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상혁 교수님, 인친 조은희예요.
세사대에서 스승의 날 기념으로 편지 쓰기 이벤트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어요. 글 쓸 때 이렇게 시작하지 말라고 하셔서 한번 해봤어요. :D
강의도, 동아리도, 졸졸 쫓아다니는데 이제 편지까지. 저도 민망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교수님께 쓰고 싶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쓸데없는 말로 장난치고 싶더라고요.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은 다른 학우님들이 충분히 전하실 테고, 제 마음도 이하동문 짝짜꿍인지라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쓰겠습니다. 갖고 있기도 버리기도 아까운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세사대 졸업 학기가 되어서야 교수님 수업을 들었어요. 학과 단톡방에서 1년 반 동안 교수님의 인기를 가만히 지켜만 봤어요. 암만 칭찬해 봐라 내가 시 수업을 듣나, 이 생각이었어요. 시랑 교수님이 싫은 건 아니었고 무서웠거든요. 음식점에 메뉴가 아무리 많아도 저는 한참을 고민하다 먹던 걸로 시키는 사람이에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해서 교수님 수업은 다 피해 왔어요.
학우님들이 다 교수님 수업 좋다 좋다 하니까 관심은 가고 수업은 못 듣겠고 혼자 엄청 고민했어요. 이제 졸업이니까 하나는 들어야지 싶은 마음에 들었다가 졸업도 유예하고 코 뀌었어요. 책임은 안 지셔도 돼요. 저도 부담스러워요. 힛. 근데 내년에 저 보더라도 작년에 왔던 좋으니 또 왔다고 너무 지긋지긋해 마시고 반갑게 맞아주세요. 아마 저도 많이 멋쩍고 민망할 것 같으니까요.
교수님, 이번 학교 축제 때 오실 거죠?(갑분 섭외…;;) 제발 와주세요. (오셨음!!)
교수님, 제가 원래 편지 쓰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려고 앉으면 그 사람과의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다 떠올라서 정말 편지지가 모자랄 정도였어요. 친구들이 나도 하나 써줘, 나도 하나 써줘 하며 다들 제 편지 받고 싶어 했어요. 교수님도 보셨겠지만 제가 또 글씨도 예쁘잖아요. :) 고등학생 때 친구들 연애편지,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다 제가 써줬어요. 진짜 막힘없이 써 내려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자꾸 막혀요. 왜 그럴까요. 노트북으로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자꾸 과제하는 것 같아요. 문장은 매끄러운지, 오타는 없는지 자꾸 확인하게 돼요. 편지는 역시 손 글씨로 직접 써야 하나 봐요.
어쨌든 교수님. 저 교수님 수업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수업 듣고 나니 안 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하더라고요. 처음으로 시도 써보고, 이상한 시도 읽어 보고, 그냥 리뷰도 어려운데 시집 리뷰라니. 이렇게 소소한 성취를 이뤄가는 뿌듯함 말도 못 해요. 시나브로 동아리 가입할 때 정말 얼마나 피케팅이었는데요. 신청자 많아 컷 당할까 봐 진짜 알람 켜두고도 계속 핸드폰 들여다봤어요.
한 달에 두 권씩 시집을 읽게 되는 것도 좋은데 교수님이랑 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믿기 어렵겠지만 교수님 라이브강의 있는 날은 짜증이 나다가도 기분이 좋아져요. 진짜랍니다. 아직 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 나누기가 부끄럽긴 한데 교수님 덕분에 시 읽는 게 편해져서 정말 감사드려요. 내 맘대로 읽어도 스트레스받지 않아서 좋아요. 시집 한 권에서 기발하고 마음에 드는 한 문장만 발견해도 그걸로 만족하는 넉넉한 마음이 생겼어요. 교수님도 뿌듯하시죠?
저 ㅎㅎ도 쓰고 싶고 ㅋㅋ도 쓰고 싶은데 엄청 절제하고 있어요. 한글 파일에 저 웃음 표시 쓰는 거 이상하게 못 견디겠더라고요. 왠지 비기 싫어서. 그러니 교수님께서 제가 숨겨 놓은 웃음을 잘 발견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방금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 돌리고 왔어요. 인친 조은희를 인천 조은희로 바꾸라고 나오네요. 암튼 교수님! 더 쓰고 싶은 말도 있는 것 같고, 끝내기가 영 아쉽지만 내년 스승의 날 때 다시 추가로 쓸게요. 그리고 축제 때 꼭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답장 꼭! :D
세사대 총학에서 주최한 스승의 날 편지 쓰기 이벤트.
당연히 수상은 못했다. ㅎㅎ 오랜만에 읽는데 이렇게 까불었나 싶었다. 장난이 편해진 사이가 될 만큼 학우들과 잘 지내시는 교수님이라 마음껏 편하게 썼다. 7월 종강 파티에서 만났을 때 편지 얘기를 하셨다. 답장을 못 써서 안 나오려고 하셨다고 ㅎㅎㅎ 답장 쓰셨음 나는 아마 죄송해서 안절부절이었을 듯.
(눈치챘겠지만) 브런치에 글을 못 올리고 있어서 뭐라도 끌어다가 올리느라 애쓰는 중 맞다.
_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Tran Duc님의 이미지 입니다.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