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부자 동네의 풍경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by 여행하듯 살고

12월 24일 오전 10시 38분.


오늘 코스는 단순하다. 여기서 저기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10K. 여기는 아들 수영 연습하는 곳, 저기는 그 수영장 주변 내가 애정하는 달리기 코스. 화려한 코스는 아니고 한적한 찻길 옆의 인도인데, 주택가라 사람이 별로 안 다니고, 쭉 뻗어있는 도로에 비해 차량 이동도 매우 적다. 애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변 가로수 덕에 그늘이 많다는 거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오늘내일 공식적으로 수영팀 연습은 없다. 아들이 월요일에 연습이 가기 싫다며, 대신 수요일 (크리스마스이브 팀 연습 없는 날)에 자기 혼자 가서 연습을 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냥 팀연습에 가는 게 훨씬 낫지 않냐며 잠시 설득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마지못해 허락했다.


어제, 화요일 아침 팀연습은 두 시간 꼬박 채우며 스스로 만족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맑아진다며. 열두 살 아들이 벌써 그런 만족감을 알아내다니 뿌듯할 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월요일에 했던 약속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열 시 즈음 커피로 맑은 정신을 불러들이니 불현듯 생각나 버렸다.


"아들, 너 월요일에 안 가는 대신 수요일에 혼자라도 연습한다고 했지?"

"아, 맞다. 오케-"

아들의 대답이 담백해서 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가끔씩 일단 미루고 보는 아들 성격을 어떻게 고쳐줄까 고민한다. 일을 미루면서도 아들은 스스로 대안을 마련한 후, 내 결제를 기다리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마지못해 허락할 때가 많지만 결국 그걸 지켜내는 아들을 보면서,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내가 밀어붙여야 하는 게 아닌가 안달 낸 적도 많았다. 조금은 더 강하게 해야 하나, 아니면 본인이 선택한 대로 존중해야 하나? 무엇이 맞는 건지 당최 알기 힘들다. 그냥 난 성과대신 관계를 택했다. 본인의 의사를 더 존중할 때, 결국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아들을 수영장으로 들여보내고, 난 곧바로 뛰러 간다. 막 달리려고 하는데, 아들의 경쟁자도 개인연습을 하러 와 있는 게 보인다. 이미 풀 안에 들어가 있다. 역시. 팀 내에 아들 나이의 에이스는 세명이다. 아들과 벌써 연습하고 있는 경쟁자 친구, 그리고 다른 여자아이 한 명. 셋이 팀 내 단짝이다. 수영 대회 마치고는 같이 식사를 하고, 연습 마치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기도 한다.


미성년 수영 대회는 성별, 나이별로 종목을 나누기 때문에 세 명 에이스 중 여자아이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이미 와서 개인 연습하고 있는 그 친구가 처음 2년 정도는 더 잘했지만, 어느 순간 아들이 역전시켜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다. 선의의 경쟁자.

수영장을 둘러싼 거대한 주택 단지를 달린다. 꽤나 고급진 주택부터 무난한 주택까지 다양한 단지가

모여있는 곳이다. 일 킬로미터쯤 달리니까 테니스 장이 나온다. 팀 수영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8개의 코트가 꽉 차있다. 주로 중고등 학생들로 보였고, 레슨을 받는 것 같았다. 겨울방학이고 더구나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열심히구나. 잘 사는 동네라 역시 좀 다르네 좀 놀라고, 계속 달린다.


테니스장 바로 옆으로 골프장이 펼쳐져있다. 멀리 오손도손 골프 하는 모습이 모인다. 어떤 무리에는 우리 아들 또래 아이도 보인다.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라운딩 하는 아이들. 미국이 한국보다 쉽게 골프를 친다지만, 그래도 역시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야 가능하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라면.


필드에서 골프를 즐기는 무리에게서 눈을 거두어 계속 달리자마자 정면에 대비되는 장면이 펼쳐진다. 대여섯 명이 인도에서 공사 중이다. 그중에 두 명은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아, 여유롭게 골프 치고 테니스 레슨 받는 아이들이 있지만,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아이들도 있지. 맞아.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에서 살면서도 가끔 잊어버린다.


고등학생들이 일하는 게 흔하고, 우리 큰 아이도 이년 후 16살 즈음되면 어떤 일이든 해보라고 장려할 거다. 인생 경험과 독립심, 자기 관리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그런데도 방금 전 그 짧은 시간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을 무심코 바라보자니,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뛰는 두발에 몸은 맡겨두고, 머릿속은 방금 스쳐간 장면들을 처리하느라 회로가 더 바빠진다.


저기 주황색 조끼를 입은 고등학생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일하는 게 괜히 조금 안 돼 보였다. 수영장, 테니스장, 골프장에서 취미를 즐기거나 실력은 연마하는 또래와 달리,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자아실현보다는 생계수단으로 선택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청소년들. 우리 아이에게 이런 휴일에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정도로 넘기기엔, 그 알량한 생각을 내가 견디기 힘들다.


우리 아이가 최고의 것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부모의 최선으로 많은 걸 누리게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는 걸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건 다른 문제다.


그들에게 빚진 마음은 나를 자주 불편하게 한다. 없애고 싶은 불편함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지를 리마인드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들과 내가 다른 건 단지 내가 시대와 지리를 잘 타고났고, 그 외에도 여러 운이나 은혜 등이 내 삶을 지금까지 이끌어준 것뿐이다.


예수님이 오신다. 이미 오셨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건 많은 걸 요구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자주 망설이고 멈칫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 따라 조금이라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풍족한 어린 시절을 증명해 줄 운동이나 악기보다, 좋은 대학 졸업장보다, 화려한 직장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이런 거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그 속에서 내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 찾아내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해 보기.
나를 보내신 이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면서 더 잘 즐기기, 그렇지만 혼자서 잘 사는 것에만 골몰되지 않기.
사랑 나눌 줄 아는 사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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