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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May 05. 2024

오월은 어쨌든 푸르구나

어린이날도 어쨌든 좋구

어린이날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이였던 초등학교 시절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거나 맛있는 걸 먹었다거나 했던 기억도 없다. 그렇다고 왜 나는 어린이날에 귀한 어린이 대접(?)을 받지 못했는가 하고 사무치거나 서운하지 않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았던 뭔가가 있었던 것은 맞나 보다. 사무치거나 서운한 기억도 없으니 말이다.

어린이날은 학교 안 가서 그저 좋은 날이었다. 어린이였던 시절부터 초, 중, 고, 대, 직장인인 지금까지도 어린이날은 쉬는 날이라 좋은 날이었다.     


친구랑 통화하는데 뜬금없이 친구가 물었다.

“너, 어린이날 노래 알아?”

바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몇 초 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불러보았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여기까지도 이게 어린이날 노래 맞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월은 어린이날(옳지! 맞네!) 우리들 세상”

“근데 앞부분은 모르겠어. 너는 기억나?”

응, 이라고 대답한 친구가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푸른 푸른 산은 아름답구나 / 푸른 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 토끼 구름 나비 구름 짝을 지어서 / 딸랑딸랑 구름 마차 끌고 갑니다”

(다 같이)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친구와 협력해서 의심 없이 한 곡을 다 부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찜찜한 것이다. 친구는 노래 가사를 자주 제 멋대로 부른다. “너 이거 맞게 부른 거냐?” 물었더니 갸우뚱 웃는 게 자신 없는 눈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더니 전혀 다른 노래가 나온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아예 딴 노래잖아.”라고 하고선 가사를 다시 읽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다.


“푸른 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와, 푸른 산 허리래… 가사 너무 아름답지 않아? 토끼 구름, 나비 구름, 구름 마차 끌고 간대, 가사 진짜 예쁘다.” 몇 줄 되지도 않는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고 예뻐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푸른 푸른 푸른 산은”으로 시작하는 동요 <푸르다>는 박경종 작사, 권길상 작곡의 경쾌하고 귀여운 곡이다. <어린이날 노래>는 윤석중 시인의 시에 윤극영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나 처음 배우는 ‘짝짜꿍’도 윤석중이 지은 노래다. 윤석중은 이 외에도 수많은 동요를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부르게 해 준 동요의 아버지이다.”라고 쓰여 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어린이날 노래>의 앞부분은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이다. 동요를 찾아서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악보에 맞춰 반주가 나오는 영상을 여러 번 재생하면서 멋 부림 없는 피아노 연주도 너무 듣기 좋았다.


교회에서 반주할 때 특히 드럼이 없을 때 내가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화려하게 쳐야 사운드가 꽉 찰 것 같고 더 은혜 될 것 같은 착각. 하지만 매번 느끼지만 진짜 고수는 요란하지 않다. 조용히 꽉 찬다. 잠시 연주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세련된 편곡이나 화려한 사운드 없이 그 자체로 완벽했던 오늘 내가 들은 동요. 사람의 마음에 저항 없이 스며드는 건 이런 담백함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린이날 기념으로 동요 두 곡을 듣고 나니 녹색 칠판, 나무 책상, 그 책상 위로 뛰어다니던 남자아이들, 청군 백군 목 터져라 응원하던 흙먼지 가득한 운동장,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침 일찍 누군가 달아놓았던 만국기(선생님들이었겠지)가 떠올라 동요의 멜로디만큼이나 삶이 복잡하지 않던 그 시절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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