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채워진 투명 아크릴 속에서 길을 내는 개미를 본 기억이 있다. 마치 설계도를 숙지한 배테랑 건축가 마냥 거침없이 길을 만들어 내는 그들에겐 뒤가 없었다. 곧 선명하게 여러 갈래로 드러난 그 길들이 그리도 명쾌할 수 없었고, 약간의 경외감이 들었다. 창조주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경향이 있었지만 그들과 나는 결정적이고도 확실한 차이가 있었는데, 나는 내가 만들어온 길을, 만들어갈 길을 좀체 믿으려 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상을 해 봤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대의 길들이 뻗어나간다. 우리는 극히 한정된 것만 보게 설계되어 있고, 어차피 가시광선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의 이야기니 그것들의 색, 모양 따위는 모르겠다. 상상하기 나름으로 그저 무색무취의, 어쩌면 길이라 단정 짓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편의상 길로 객관화시켜 가정한 그것들이 사물, 생물 막론, 주위를 에워싸고 주변의 것들과 얽히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고 끌리기도 하면서 끝을 모르게 뻗어있다. 만약 눈앞까지 들어찬 그것들을 보게 된다면 숨 막히는 공포를 느낄 테니 애초에 볼 수 없음을 행운쯤으로 해두자. 또 물론 그것들은 변화무쌍하고, 출처도 생사도 모른다. 미친 듯이 시간과 공간에 들어차 각양각색의 포즈로 우주 속을 너울거리는 그것들은 혹 심해 속 신비한 빛을 내는 해파리처럼 우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서도 역시 뻗어나가고 있다.
이런 이야기의 요는 이렇다. 빽빽이 들어찬 그물망 같은 길에서, -그물이란 표현은 훨씬 듬성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우리가 실수로 발을 삐끗해서 경로를 이탈하거나 잘못해서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지장이 있을까. 충격으로 어안이 벙벙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격분하거나 얼핏 좌절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떨어지는 곳은 또 길 위, 주위에는 셀 수 없는 길들이 가득하기만 한데. 물론 함정은 있다. 아무리 많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현자들은 그 확실한 ‘스페어’들을 꿰뚫어 봤다보다.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또 하나의 방법이며, 길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는 명쾌한 말들은 우리를 다음 길로 넌지시 눈짓해 주는 듯하니 말이다.
그 수많은 길 중에 온전한 내 길을 찾는 방법 또한 가르쳐 주셨다.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에게나 다른 이에게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 보아라.
그리고 오직 너 자신에게만 한 가지를 물어보아라.
이 길에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