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으니 Sep 23. 2022

사마귀 때문에 출근 못 하겠어요


        

현관문을 열었다. 집으로 후다닥 다시 들어왔다.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데 눈앞에 마귀가 나타났다. 내 새끼손가락만큼 작고 그보다 얇은 사마귀가. 계단 손잡이에 비비드한 색감을 드러내며 곧 뛰어오를 듯 날렵하게 내려앉은 사마귀. 바쁜 출근길을 가로막았다.


현관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계속 사마귀를 쳐다봤다. 제발 날뛰지 말길. 알아서 밖으로 나가주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시간은 가고 점점 조급해졌다. 까짓것 내가 몸무게도 더 나가는데 싶어 그래 가보자! 하다가 앞다리를 쳐드는 모습에 또 뒷걸음쳤다.


_ 집 현관문 앞에 사마귀가 있어서 못 나가겠어요. ㅠㅠ 아…


회사 단톡방에 메시지와 사진을 보냈다. 곧 L 국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분무기로 물 뿌려서 쫓아버려요.라고. 그게 말이 쉽지, 그랬다가 날뛰어 내 몸에라도 붙으면 어쩌란 말인가. 위층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주머니께서 커다란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계셨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사마귀가 있어서요.”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아주머니가 쳐다봐 주길 바랐다. 그것만으로 용기가 날 것 같았는데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나를 못 본 건지 그냥 내려가셨다. 나보다 커다란 재활용 쓰레기봉투가 더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이때다 싶어 얼른 아주머니 뒤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저놈이 갑자기 나한테 뛰어들까 봐 내 새끼손가락만 한 것에 온몸의 털과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겁이 많다. 특히 징그러운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새의 부리와 눈빛, 발 모양도 무섭다. 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을 나는 새는 멋있지만,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저 새들이 푸드덕 푸드덕거리며 떼로 달려들 것만 같다. 귀뚜라미, 매미, 사마귀, 메뚜기, 개구리 등등. 날뛰는 것들이 너무 싫다.


고등학생 때였다. 뒷집 사는 아이가 1톤 트럭 위에 앉아서 곤충 채집함 안에 들어있는 매미를 보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맴맴 우는 소리가 찢어질 듯 크게 들렸다. 아이가 곤충 채집함 문을 살짝 열었는데 그사이 매미가 탈출해 내 코에 날아와 붙은 것이다. 코에 붙은 매미를 어찌할 줄 몰라 으악 소리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는 매미 하나에 잔뜩 겁먹은 내가 재밌었는지 낄낄대며 웃기만 했다. 내 비명에 뒷집 사는 아이의 엄마가 나왔고 코에 붙은 매미를 똑 떼서 다시 곤충 채집함에 넣어주셨다. 


이날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미가 울면 소름이 돋는다. 매미가 우는 계절엔 음악 소리를 더 크게 높였고, 제발 나무에 꼭 붙어있으라는 바람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종종 양산을 썼다. 회사로 가는 지름길인 육십육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나무줄기와 가까워져 그때처럼 매미가 내 코에 날아와 붙을 것만 같아서다. 양산은 햇빛이 아니라 매미를 막는 방패였다. 

나이를 먹으면 무서워하던 것도 안 무서워지겠지 생각했지만 무서운 건 여전히 무서운 거였다.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일이 하나둘 생기면서 경험과 지혜가 쌓이기도 했지만 징그러운 건 여전히 징그러웠다. 


2021년에 방송된 <내가 키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자 연예인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에 출산드라로 유명한 개그우먼 김현숙 씨와 아들이 나왔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바다낚시를 하러 간 김현숙 씨는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지 못해 애를 태웠다. 기다리다 지친 아들은 아빠는 잘하는데, 엄마는 그것도 못 하냐며 투정을 부렸다. 아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고 눈을 질끈 감고, 큰 숨 내쉬며 다시금 용기를 냈다가 또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내가 그 상황에 있는 듯한 감정 때문에 힘들었다. 그녀는 결국 맨손으로 지렁이를 잡아서 아들의 낚싯바늘에 끼워 주었다. 징그러운 건 절대 못 잡는다는 그녀였는데. 정말 엄마가 되면 할 수 있는 걸까? 나도 엄마가 되면 눈앞의 사마귀 따위 깔보며 지나갈 수 있는 걸까. 


떼쓰는 금쪽이에게 했던 오은영 박사님 말을 기억해둬야겠다.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육십육 계단, 여름이면 무서운 계단.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만난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