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마음 쓰는 밤』 (창비, 2022)
읽은 지 벌써 한참 됐는데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해를 넘겼다. 2023년 1월 5일 초판 2쇄를 발행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전 쓰다 멈춘 한글 파일을 열었다.
『마음 쓰는 밤』은 내게 각별하다. 5년간 1,000여 명의 학우를 글쓰기의 세계로 안내해온 작가 고수리. 그 1,000여 명의 학우 중에 내가 있다. 사무치고 힘들고 기쁘고 행복했던 지난날에 대해 글로 쓸 수 있게 된, 언어가 생긴 내가.
작가님이라 불러야 할까.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고수리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좋다. 모두의 작가님,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이 아니라 특별한 사이가 된 것 같아서다. 교수님은 내게 ‘나의 첫 학우’, ‘첫 제자’라고 말해줬다. 그녀도 내게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이다. 마주 본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아니까 특별한 사이라고 해도 되겠지.
『마음 쓰는 밤』을 딱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생기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말 쓰고 싶어진다. 쓰고 싶은 당신. 쓸 수 있을까 자신 없는 당신. 쓰다 지친 당신. 주기적으로 글태기를 겪는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선물하라고. 두고두고 쟁여두고 꺼내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 쓰는 밤』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많이 한 생각 - 첫 번째는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 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다른 책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를 읽으며 툭 터진 단추처럼 눈물을 투둑투둑 쏟았었는데 이 책은 역대급으로 좋았다. 뭐랄까. 홀로 걷던 내게 손짓하며 기다려준 마음 같았다. 아마 다음에 나올 책도 『마음 쓰는 밤』을 뛰어넘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작가, 교수, 아내, 딸,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는 도대체 언제 쓰고 읽을까.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나도 그놈의 시간이 없어서 쓰기도 읽기도 힘들다고 버둥거리는데. 그녀는 이 책의 원고를 쓸 때 에세이 클래스 특강을 하고 있었다. 30명의 학우 글을 매주 10명씩 A4 한 장 이상의 분량으로 피드백을 남겨주었다. 피드백하는데 꼬박 7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10주간 한 번도, 단 한 명의 학우에게도 흐트러짐 없었다. 매번 정해진 시간을 넘기며 마음을 쏟아주었다. 이 특강 외에도 글쓰기 수업, 원고 작업, 쌍둥이 아이와 가정, 그녀에게 맡겨진 사람을 돌보는 등 그녀의 손이 닿아야 할 일이 엄청났을 텐데 그런 와중에도 이 책을 엮고 다듬었다. 그녀 앞에서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양심상 꺼낼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속삭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삼십 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멍하니 혼자/ 외따로 떨어져/ 선잠을 자든/ 몽상에 빠지든/ 발칙한 짓을 하든// 전설 속 사무토 할머니처럼/ 너무 긴 행방불명은 곤란하겠지만/ 문득 자기 존재를 감쪽같이 치우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중략)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습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 이바라기 노리코, 「행방불명의 시간」, 마음 쓰는 밤 중에서
『마음 쓰는 밤』. 이 책 뒤에 숨겨진 그녀의 남모를 시간을 생각해 봤다. 간절히 읽고 쓰고 싶어서, 시간이 나길 기다리지 않고 일단 시간을 만들었다던 그녀. 겨우 30분이 아니라 무려 30분이라 부르던 그 시간을 모아 이 책을 엮었을테다. 나는 무려 30분이 만들어 낸 간절한 시간을 아껴 읽었다.
『마음 쓰는 밤』은 고수리 작가님 그 자체다. 홀로 쓰고 있는 나의 굽은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 온기다. 세상 모든 사람이 글을 쓰면 좋겠다. 그녀의 말처럼 반짝일 필요도 아무도 될 필요도 없다. 모두에게는 고유의 이야기가 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어 그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 고유의 이야기를 쓰게 된 내가 그녀를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이 책에 실렸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한 걸음으로 나아가길 응원할게요.”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만들어준 고수리 작가님. 작가님이 건넨 이 문장이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글 쓰는 하루하루를 시시각각 설렘으로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