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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Jan 06. 2023

동시테라피

김정련 동시집 『꽃밭이 된 냉장고』(한그루, 2022)를 읽고



    롱스커트에 하이힐 신기를 좋아하던 나.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롱스커트와 하이힐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내 옷차림은 운동화에 청바지가 되었지만. 교사들이 매주 돌아가면서 찬양 인도를 해야 했는데, 그날조차도 내 옷차림은 롱스커트와 하이힐이었다. 폴짝폴짝 뛰면서 율동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보단 나를 꾸미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를 위해 잠깐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마음 – 사전적 의미로 사람의 지식·감정·의지의 움직임. 또는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상태 - 이 반영되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확신까진 아니지만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 옷차림에 패션 감각이나 가격대가 포함된 것은 단호하게 아니다.


    불편한 옷차림으론 마음을 다 쓸 수 없다. 아무리 내 마음이 백이라도 백을 쓸 수가 없다. 아이들이 암만 예뻐도 롱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으로는 그랬다. 아이들과 편하게 부대끼며 놀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차림이었다. 불편한 하이힐을 벗고 편한 청바지를 입게 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일주일 내내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웃음도 나오지 않을 때, 지친 몸으로 교회에 들어서면 계단에서부터 뛰어 내려오는 아이들 발소리에 금방 힘이 났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웃음에 뭔가로 꽁꽁 뭉쳐진 마음이 풀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아이들은 무너지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였다.










    동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제주의 공기와 나에게 보낸다는 하트와 함께. 앞서 지루하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동시를 만난 내 마음이 꼭 아이들이 발견해준 기쁨을 누리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주던, 꽁꽁 뭉쳐진 마음이 풀리게 했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던 아이들의 존재처럼 힐링이었기 때문이다. 젖 냄새 풍기며 쌔근쌔근 잠든 아이를 품에 안은 포근함이기도 했고, 잠든 아이의 배냇짓에 온 세상이 말랑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내 얼굴의 모든 긴장이 풀리고 온 근육이 웃고 있는, 기분 좋게 게으르고 싶은 마음. 당장이라도 “아, 너무 좋잖아요.!”라고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걸 참고 참았더랬다.


    부자가 된 마음이었다. 몇 번을 곱씹어야 알 것 같은, 내 머리를 탓하게 되는 글들만 읽다가 이 책은 내게 「코끼리 코의 마법」처럼 까르르 터지는 웃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랑 풋콩이 들어있는(「우렁각시1」) 외할머니의 뚱뚱한 보따리 같은 마음이었다. 땅만 보는 가로등에 멋진 세상 구경시켜 준다며 가로등 밑에 살며시 놓아둔 손거울(「가로등을 위하여」) 같은 뭉클함이었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발견하는 거지? 나도 제주에 살면 가능한 걸까? 푸른 바다, 낮게 흐르는 구름, 자연산 귤 향이 첨가된 공기를 마시면 나도 이런 생각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걸까.     







우산

     

비가 올 때마다

가만히 비를 막아주는

순둥이 우산     


바람이

살살 약 올려도

자알 참아내다가     


휭휭

세게 약 올리면

못 참겠는지     


팔을 위로 번쩍 들고

불끈불끈

힘자랑 해 보입니다.   



       





맞고는 못 살지     


학교 가던 길

내리던 비 그쳐서    

 

손에 든 우산으로

가로수 툭 쳤더니  

   

고 녀석

성질이 보통 아니다.    

 

왜왜왜

왜 때려!     


빗방울 두두두 쏟아내며

맵게 덤빈다.    


      

    과연 사랑스러운 발견이다. 이 책의 동시를 다 적고 싶은 마음이지만. 저녁 10시, 라면을 먹을까 말까 물을 올려놓고 가까스로 끄는 심정으로 참는다.

    엄마의 동시와 딸의 그림. 엄마와 딸이 만든 동시집. 너무 예쁘지 않은가. 힐링이 필요할 때 읽어야지 하는 나만의 책이 한 권 있다. 『미소 천사의 일기장(다운 장군 태준이의 따듯한 마음 이야기)』이다. 이 책 옆에 『꽃밭이 된 냉장고』 자리도 마련해뒀다. 그나저나 봄동 배추꽃은 어떨까, 피워보고 싶은 마음은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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