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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쩍은 하루

눈썹 문신을 하러 가서

by 좋으니


눈썹 문신 예약을 했다. 그동안 눈썹 문신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며칠간 짱구로 돌아다니는 게 싫어서였다. 그리고 박박 세수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눈썹만 피해 사부작사부작 세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싫었다.

눈썹 그리기는 참 어려운 작업이다. 눈썹의 두께와 비율, 각도를 맞추는 일은 매우 귀찮고 때론 팔이 아프기까지 하다. 겨우 눈썹 두 짝인데 화장 시간의 거의 절반을 잡아먹을 만큼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에 뜬 글을 보게 됐다. 몇 달을 지켜보다 예약을 했다. 게시된 시술 사진을 보니 시술 당일임에도 너무 자연스러웠고 재예약도 소개도 많아 믿음이 갔다. 매일 새로운 시술 사진이 올라오는 것도 안심됐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일요일 오후 2시 50분. 예약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고객이 많아 늦은 점심을 먹고 오나보다, 화장실을 갔나보다 생각했다. 샵에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이 지나도 메시지를 읽지 않는다. 아직 예약한 시간이 되려면 7분 정도 남았으니 기다려보자고 생각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드디어 3시. 아직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늦을 만한 사정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했을 텐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층 전체가 조용했다. 하얀 시폰 커튼으로 가려진 샵 안을 들여다보려고 틈을 찾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슬리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사기당했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예약금 몇만 원보다 빼앗긴 시간이 너무 억울했다. 2시간가량 버려진 내 시간 어떻게 돌려받지. 생각해보니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만 연락했지 이 사람 연락처도 몰랐다. 이런 멍청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냈다. 이미 너무 화가 난 상태였다. 시간은 3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오늘 3시에 예약한 사람인데. 지금 뭐 하시는 건지. 카톡 메시지도 확인 안 하시고.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고객님... 너무 죄송해요... 제가 지금 다른 샵에 와 있어요. 제가 깜빡하고 예약 일정을 체크 안 해놨어요. 정말 너무 죄송해요.”

“아...”

전화가 걸려 온 순간 사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화가 절반 이상 쑥 내려갔다.

“아, 전 사기인 줄 알고 너무 화가 났는데 사기 아니면 됐어요.”

“아... 고객님 정말 너무 죄송해요. 제가 다시 예약 잡아 드릴게요. 고객님 시간에 최대한 맞춰서 해드릴게요.”

“네, 일정 보고 다시 메시지 드릴게요.”

이미 화는 풀렸지만, 티를 내긴 싫어서 건조하게 대답하고 끊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돌아가는 내내 연신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목소리와 글에 묻어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멋쩍어졌다.

괜찮아요. 저도 순간 시간이 너무 아까워 화가 났는데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너무 미안해하시니 제가 더 쑥스럽네요. 저도 사기라고 오해해서 죄송해요. 라고 웃음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에라도 괜찮다면 해드릴 수 있다고 서비스로 속눈썹 펌도 해주겠다고 답장이 왔다. 다시 일정 잡기가 힘들어 저녁에 다시 샵으로 향했다.


나를 보자마자 “아~ 고객님” 하면서 달려와 손을 잡는다. 그 싹싹함에 나도 괜히 미안해졌다. 조금만 더 참아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술하는 동안 한참이나 서로 미안하다며 대화를 나눴다.

“제가 고객님이었으면 다신 안 왔을 거예요. 실수할 수 있다고 얘기해줘서 그 메시지 보고 진짜 눈물 났어요. 제가 진짜 예쁘게 해드릴게요.”


사기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사기 같았다. 사기를 치려면 이 정도 디테일은 필요하구나 싶었다. 그게 아니란 걸 알고 나니 몇만 원에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사기 칠 리 없지, 라고 순식간에 생각이 바뀐다.

웃긴 건,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취소하고 마는데 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차마 취소해주세요라는 말이 안 나왔다는 거다. 어쨌든 눈썹 문신도 서비스로 받은 속눈썹 펌도 마음에 들었으니 됐다. 그래도 좀 멋쩍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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