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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리고 꾸준한 걸음으로

글쓰기와 나의 만남

by 좋으니


글이란 즐거움과 고통 사이에 있다. 진자의 추처럼 두 사이를 오간다는 김남규 시인의 말처럼 글쓰기는 즐겁고 고통스럽다. 8할이 고통이더라도 2할의 즐거움 때문에 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주 억울했다. 글에서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면 내가 먼저 써먹지 못해서, 내가 먼저 발견하지 못해서, 글쓰기에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잘 쓰는 사람이 지금도 많은데 계속 새롭게 등장해서, 더 잘 쓰지 못해서, 무엇보다 글쓰기를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쓸 때마다 외로웠고, 쓰지도 읽지도 않고 지나온 시간이 아까워서 애가 탔다. 꾸준함으로 그 간극을 메워보려 해도 순간순간 여태 뭐했을까 스스로 화가 났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아무런 바람이 없었다. 첫 에세이 쓰기를 과제로 시작했지만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한 편 완성해 보는 것. 그게 다였다. 술 몇 잔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던 이야기, 정말 친한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썼다. 장애인 동생 이야기는 내게 버겁고 무거운 것이었지만, 글을 쓰려고 앉으면 동생만 생각났다. 나는 이 얘기가 하고 싶었구나. 말로 해야 했다면 분명 감추고 딴 얘기를 했을 텐데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글은 말보다 편했다. 내 글을 읽을 사람은 교수님뿐이어서 마음껏 용감해졌다. 단짝 친구에게 편지 쓰듯 편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편지 쓰기는 내 특기였으니까. 쓰고 나서 알게 됐다.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내 이야기를 쓴 적 없었다는 것을. 일기조차도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정을 꽁꽁 숨기던 나였지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글을 완성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무겁기만 했던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가볍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첫 에세이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두 번째 에세이에 욕심을 가득 담았다. 교수님은 내 글과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내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한 걸음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글이지만 덕분에 나는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향방 없이 방황했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한 걸음으로. 이 한마디는 내 글과 마음, 쓰는 삶을 지켜주는 문장이 되었다.


그 이후 글쓰기에 대한 목표가 새롭게 바뀌었다. 글로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고 내 글이 책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쓸수록 쓰는 일만 남았고 쓰면서 이루고 싶은 것은 계속 쓰는 일, 그것밖에 바라는 게 없었다. 글은 쓰는 것 자체로 충분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있다면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리고 계속 글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것.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한계가 왔다. 앉아서 쓰기만 해서는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억과 추억에만 의존해서 쓰는 글도 언젠가 소진되고 말 것이었다. 글을 계속 쓰고 싶어 움직였다. 뒷산을 산책하면서 빈 의자를 찍고 징검돌을 찍고 땅바닥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나뭇잎 그림자를 찍었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은 작가가 가진 언어만큼 풍성하게 구현되는 것이기에 언어를 담기 위해 시간을 썼다. 그리고 내 삶에 더 책임감을 가졌다. 글은 곧 그 사람이 드러나는 일이었기에 내 삶을 돌보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어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무심했던 사람이었는데 주어진 하루를 관찰하며 수집하게 되었다. 걷다가 샤워하다가 대화하다가 자주 멈추었다. 메모장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글이 수두룩하다. 언제 다 쓰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이 메모가 쓰일 순간이 오리란 걸 안다.


단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쓰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다. 낡은 옷장 문을 열고 나니아로 들어선 루시처럼 낯설고 놀라운 세계를 만났다. 경험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글쓰기가 고통이 8할, 즐거움이 2할이라고 하더라도 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만난 소소한 기쁨으로 8할의 고통을 지워갈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한 걸음으로 계속 쓸 것이다.



고수리 교수님의 <마음 쓰는 밤>




이제 고수리 교수님 수업은 다 들었다. 서운하다. 하지만 나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 수업을 듣고, 교수님 팬이 되었음 좋겠다. 더 많은 사람에게 고수리 교수님 책이 읽히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쓰면 좋겠다.

고수리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글쓰기 뿐 아니라 나를 돌보는 법도 삶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겸손한 태도도 너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지막 과제를 끝내고 수업도 끝났지만 마지막이 되고 보니 교수님의 '첫 제자'라는 이 '첫'이라는 단어가 엄청난 위로가 됩니다. 천천히 꾸준한 걸음으로 오래 오래 쓰며 살겠습니다. 언제 어느 시간에 만나도 쓰고 있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만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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