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찾긴 찾았는데…
택배가 오배송되었다. 이번에도 아래층이었다. 예전에도 내 택배를 들고 들어가 박스가 다 뜯어진 상태로 찾은 적이 있었다. 현관문을 두드려보고 초인종을 눌러봤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출근 전에 ‘택배가 잘못 배송되었으니 택배 상자를 바깥에 내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메모를 포스트잇에 적어 떨어지지 않게 현관문에 꾹꾹 붙여두고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야근이 있던 터라 택배가 어떻게 보관되어 있을지 계속 신경 쓰였다. 또 박스를 뜯었을까? 만약 뜯었다면 뜯긴 채로 바깥에 내놨을까 아니면 박스테이프로 붙여서 내놨을까? 자기 집 문 앞에 두었을까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집 문 앞에 올려두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가장 크게 자리한 건 —전적이 있었던 만큼— 혹시 또 뜯어진 상태로 내놓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싸우는 걸 워낙 싫어하고 싸움도 못 하는 편이라 박스가 뜯어져 있어도 문을 두드려 따지진 못할 게 뻔했고 결국 혼자 속만 끓일 것 같아 은근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내 택배는 아래층 집 현관문 앞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놓여 있는 모양새부터 기분이 상했다. 마치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친 듯 현관 중앙에 비스듬하게 위층으로 올라갈 때 걸리적거릴 만한 위치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보는 순간 불쾌함이 확 치밀었다.
게다가 실수로 잘못 가져갔다면 ‘미안하다’라는 메모 한 장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나. 하긴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기본적인 에티켓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
택배를 들고 집에 올라와서는 신발장 앞에 내려놓고 바로 씻으러 들어갔다. 야근에 지친 데다 얼른 씻고 싶기도 했다. 평소엔 씻기 전에 택배부터 정리하지만, 그날은 그냥 “찾았으니 됐다”라는 마음뿐이었다. 기다리던 택배였는데 기대와 설렘이 싹 사라졌다.
씻고 나와 상자를 확인하며 테이프를 뜯는데 양쪽 끝이 이미 벌어져 있었다. 배송 중에 찢어진 건지 아래층에서 뜯으려다 만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또 기분이 와락 가라앉았다. 아래층 아주머니와 한판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아침에 적은 메모에 ‘택배 상자를 바깥에 내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은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감사할 일이 아닌데도 습관처럼 적어버린 “감사합니다”라는 말. 호의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물러터졌나 하는 자책까지 들었다.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오배송이 내 잘못이 아니라 해도 타인의 택배를 들고 들어갔다면,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미안하다는 메모를 붙여두었을 것이다. 어쨌든 기분이 나빴을 테니까. 그리고 상자도 위층에 직접 가져다 두었을 거다.
나는 에티켓 없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할 때도 동네 사람들이 구경 나올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택배 잘못 가져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보통 부당함이나 불편한 일을 겪어도 ‘내가 한 번 참은 선의가 나중에는 유익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편이다. 나도 언젠가 부탁하거나 도움받아야 하는 순간이 생길 테고 그런 주고받음 속에서 삶이 흘러간다고 믿어서다. 그래서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보통은 참는다.
하지만 아래층 아주머니와는 정말로 한 번 터놓고 싸워보고 싶다.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매일 그 집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다 그 현관문을 발로 차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그러지 못하고 그저 째려보기만 한 나지만. 아마 이번 생은 싸움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게 내 숙명이 아닌가 싶다. 매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지만 결국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는 나는 상상 속에서만 싸움 대장이다.
그래도 다음 오배송에는… 또 내 택배를 가지고 들어간다면… 그땐 정말로 발끝이라도 대볼까. 어휴 그럴 리가 없을 테지.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