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사이좋게 지내자
고교시절 단짝 친구 둘이 있다. 같이 방송반 활동하던 친구들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서로 다른 인연을 만나고, 각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공동체가 생기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 내서 만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매일 지겹도록 보던 사이였는데 생존만 겨우 확인할 정도로 몇 년에 한 번씩 겨우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친구 K는 나와 같이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꿈이 라디오작가였는데 그 친구는 그때부터 방송작가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작가로는 돈을 벌 수 없을 것 같던 나는 꿈을 포기하고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 친구는 결국 방송작가가 됐다. 막내 작가였을 때 만나고 지금껏 한 번도 못 만나다가 최근 친구 A의 암투병 소식에 연락이 닿았다. A가 서울 오는 2월, 셋이 만나기로 약속했다.
K는 우리가 못 만난 사이 어엿한 메인작가가 된듯하고 책도 몇 권 출간했다. 친구인데 언니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질투나 부러움이 아니다. 그저 꿈을 이룬 친구가 멋있고 그 과정이 얼마나 순탄치 않았을까 생각하니 참 애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시간을 거쳐 진짜 어른이 된 친구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나도 뒤늦게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반가워했다. 그렇게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게시물로 친구의 안부를 확인하며 지내던 중 세상 참 좁다는 걸 실감했다.
얼마 전 회사로 공문이 도착했다. EBS에서 보낸 방송 협조 요청 공문이었다. 사진 자료가 필요한 데 쓸 수 있냐는 거였다. 나는 담당자가 아니었기에 알아서 처리하겠지 하고 관심을 껐다. 사실 아예 관심을 끈 건 아니었다. 사무국 부장님께서 통화하실 때 내용을 들으니 협조가 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장님과 관련 담당자분 모두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기에 빨리 처리되지 않고 미적거릴까 봐 신경 쓰였다. 그리 애사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느릿느릿한 일처리로 회사 이미지 나빠지는 것이 싫었기에 신속히 처리되었으면 하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공문 건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힐 때쯤이었다.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새 글이 하나 올라왔다. 얼마 전 EBS 공문에서 봤던 프로그램 제목이 적혀 있었고 많이 시청해 달라는 글이었다. 세상 참 좁다. 어떻게 그 많은 회사 중에 우리 회사에, 친구에게 필요한 자료가 있었을까. 신기해서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_ 얼마 전 00으로 공문 보냈지?
_ 그거 나 아니고 후배 작가야.
_ 나 그 회사 다녀.
_ 와 정말? 진짜 신기하다.
_ 협조는 잘 됐어?
_ 응 잘 됨. 어떻게 같은 서울 아래!! 얼굴 좀 보자.
_그래. 알았어. 바쁠 텐데 수고하고.(바쁠 것 같아서 얼른 마무리해주고 싶었다)
_오키. 일단 내가 밤샘을 해서, 만나서 오랜 회포를 풀자.
역시, 그때도 밤낮 바뀌어 살더니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구나. 인연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만날까. 그것도 서로 다시 연락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이렇게 때마침.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협조 잘해줬다니 앞으로 나를 잘 부탁한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