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스토너』(RHK, 2015)를 읽고
어릴 적 내 방엔 올 칼라 양장으로 된 세계위인전기가 책장 빼곡히 꽂혀있었다. 처음 몇 번은 열심히 읽어보리라는 설렘과 의지가 있었지만, 그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순서대로 읽다가 갑자기 엄두가 안 나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뭔지 모를 죄책감에 이름이 익숙한 위인전 위주로 슬렁슬렁 의무적으로 읽었다. 아는 이름, 아는 이야기에 손이 갔다.
스토너.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출간 후 50년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가 제목 때문일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유명한 위인도 아니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가늠도 안 되는 『스토너』라는 제목의 책에 독자들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지도. 한국에서 김철수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나라도 읽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좋은 - 이라고 말하기엔 값어치를 떨어트리는 것 같지만 – 그리고 위대한 소설은 언젠가는 발견되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꽤 뭉클하고 감격스럽다.
스토너의 삶은 크게 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배움의 길로 들어가 대학에서 교수로 한 평생을 보낸 한 남자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 교수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60여 년 간의 일대기가 이토록 여운을 남길 줄이야. 그건 아마도 스토너의 삶이 지금 여기, 별 볼 일 없는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무엇을 남겼는가,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한다면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의미 없어진다. 인생은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버티고 견뎌내 끝까지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삶의 지난한 시간을 버텨낸 어른들의 모습이 위대해 보이는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잘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삶을 과연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토너는 대학에서 평생을 보냈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그의 평생 친구였던 – 그마저도 한 사람을 일찍 잃었지만 – 고든 핀치과 데이브 매스터스. 그리고 평생 그를 괴롭혔던 동료 교수 로맥스와 학생 찰스 워커. 그의 아내 이디스와 딸 그레이스. 역설적이게도 유일하게 사랑했던 캐서린 드리스콜. 스토너는 이렇게 몇 안 되는 관계 속에서 평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한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여러 사건들을 주로 묵묵히 견디는 것으로 삶을 대했다. 특히 아내 이디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화 한번 내지 않는 스토너의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로맥스보다 이디스가 더 몹쓸 빌런 같았다. 오죽하면 캐서린과의 사랑이 평생 들키지 않았으면, 스토너에게 평생 안식과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냈을 때가 찰스 워커를 두고 로맥스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을 때였다. 찰스 워커가 학업을 이어갈 자격 없음을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나간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긴장감이 느껴졌다. 학문에 대한 순수한 양심과 자격 없는 자가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철학.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평생을 바친 학자 스토너의 정체성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물론 이 일은 스토너의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로 돌아간다. 이는 결혼도 캐서린과의 사랑도 딸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삶이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보여주듯이.
한때 – 지금은 유행이 지난 것 같다 - “존버는 승리한다”는 비속어가 유행일 때가 있었다. 존나 버티기의 준말로 끝까지 버티면 승리한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대단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인생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인생도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과 연결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힘써 버티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로맥스처럼 싸워서, 누군가는 이디스처럼 의무감으로, 누군가는 찰스 워커처럼 비열함으로, 누군가는 죽음으로, 누군가는 스토너처럼 끝까지 버티는 일로 그렇게 삶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스토너의 삶을 실패한 삶이라 했다. 스토너의 삶이 실패한 삶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크게는 결혼 생활도, 자녀 문제도, 캐서린과의 불륜도 세상에 자랑할 것 없는 실패로 보이지만 그가 죽음을 앞두기까지 견뎌온 시간을 정말 실패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고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390P)
죽음 앞에서 기쁨 같은 것이 몰려온다면 그는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왔던 걸까.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어떤 질문을 가지고 인생을 버텨낼까. 스토너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위로한다.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인생의 여러 문제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하잘 것 없다고. 삶에서 실패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 이제 어디에도 그 말을 쓸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