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식품 맛쪼니, 이름 줄여 존니, 입만 살아 조디. 별명이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이지 맛쪼니도 조디도 존니 싫었다. 내 별명의 어감은 주로 이런 것이었지만 한약방 할아버지는 이름이 읽히는 대로 좋은 이, 좋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
아홉 살 무렵까진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한약방 할아버지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넓은 단독주택에 큰 방 하나가 한약방이었고 할아버지는 좀처럼 그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그래서 할아버지 얼굴을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좌식 책상에 앉아 언제나 책을 읽으시던 기억이 덩어리로만 남아 있다. 할아버지가 무서워 늘 조용히 놀곤 했는데 냉장고에 붙어 있던 쥐 모양의 플라스틱 병따개 때문에 할아버지 방으로 불려 간 적이 있다. 쌍둥이 동생이 너무 미워서 진짜 쥐를 잡은 척하며 놀리고 울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침을 꺼내셨다. 양쪽 무릎에 하나, 둘, 셋…. 무서워서 울었지만 침을 어찌나 잘 놓으시던지 금세 멋쩍게 울음을 그쳤다. 침을 맞는 것보다 할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 고요함을 견디는 일이 더 힘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동네를 떠나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그렇게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한약방 할아버지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아빠에게 물었던 날, 아빠의 대답을 잊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빠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형님인데, 아빠한테는 그러니까 할아버지 쪽 형제들인데, 옛날로 치면 마, 큰집으로 쳤다. 아빠한테는 사촌이고, 니한테는 팔촌인가 그럴끼다.”
“…”
“그러니까 쉽게 말해 할아버지가 오촌 당숙인데, 친할아버지의 아버지 형제간 중 큰 형님 아들이다.”
아빠는 진지했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어쨌든 집안의 어른 중에서도 유학을 다녀올 만큼 똑똑한 분이었다고 하니 첫딸의 이름을 한약방 할아버지에게 부탁한 아빠 마음이 짐작된다. 아무튼, 내게 이름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예쁘고 안 예쁘고, 좋고 싫고, 그런 생각을 할 만한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조’ 씨 성은 좋았다. 은희는 김, 이, 박, 최, 정보다 ‘조’와 어울렸다.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반 친구들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 정도는 한자로 쓸 수 있었다. 나도 은 은(銀), 기쁠 희(喜)를 하늘 천 따 지처럼 외우며 쓰곤 했다. 이름에 ‘은’을 쓰던 친구 중에 나와 같은 한자를 쓰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대부분 은혜 ‘은’을 썼다. 아주 가끔 나와 같은 한자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도 했지만, 나만의 한자를 빼앗긴 것 같아 괜히 서운했다.
궁금했다. 나는 왜 은혜 은이 아니라 은 은이었을까. 재물로 따져도 은보다 금인데. 그런데 무엇이 기쁘다는 걸까. 한자를 써야 할 때마다 궁금했지만, 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넘겨 버렸다. 자연스레 알게 되는 날이 오더라.
은(銀)은 황금 금(金)에 그칠 간(艮)을 더한 한자다. 황금으로 변하려다 그친 것이라는 의미이지만 이름에 쓰일 때는 은처럼 맑고 고운 성품으로 인간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희(喜)는 북을 그린 모양의 악기 이름 주(壴)와 입 구(口)가 합쳐진 것으로 북치고 노래하며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금이 되려다 그친 것은 아쉽지만 할아버지는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금이 되는 것보다 귀한 것임을 내 이름에 새겨 주셨다.
그리고 잊지 않고 부탁의 말도 남기셨다. 고운 성품으로 사람을 대하며 먼저 좋은 이가 되어야 한다고. 좌식 책상에 앉아 홀로 책 읽으시던 할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생이 시작되는 아이에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어른이 가장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아마 나였어도 좋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 맺으며 기쁘게 살길 진심으로 축복했을 것이다.
이름이 읽히는 대로 좋은 이. 사람들과 어울려 기쁘고 즐겁게. 할아버지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삶은 늘 아쉬움과 후회가 더 깊이 남으니. 까칠하고 예민한 네가 무슨 좋은 이냐 콧방귀 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 부끄럽기도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이름처럼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는다. 사람에 대해 고운 성품은커녕, 애가 타도록 싫을 때도 많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름 앞으로 돌아온다. 다짐은 잊고 떠올리기를 반복할 테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나에게서 내 이름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