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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Jan 26. 2022

지적장애 동생이 쓴 근로계약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내 동생들은 우리 가족의 일상을 행복하게 해주는 빈도의 주인공이다. 동생이 가진 지적장애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없이 약한 핸디캡이지만 내 동생을 보면 이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건강한 모습이다. 영혼이 밝고 건강해서 나무랄 데 없이 생기 있는 모습.


나는 그런 동생을 보며 ‘그래, 그게 행복이지!’하며 내게 주어진 많은 것을 발견한다.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는 행복을 언니 것까지 찾아주는 내 동생.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때론 부러운 마음도 든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도 행복해하는 동생은 누구보다 행복을 잘 발견하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을 빼고는 둘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할 만큼 내 동생 둘은 똑 닮았다. 그런데 둘의 성격은 너무도 다르다. 영진이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며 수줍음이 많은 아이다. 꼼꼼하지만 조금 느린 탓에 아직 직장생활은 못 하고 센터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성진이는 싹싹하고 사회성이 뛰어나 직장 생활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엄마는 장애가 아니었다면 꽤 똑똑하고 멋쟁이였을 거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빨래 좀 개라”는 엄마 말에 늘 언니인 영진이를 시켜 먹지만 그래도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동생에 대해 쓰면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는 게 이것뿐이라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아프게 밀려왔다. 준 게 없어서 줄 게 많으니 거기에 위로를 받아 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같이 지내는 동안에는 동생이 부끄러워 추억은커녕 도망가기 바빴고, 동생과의 추억이 고픈 지금은 먹고사느라 기껏해야 1년에 일주일도 못 보고 있으니. 동생을 회사 사람들 보다 모르는구나 싶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오래여서 그렇다는 위로를 괜스레 던져보긴 하지만 시간을 핑계 대기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그저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왔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위로인 것 같다.


평범한 자매들처럼 커피 한잔에 묵은 수다를 토해낼 수 있다면, 다음날 입고 갈 옷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 할 수 있다면, 문자메시지로 서로의 일상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 엄마, 아빠 옆에 장애가 없는 동생이 있다면 떨어져 지내는 내 마음이 덜 무거웠을 텐데. 이기적인 걸 알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부모님의 시간이 두려워 장애가 없는 동생의 모습을 자꾸만 상상해 본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데엔 조금 한계가 있긴 해도 우리 가족에겐 동생 때문에 맛보는 특별한 행복이 있다.


얼마 전 일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성진이는 1년에 한 번씩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항상 아빠가 대신 써주셨는데 이번에 깜빡하고 소속과 장애명을 써주지 않으셨다.


“아빠, 이거 왜 안 써줬어요?”

성진이는 아빠가 퇴근하고 오시자 기다렸다는 듯 근로계약서를 내보이며 물었다. 성진이가 내민 근로계약서를 본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셨단다.


소속 : 나눔터

장애명 : 지적장애

아빠가 깜빡 잊고 쓰지 않았던 근로계약서의 빈칸이 성진이의 글씨로 또렷하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에게서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나 역시 너무 기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내 행복한 웃음이 핸드폰을 타고 넘나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온다더니 지금 내 마음이 딱 그렇다. 그때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이 찰나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가족은 더없이 행복하다.


“뿌듯하더라”

엄마의 말에 갑자기 뭉클해졌다. 엄마의 시간이 그대로 와닿았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다.

동생이 살아가는 세상엔 이런 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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