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과제물 제출인 경우 주제, 분량 등을 ‘미리’ 알려준다. 대부분 한 달 전엔 공지하기 때문에 글 쓸 시간이 충분한 편이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게 어디 그리 ‘미리’ 되는 것인가. 마감이 쓰게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충분해도 항상 마감이 닥쳐야만 글이 써지고 이미 완성한 글이라도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치고 마감 직전까지 탈탈 털어 시간을 쓴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얼마 뒤에 점수가 나온다. 교수님마다 채점 기간이 달라 점수 나올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점수 확인란을 클릭한다. 학우들도 같은 마음인지 먼저 확인한 분들이 단톡방에 알려주고 서로의 점수를 공유하기도 한다. 우수과제 받은 학우들을 함께 축하하기도 하고 글에 비해 후한 점수를 받았다며 감격하기도 한다.
우리 과 교수님들은 과제 점수를 진짜 잘 주신다. 나는 그 점수가 내 글에 대한 점수라기보단 글 쓰는 나를 응원하는 마음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자주 만난다. 우리보다 앞서 작가의 길을 걸은 교수님들도 숱하게 느낀 감정이었을 테니 누구보다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점수를 주셨을 것이다.
처음 몇 번은 제출하는 과제마다 100점을 받았다. 진심으로 의아했다. 이게 진짜 내 점수일까? 싶었고 암만 생각해도 내 글이 100점짜리 글은 아니었다. 기한 내 제출하면 웬만하면 100점이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100점짜리 글은 없고, 100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100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또한 세사대 안에서의 평가일 뿐 점수와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에 쓰는 사람도, 잘 쓰는 사람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니 그저 꾸준히 내 걸음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첫 에세이에서 우수과제를 받고 나니 욕심이 들어갔다. 기말과제도 우수과제를 받고 싶었다. 순수한 마음이 사라진 자리엔 힘과 욕심만 잔뜩 채워졌다. 그렇게 쓴 글의 점수와 피드백은 아프고 속상했지만, 그 어떤 피드백보다 나를 성숙하도록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겸손해졌다. 그날의 경험이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지금도 좋은 결과엔 어쩔 수 없이 기분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냥 쓰는 것만으로도 좋다. 뭐든 욕심이 없어지면 그 자체로 행복해진다.
그때의 나처럼 글쓰기에 조급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러다 지쳐 글을 쓰지 않는다고 포기할까 봐 걱정된다.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아요. 글 쓰는 할머니가 되어요. 고수리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계속 쓰길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것 같다. 함께 오래 쓰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붙잡아준 교수님의 메시지를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00님이 너무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점수 하나, 피드백 하나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잊게 되고, 꾸준히 쓸 수 있는 힘도 사라지게 된답니다.
제가 00님에게 드리는 점수나 평가 역시도 주관적이니까요.
나 자신에게 좀 더 자신과 확신을 가지고 글 쓰시길 바라요.
결국 작가는 글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에요.
너무 많은 사정을 토로하다 보면, 결국 독자들은 질려서 떠나고 말더라고요.
많이 오래 충분히 생각하고, 한 편의 글이라도 단정히 매듭짓는 태도가 중요하답니다.
_고수리 드림.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