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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마! 따까 패뿔라!

by 좋으니

모자를 썼고, 말랐고, 말투는 상냥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평범했고 인상도 좋았다. 나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다. 그런 아저씨에게 유괴당할 뻔했다. 내 나이 10살쯤, 새우깡을 사러 슈퍼에 가던 길이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환한 대낮이었다. 유괴와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다.


슈퍼 앞에서 아저씨는 내게 길을 물었다.

“아저씨가 길을 몰라서 그러는데, ○○운동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운동장으로 가는 길은 무척 쉬웠다. 큰길을 따라 직진해서 좌회전. 뒷산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골목 끝에서 좌회전. 이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질문에 손짓 몸짓해가며 설명했다. 다 큰 아저씨가 잘 모르겠다는 듯 운동장까지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무 의심 없이 앞장섰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아저씨와 나는 손을 잡고 있었다. 아, 그 아저씨의 손에 잡힌 것이 맞겠다.


골목길이 좀 더 빠른 길이었지만 나는 큰길 쪽으로 안내했다. - 나 좀 똑똑! - 그러자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골목길로 유도했다. 아저씨의 손이 왠지 내 손을 더 꽉 잡는 기분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저씨가 물었다.

“혹시, 산으로 가는 길 아니? 아저씨가 아는데 같이 가볼래?”라고.


지금 생각하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아저씨였다. 조금 전 내게 길을 물어 놓고선 산으로 가는 길을 안다고? 키도 작고 빼빼 마른 여자아이라 만만했던 모양이다. 속을 줄 알고? 어림없다. 나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10살 좋으니다.

진작 위기를 감지한 나는 아저씨의 멍청한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나! 우.리.엄.마.한.테.갈.꺼.다!!!!!”


허를 찌르는 타이밍이었다. 큰길로 나와 집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일어난 일이어서 큰길로 바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악력이 느껴질 정도로 꽉 쥔 성인 남성의 손을 뿌리쳤다.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자마자 두려움에 대문을 잠갔다. 그때 우리 집에는 동생과 나를 돌봐주시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맞벌이 하던 엄마 아빠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 기억엔 우리를 돌봐주시던 아주머니는 그 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시기도 아주 잠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집에 아주머니가 안 계셨다면 나는 엄마,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며 늦은 저녁까지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아마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에게 조금 전 일어난 일을 설명하지 못했다. 집에 누가 찾아와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런 내 말이 의아했겠지만 아주머니는 알았다는 말과 함께 하던 일을 마저 하셨다. 별일 아니구나 하는 아주머니의 그 모습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덕분에 나도 그날 일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말하는 것도 까먹었으니 말이다. 까먹은 줄 알았던 기억은 고등학생이 되자 불현듯 떠올랐다. 그 일이 유괴당할 뻔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인지했다.


그날의 기억은 기억 축에도 못 끼는 앗싸로 먼지처럼 떠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다. 만약 그때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면. 순진하게 산으로 따라갔다면. 조금만 더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면…. 그랬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소름이다. 내 목에 뱀을 두른 듯 한 소오…름…. 윽-.


그날 모든 타이밍이 기적이었다. 그 끔찍한 손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하고많은 시간 중에 아주머니가 돌봐주시던 시기였던 것도. 새우깡을 사러 간 사람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도. 그리고 이 기적 같은 타이밍의 마지막 한 수는 '나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좋으니였다'는 것이다.


까불지 마라! 이 유괴범 놈아!!

확.마.따.까.패.뿔.라!!(*)




* [확마, 따까 패뿔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서울내기 다마내기 말로 하면 [너, 내 손에 먼지나게 맞아보겠니?, 이걸 확 잡아다가 패버릴까]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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