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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꿀 보이스 조디

by 좋으니

라디오 방송을 들은 지가 언제였더라. 청춘의 한 자락에서 밤마다 듣던 라디오 방송도 이제 낯선 이야기가 돼버렸다. 두 번째 직장에서였나? 그땐 출근부터 퇴근까지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했었다. 각자 바쁘게 일하다가도 어떤 이의 사연에 너나 할 것 없이 킥킥대는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고, 값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누군가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더해질 때면 지지직거리는 음질이라도 좋았다. 그 회사에서 나온 이후로는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 방송을 찾아 듣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꿀 보이스로 유명한 DJ 유인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줄여서 유디라고 부른다는 것도.


고등학교 시절, 나는 방송반 아나운서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청소 시간이면 전 학년 각 반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 학기가 되면 얼굴 없는 가수처럼 목소리로만 듣던 아나운서가 나였단 사실에 친구들이 정말이냐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나는 마이크만 대면 목소리가 달라졌다. 일부러 목소리를 꾸미지 않았는데도 필터를 입힌 것처럼 내 목소리 아닌 소리가 나왔다. 마이크뿐 아니라 전화 목소리도 그랬다. 내 목소리와 기계가 만나면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나 보다. 그래서 목소리 예쁜 아나운서로 학교에서 나름 유명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시절 꿀 보이스 조디?


그런데 이 ‘조디’라는 단어는 ‘주둥이’의 경상도 방언이기도 하다. 어감이 좋지 않아 그리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었는데 성이 ‘조’ 씨라 공교롭게도 내 별명 중 하나가 되었다. 농담을 잘 받아치고 말 센스가 있다고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줬다. 싫다고 해도 어쩐지 나는 이 별명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학창 시절 나는 조용한 소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조용히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조금 웃기는 애였다. 선생님 앞에서 겁도 없이 까불기도 잘 까불었고, 그래선지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무척 좋았다. 한창 졸릴 오후 수업 시간엔 선생님께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시곤 뜬금없이 장기자랑을 시키기도 하셨다. 그때를 기억하는 내 친구는 오랜만에 나를 만나 “너 왜 이렇게 많이 바뀌었냐”며 놀라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많이 바뀌진 않았는데 그때 대체 얼마나 까불었던 걸까.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3년 내내 웃고 떠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즐거웠을까. 방송반 아나운서가 되면서 빛나던 청춘에 꿈이라는 꽃도 피웠으니 잊지 못할 기억을 알집으로 압축한다면 두 번째로 큰 용량을 차지할 것이다. 내 목소리로 방송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스크립트를 쓰는 일이 매우 즐거웠다. 그때 처음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점심시간이면 ‘좋으니의 볼륨을 높여요’처럼 라디오 DJ가 되어 방송을 했다. 오래된 시그널 음악이 서서히 소리를 줄일 때면 마음을 두드리는 진동은 점점 더해졌다. 준비한 스크립트를 읽고 예쁜 쪽지에 적힌 학생들의 사연을 읽어주며 신청곡을 하나씩 들려주는 일은 꿈이 되기에 충분했다. 방송실과 가까운 교실에 사연의 주인공이 있을 때면 신청곡보다 더 큰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교내를 장악하기도 했다. 생일인 친구를 축하하거나, 응원이 필요한 친구에게 전하는 수줍은 사연 가운데엔 내가 있었다. 우리의 청춘은 반짝이는 햇살만큼이나 눈부셨고 따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꿈은 정말 꿈처럼 사라졌고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 꿈은 꾸지 않은 꿈처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다시 글을 쓰고 나서야 잊어버린 꿈과 만날 수 있었다. 고민도 무게도 가볍기만 했던 그때의 짤막한 글은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길고 무거워졌지만, 다시 꾸는 꿈은 달기만 하다.


그리고 혼자 되뇌어 본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좀 어때, 단지 계속 꿈을 꾸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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