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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Oct 05. 2023

책 표지가 잘못 인쇄됐다

이미지 출처_Pixabay로부터 입수된 Ptra님의 이미지 입니다.



최근 일도 일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정신없이 바빴다. 지치는 것 같고, 탈탈 털리는 것 같고, 그런데도 다 잘 해내고 싶고, 쉬면 쉬는 대로 시간 아까운 데다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니까 바쁜데도 시간을 알뜰하게 못 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한 달간 책 세 권을 만들었다. 책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또 있다. 일이 하나씩 들어오면 좋을 텐데 꼭 한꺼번에 들어온다. 나도 나지만 주말에도 내내 교정하고, 작업하기 편하게 파일 정리해 주신 편집장님도 진짜 고생 많으셨다. 너무 힘드실 것 같아 나도 책 두 권을 교정했다. 회사에선 디자인 작업하고 집에선 새벽까지 교정.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인쇄소에 넘겼다.


며칠 후 인쇄소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표지와 본문 크기가 다르다는 얘기에 ‘그럴 리 없는데, 분명 크기 변경해서 넘겼는데’ 하고 표지 파일을 열었다. 아… 큰일 났다. 실수했다.

나는 실수에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스타일이라 일할 때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결벽과 강박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를 텐데도 인디자인 파일의 격자 하나하나, 상하좌우 간격도 딱딱 맞추어 작업한다. 인디자인 파일을 열어보면 디자이너의 작업 스타일이 보이는데 격자에 맞추지 않고 눈대중으로 작업해 놓은 경우도 많다. 


결과물을 보면 눈대중에 맞춘 것과 격자에 맞춘 것을 구분하기 힘들어서 어느 정도는 넉넉하게 넘어가도 되는데도 작업할 때마다 “성격 참…” 하며 끝까지 격자에 맞춘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매번 이렇게 작업해서인지 실수하면 타격이 크다. 실수에 좀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평생 실수 안 하고 살 것도 아닌데 그게 늘 잘 안된다. 다행히 타인의 실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실수에만 그렇다.


아무튼, 처음부터 실수한 건 아니고 초교 이후 책 크기가 변경됐다. 본문 내지 크기를 줄여서 새로 작업하는 동안 표지 크기도 변경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중간에 다른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깜빡한 것이다. 내내 신경 쓰고 있던 거라 당연히 바꿨다고 생각했다. 너무 생각하고 생각했더니 진짜 바꾼 줄로 착각한 것이다.


인쇄소 직원도, 회사 직원들도 티가 안 난다고 했다. 사람들 아무도 모를 것이라 했다.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다. 내 눈엔 확연히 티 났다. 다시 인쇄하고 싶었다. 다시 하면 안 되냐고 했다. 하지만 이미 인쇄는 끝났고 지금 다시 인쇄하면 일정에 차질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진행하게 됐다.


속상했다. 속이 탔다. 책상에 엎드려서 울었다. 작가님께 죄송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날 밤 잠 한숨 못 잤다. 답답하고 속상해서 계속 뒤척였다. 마음을 쏟아 만든 책이었는데 생각도 하기 싫었다. 책은 꼴도 보기 싫었다. 인쇄 된 책을 보면 또 화가 날 것 같았다. 일정은 일정이고 제대로 된 책을 팔아야지 싶은 마음에 잘못은 내가 해놓고 회사에도 화가 났다.


일주일 뒤 책이 도착했다. 복도에서 책 몇백 권이 카트에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책 몇백 권의 무게만큼 한숨이 나왔다. “제발 나에게 이 책을 주지 마시오”라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꼴도 보기 싫던 책과 마주했다. 

어, 그런데 웬걸 내가 미리 가늠해 본 것과는 달리 진짜 티가 “거의” 안 났다. 그냥 책을 받아 본 사람들 누구도 표지가 좀 이상한데? 하고 말하지 않았다. 진짜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작가님은 책 너무 예쁘다고 마음에 든다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작업한 당사자라 보일 거라는 그 말을 믿을 걸 그랬다. 정말 다행이었다. 특히 작가님께 너무 죄송해서 끙끙 앓았다.


오늘 또 다른 책 한 권을 마감했다. 이 책 역시 책 크기가 변경됐다. 인쇄 넘기기 전에 표지 크기를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확인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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