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빠지면 출구가 없다

by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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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을 따라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에 갔다. 야구에 관심도 흥미도 없을 때였다. 그때 나는 살짝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처음 가 본 야구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야구팬이 이렇게 많다고? 연인, 친구, 가족으로 꽉 찬 관중석의 에너지가 정말 놀라웠다. 순간 가슴에서 어떤 진동 같은 게 느껴졌는데 아마도 나의 우울감과 그곳의 에너지가 충돌되면서 생긴 떨림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으로 바나나킥을 맛본 아이처럼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다들 저렇게 즐거워하는데, 나만 왜 이러고 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구에 빠진 건 2015년 가을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는데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 7회 말 삼성 공격이었다. 평소 보지도 않던 야구였는데 그날은 왜인지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야구는 1년 내내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 때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타자가 중월 홈런을 쳤다. 나바로 선수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짧은 함성이 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건. 물론 삼성 팬이던 지인도 한몫했다.


7회까지 8:4로 지고 있던 삼성은 나바로 선수의 3점 홈런으로 8:7이 되었다. 2사 2, 3루 상황에서 투수 앞 땅볼로 이닝이 종료될 상황이었는데 두산의 1루수 오재일 선수의 포구 실책으로 루상에 있던 주자 모두 홈인. 2점이 추가되면서 7회에만 5득점. 8:9로 경기가 뒤집혔다. 질 것 같던 팀이 이겼다. 비록 그 이후의 모든 경기에서 두산에 깨 박살 났지만. 하필 딱 한 번 이긴 그날 경기 때문에 나는 몇 년간 야구 때문에 가슴앓이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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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시리즈 5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 달성을 앞두고 삼성의 머리, 어깨, 무릎, 발이라는 최강 투수 라인이 불법도박에 연루되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한국시리즈 5연패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야구, 참 모를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막 구조에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 중간, 끝이 있다. 첫 장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두 번째 장면에서 반전과 발견으로 긴장을 유지하라. 세 번째 장면에는 완벽한 결말을 이뤄라.

삼성 라이온즈가 위기 상황에서도 기어이 5연패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면 완벽한 결말이 되었겠지만, 기승전에서 결로 넘어가지 못했다. 대단원의 막을 앞에 둔 관객이 자리를 뜰 수 없듯 오늘은 이기겠지. 내년엔 잘하겠지 하며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해 왔다.


삼성의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네가 좋아하면서부터 그런 것 같다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팬에게도 징크스가 있다는 것을. 2년쯤 지나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직관을 가면 보란 듯이 지질 않나. 팀 승리를 위해선 직관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응원했다.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휴대폰으로 그들의 응원가를 틀고 응원했다. 삼성이 이기면 스포츠 채널을 옮겨가며 하이라이트 영상을 챙겨봤다. 그랬던 내가 올해는 한 번도 야구를 보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좋아했던 선수의 이적 때문이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를 때 그의 수비를 보고 반했다. 이름을 외운 첫 선수였다. 유니폼에 그의 등번호와 이름을 새겼다. 58번 박해민. 푸른 옷이 아닌 유광점퍼를 입은 그의 이적 발표 기사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었다. LG 유니폼을 입은 그가 우리 팀의 안타성 타구를 잡을 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그렇게 올 시즌 내내 야구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팀 역사상 최다 연패에 스트레스 받고 신인왕 후보에 삼성 선수가 있어 기분이 좋다. 눈에서 멀어져도 마음에서 쉬이 멀어지지 않았다.


내년엔 어쩐지 잘할 것 같은데. 기대에 속을 걸 알면서도 또 속아본다. 옷장에 걸어둔 유니폼을 한번 만져본다. 보면 또 스트레스 받겠지. 난타 당하는 상대 팀 투수에 마음 약해지다가도 역전당하는 순간 아까 점수를 더 냈어야지! 씩씩거리겠지. 어쩐지 참 잔인하다.

환호했던, 스트레스였던 지나온 수많은 경기가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으며 기억도 나질 않는데. 야구공 하나에 마음 뺏기고 스스럼없이 누군가 공격할 필요가 없는 일인데.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야구가 뭐라고.


한 줄 요약 : 한화 팬을 본받자. 즐길 수 없으면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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