다. 빨강과 흰색 물감을 섞으면 분홍, 파랑과 노랑은 초록, 빨강과 파랑은 보라가 되고,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을 섞으면 검정이 되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빛의 삼원색, 빨강 파랑 노랑을 섞으면 백색광이 된다고 한다.


빛은 섞을수록 오히려 밝아지는
가산혼합의 원리를 따른다.


지금 내 마음을 더듬어 쓰는 행위는 여러 감정들을 더해 빛을 섞고 또 섞은 것처럼, 결국 내 마음에 가장 순수한 밝음을 만들어 냈다. 나를 진정으로 맑게 만들고 있다. 이 좋은걸 왜 이제 시작했는지 분할 지경이다. 작가들은 이 좋은걸 여태껏 왜 지들만 했는지. 러닝을 진작 시작하지 않았던 것보다, 더 강렬한 후회가 몰려온다. 후회막심이란 단어가 이렇게나 어울릴 수 없다.


괜찮다. 후회도 금방 흩어져 버렸다.


내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 순간에는 어떤 아쉬움도 후회도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있을 곳이 없다. 대신 곳곳에 충만한, 고상한 감사함들이 떠돈다.


기도만큼 경건하고, 안마만큼 근육을 이완시킨다. 신생아로 엄마 젖을 빨 때 이런 충만함이 있었을 듯하다. 아니면 엄마 뱃속에서의 안정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글쓰기로 내가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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