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한 권과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서 백팩에 넣었다. 이마트 리백(RE:BAG)에 빨랫감을 넣고 집을 나섰다. 어깨에, 팔뚝에 한 짐 챙겨 빨래방에 갔다. 결벽증이 있어서 너도나도 남녀노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빨랫감이 들어갔다 나온 통 안에 내 빨래를 넣는 것이 찝찝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진짜 딱 한 번만 써봐. 너무 편해.” 그렇게 신세계가 시작되었다.
빨래방에 도착하니 세탁기가 이미 만석이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의자에 띄엄띄엄 앉아서 다들 핸드폰을 하고 있다. 가장 짧게 남은 세탁 시간이 23분이었다. 그 세탁기 앞에 내 빨랫감을 세워놓았다.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니 앞 사람 빨래가 끝났다는 알림이 울렸다. 내 빨래를 넣었다. 공간이 많이 남는다. 아깝다. 카드를 화면에 대니 7천 원이 빠져나간다. 백팩으로 맡아놓은 내 자리로 돌아와 책을 꺼냈다. 한 5분쯤 지나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이 들려서 뒤돌아봤더니 옆 세탁기 알림이었다. 내 빨래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세탁기는 빨래방에서 하나뿐인 초대형 28kg 용량이었다. 나머지는 20kg 용량인데 5천 원이다. 땅바닥에 2천 원을 버린 기분이었다. 2천 원이면 바운스 드라이 시트 4개나 살 수 있는데. 아, 아까워.
시간이 아주 잘 흘렀다. 세탁기 돌아가는 일정한 소음에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대화 소리가 없으니 카페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마스크를 꼈지만 코끝이 춥고 수면양말에 털 부츠를 신었지만 발목이 시린 것 빼고는 카페 대신 빨래방에 가서 글 쓰는 루틴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았다.
여기까지 좋았는데. 내가 안 하던 짓을 하고 만다. 빨래방에서 제일 큰 초대형 세탁기에서 몇 개 안 되는 하찮은 빨랫감을 꺼내 건조기 돌릴 차례를 기다릴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여학생이 이불을 개느라 혼자 끙끙대는 것이었다. 땅에 닿지 않게 좁은 테이블 위에서 이불 끝과 끝을 찾아 한 번 접더니 하, 하고 한숨을 쉰다. 그리고 어깨가 아픈지 어깨도 털썩 내려놓는다. 내가 가만히 있어야 했다.
“저,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요.”
이불 개던 여학생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빨래방에서 도울 일이 뭐가 있다고. 그 주변에 여자 두 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빨래 꺼내느라 못 봤을 거야, 한 명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못 들었을 거야. 내가 왜 그랬지, 빨래방을 뛰쳐나오고 싶을 만큼 너무 창피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일주일 전이었다. 설 명절이 끝나선지 빨래방에 이불 빨래하러 온 사람들이 나 포함 다섯 명이나 있었다. 두 명, 두 명, 나 혼자. 한 커플이 건조기에서 이불을 꺼냈다.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이불 끝과 끝을 잡고 착착착착 접어서 금세 이불을 개는 것이다. 나는 혼자 개느라 진짜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불 끝을 잡아주겠다고 오지랖을 부리고 만 것이다. 혹시 자기 빨래를 같이 개어주겠다는 말로 들었을까, 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하나는 어제의 친절 때문이었다. 플라잉요가 수업에서 퍼포먼스를 잘 따라 하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었다. 강사님이 다른 회원들을 봐주고 있을 때 내 뒤에 있는 여자분 목소리가 들렸다.
“양손으로 왼쪽 해먹을 잡고요. 오른쪽 발을 해먹 안쪽으로 감아서 돌리세요. 그리고 바로 양손으로 해먹을 잡으세요.”
“(낑낑 으아아) 이렇게요?”
“네네, 맞아요.”
수업 끝날 때까지 계속 가르쳐준 덕분에 마지막 동작 빼고 모든 퍼포먼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보송보송 마른 수건과 옷을 들고 전통시장 쪽으로 걸었다. 시장을 구경하니 기분이 좋다. 바람이 차긴 했지만 춥지 않았다. 간간히 빨래방 일이 생각나서였다. 그 여학생은 아마 친구들에게 오늘 빨래방에서 진짜 이상한 여자 만났어, 라고 내 얘길 하겠지? 언젠가 어떤 날 빨래방에서 마주보고 착착착착 이불 개는 한 커플을 본다면 아, 그때 이것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날도 오겠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앞으론 제발 가만히 있자.
저 정말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