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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먹고 다녀요

by 좋으니


예배드리고 교회 건물에 새로 생긴 덮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어. 손님이 많아서 2인용 작은 테이블에 친구랑 셋이 다닥다닥 앉아서 먹었는데 각자 주문한 음식을 한 입씩 먹자마자 우리 셋 모두 으음~ 하고 맛있다는 신호를 보냈어. 진짜 맛있었거든. 덮밥집 사장님은 바로 옆집에서 장사하는 스시집 사장님 아들이야. 스시집도 장사가 아주 잘 돼. 그 전에 음식점들은 전부 망해서 나갔는데 스시집과 덮밥집은 맛이 좋아서 그런지 장사가 잘되더라. 위치가 안 좋아도 맛있으면 어떻게 알고 손님이 찾아가더라. 우리 엄마 가게처럼. 그래도 우리 옥 사장님 해물칼국수가 짱이지.


오늘은 초우마이 덮밥을 먹었는데 간장 양념 베이스의 밥 위에 얇고 바싹하게 튀긴 돈가스가 가득 올라온 덮밥이었어. 9,900원이었는데 양도 맛도 아주 만족스러웠어. 우리 엄마는 2인분 같은 1인분의 칼국수를 6,000원에 파는데. 엄마의 수고를 생각하면 돈 좀 더 받지 싶기도 해. 아줌마, 아저씨들이 충무김밥 오징어도 막 꺼내 먹고. 비빔국수도 너무 많이 줘서 남기고 가는 은행 언니들 볼 때마다 속상했지만 동네 장사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우리 사장님 말에 내가 뭐라고 하겠어. 그래도 딸은 엄마의 고생만 보여서 못마땅해.


다음번엔 다른 음식 먹으러 와야지 생각하고 가게를 나왔어. 같이 밥 먹던 교회 친구 둘은 당구 치러 가고 나는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 점심 먹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니까 엄마가 “니 혼자 먹었나”라고 묻는 바람에 웃음이 나왔어. 엄마는 딸을 모르네. 엄마, 나 가게에서 혼자 밥 잘 못 먹어. 아, 아니다. 회사에서 밥때 놓쳐서 급하게 먹을 땐 가끔 김밥집에서 혼자 밥 먹고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빼곤 혼자 밥 먹으러 음식점 들어가는 게 조금 부끄럽더라.


걷는데 날이 너무 좋았어. 엄마가 사준 베이지색 코트를 올해 처음 꺼내 입었어. 걸을 때마다 에코백과 코트의 마찰에 보풀 생길까 봐 조심조심 걸었어. 날 좋은 날 걸을 때면 꼭 엄마가 생각나. 엄마랑 함께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보면 금세 마음이 아파. 엄마 다리가 건강할 때 여행이라도 많이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거든. 1년이 다르게 엄마 걸음이 달라지는 걸 볼 때마다 아프고 불안해. 근데 정말 감사한 건 엄마가 매일 장사 끝나고 저녁마다 걷기 운동을 해주어서, 나는 그게 참 고맙고 좋더라.


나도 참 약하고 의지적인 사람이라 엄마 걱정을 잔소리로만 하는 것 같아. 엄마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 가, 건강 검진은 받고 있지, 별일 없지, 아픈 데는, 묻기만 해서 나도 내가 답답한데 이게 또 적극적으로 뭐가 잘 안돼. 왜 이럴까.


아무튼, 엄마. 나 오늘 하루는 집에서 밥 한 끼도 안 먹었다. 엄마가 보내준 쑥국이랑 반찬도 먹어야 하는데. 저녁은 또 친구네서 신림동 빽순대볶음을 먹었어. 아, 엄마 빽순대볶음 먹어본 적 없지? 다음 명절엔 빽순대볶음 먹자.


2023년 3월 19일(주일)





에세이를 쓰려면 아무거나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끙끙대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에세이를 써야 할 때도 일기를 쓰자고 생각하며 공책을 편다. 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문보영 시인 <일기시대> 중


뭐라도 꾸준히 쓰고 싶은 마음에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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