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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Apr 24. 2023

Shall we dance?

『놀이터는 24시』 중 「김중혁, 춤추는 건 잊지마」

      

난민과 경계에 관한 이야기에 둥근 정원이라는 낯선 공간이 등장하면서 경계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춤추는 건 잊지 말라는 제목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꼭 지켜내야 할 삶의 마지노선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잃지 말아야 할.


잘 나가던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송서우는 회사의 부도로 실패한 배신자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소리들. 다리 다친 불쌍한 고라니처럼 보더라인 근처에는 자기를 잡아먹을 놈이 없단 걸 알았던 걸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을까. 도망과 도모 그 경계선에서 송서우는 하루 근무, 하루 휴식의 단조로운 직업의 보더라인 경계원이 된다.


보더라인 경계원의 삶은 24시간 근무 후 휴식 아니면 유흥,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근무 환경 상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없던 그들에게 놀이는 재미 삼아 동물을 사냥하거나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소문을 만드는 일이었다. 송서우는 충실하게 일하고 충실하게 휴식했다. ‘보더라인 순찰대’가 적힌 경계원 조끼를 벗고 초소를 나온 송서우는 몸을 피곤하게 하여 기분 좋게 잠들 생각으로 늘 보더라인 근처를 산책했다.      


한 달쯤 걷기를 계속하자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더라인 근처의 나무와 풀과 꽃의 모습이 계속 바뀌었다. 풍경 보는 법에 익숙해지자 소리가 귀에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모든 감각이 열리는 데 세 달이 걸렸다.

-p.255


모든 감각이 열리자 우연한 이끌림에 낯선 공간과 마주한다. 판도라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무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자신을 보더라인으로 밀어냈던 소리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곳, 온 감각으로 숲의 소리와 몸짓을 느끼는 곳. 송서우는 그곳을 ‘둥근 정원’이라 불렀다.     


“위에서는 뭘 해?”

“춤추며 놀지.”

“어떤 춤을?”

“대답 대신에 직접 춤을 보여 주는 거야?”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가지들은 제각각 움직였다. 정말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가지 사이로 햇빛이 박자에 맞게 끼어들고 전보다는 수가 줄어든 이파리들이 박수를 치듯 서로 부대꼈다.

-p.273


송서우가 둥근 정원에 들어서는 장면과 온몸으로 숲이 보내는 언어와 대화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이었다. 주인공이 숲으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미쳤다’라는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송서우는 정말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긴 것일까. 둘 중 어떤 것이든 나무는 둥근 정원의 침입자인 송서우를 온몸으로 초대한다. 그는 둥근 정원을 만난 후 더 이상 꿈을 꾸지도 불면에 빠지지도 않았다.      


숲이 겨울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던 시기에 송서우는 둥근 정원에 누워 있다가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키가 큰 물푸레나무의 잔가지들이 여러 개 꺾여 있었는데, 그 간격이 너무나 일정해서 계단처럼 보였다. (중략) “이건 대놓고 올라오라는 뜻이네?” 송서우는 커다란 나무를 안고 위로 올라갔다.

-p.274


둘은 숲의 일부가 되어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다음날 내전이 터진다. 보더라인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른다. 난민들이 그 철조망을 넘어오려 한다. 송서우는 고무탄으로 경고하지만 곧 철조망에 흐르던 전기를 끈다. 인간의 선택으로 인간이 나눈 경계를 포기하는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가장 신선했던 장면은 마지막이었다. 둥근 정원으로 달려간 송서우가 밑동이 썩은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가 스스로 나무 밖으로 걸어 나온 부분은 나름 반전이기도 했고 보더라인 경계원이 된 시작을 떠올리게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결국 살아야겠다고 결정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걸 찾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었다.” 

-p.256


그는 죽음이 아니라 다시 삶으로 걸어 나왔다.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과정 속으로. 그렇게 살다 보면 다시 둥근 정원에서 춤추는 날이 오지 않을까. 춤추는 건 잊지마.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제든 삶 쪽으로 방향을 틀면 희망은 있을 거란 메시지로 느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둥근 정원이 당신을 초대한다.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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