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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Jan 30. 2023

나는 기억한다

출처_Unsplash의Fredy Jacob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날을. 봄이었는데 눈에 보일 듯 불어 닥친 세찬 바람에 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웅크렸는데 엄마가 나를 온몸으로 안아주던 품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동생에게 같이 놀기 싫다고 했던 날을. 집 쪽으로 몸을 돌리던 동생이 우느라 주차된 차를 보지 못해 부딪혔고 친구가 재밌다고 웃었던 순간을. 나도 재밌는 줄 알고 더 큰소리로 웃었던 날을. 웃으면서도 자그만 동생의 뒷모습에 마음 아팠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장롱 속에 숨겨 놓고 몰래 꺼내먹던 귤을. 동생들이 잠들고 나면 증조할머니가 내 몸을 쿡쿡 찌르셨다. 호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천 원짜리 몇 개를 쥐여주셨는데 귤을 사 와서 먹으라던 신호였다. 나는 그 돈을 들고 집 앞 슈퍼에서 귤을 10개쯤 사 왔다. 증조할머니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사 온 초코파이와 흰 우유를. 중학교 3학년 학부모 면담 때였다. 엄마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꼭 반 아이들 간식을 챙겨왔었다. 엄마가 면담하러 온 날 엄마 양손엔 초코파이와 흰 우유가 무겁게 들려있었다. 친구들이 “잘 먹겠습니다”라며 큰소리로 인사했고 나는 괜히 으쓱했었다. 우리 학교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고 반 아이들은 45명쯤 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집 안에 풍기던 맛있는 부침개 냄새를.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이 상고 야간에 지원하고 떨어진 날 집에 맛있는 부침개 냄새가 가득 풍겼었다. 엄마의 속상함을 모른 척하려고 나는 동생과 부침개를 더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부엌에서 애써 웃던 엄마 얼굴에 가슴이 아팠었다.  

   

나는 기억한다. 아빠가 근무하는 자동차운전면허학원에서 운전 배우던 때를. 종종 아빠와 함께 퇴근하며 차 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던 길이 따뜻하고 행복했었다.     


나는 기억한다. 주일날 중고등부 예배가 끝나면 동생을 데리고 마산 성안백화점에 갔던 것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백화점 전 층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사춘기인 내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었다. 좋아하는 동생 옆에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나는 기억한다. 비 오는 여름밤의 시골 초등학교를.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동아리 연합 MT를 갔었다. 밤이 되자 텐트 위로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졌다. 함께 갔던 총각 체육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나가자!” 하고 뛰쳐나가 맨발로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교실마다 켜진 환한 불빛, 깔깔거리며 웃던 환한 웃음들. 걱정이 사라진 하루였다.     


나는 기억한다. 친구들과 떡볶이 먹으러 시내에 나간 날을. 나와 친하게 지내던 또 다른 무리의 친구들이 나만 빼고 2층 음식점 유리창 쪽에 앉아 있던 것을 보고 친구들을 째려보며 고개를 돌렸었다. 나와 함께 있던 친구들이 “좋으니, 넌 우리가 있잖아!” 하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했었지만 나는 내내 꽁해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마당 벽에 기대 “은희야, 은희야” 하며 서럽게 울던 그 집을. 나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조 브레이너드 <나는 기억한다>로 10분 프리 라이팅을 해봤습니다. 작가님들도 해보세요.


<예시>

나는 기억한다, 단 한 번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았던 때를. 나는 살구 파이를 먹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선물을 열어 보고 난 뒤의 크리스마스 하루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나는 기억한다,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후회하던 것을.

- 조 브레이너드 <나는 기억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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