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줍은아이 Jul 22. 2015

능소화

외할머니댁의 능소화



외할머니의 집은 언제나 능소화가 가득했다. 집이 능소화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내 기억 속 외할머니는 총 세 번 이사를 하셨는데, 언제나 이사하는 집마다 능소화를 키우셨다. 여름마다 외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호박만큼 큰 능소화 꽃의 크기를 보고 엄마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외할머니는 능소화를 사람처럼 대했다. 외할머니 집에서 며칠을 지내면 외할머니는 하루에 한 번은 꼬박 담장에 나가셔서 능소화에 말을 거셨다. 오늘 덥지예, 물 좀 줄까예, 아깝게 예쁜 것들이 다 떨어졌네. 외할머니는 떨어진 능소화가 아깝다고 날마다 떨어진 꽃을 주워 유리병에 담으셨다. 엄마는 그런 외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실 때마다 손끝에 약을 발라드렸다 능소화의 꽃가루는 독이 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왜 능소화를 사람처럼 대해? 내 질문에 외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던 엄마는 울음을 참는 초등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가 점점 되돌아가는 거 알고 있지? 엄마는 딱히 내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능소화의 전설이 뭔지 알아? 기다림이야. 죽어서도 기다리겠다는. 너희 외할머니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나는 무엇을? 하고 물었지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나오질 않았다. 외할머니가 덮은 이불이 고르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엄마는 이불을 목께까지 덮어드렸다.



외할머니는 점점 소녀가 되어갔다. 진짜 소녀인 여동생보다 더 소녀가 되어갔다. 쉽게 웃으셨고, 쉽게 감동하셨으며, 쉽게 상처받았다. 할머니의 표정이 다채로워질수록 외숙모의 한숨은 짙어졌다. 예민해져 가는 할머니의 감수성에 외숙모의 말 한 문장 한 문장이 상처로 되돌아왔다. 외할머니는 소녀였고 외숙모는 폐경을 보낸 지 20년이 다 되어갔다. 할머니는 담벼락 맞은편에 의자를 놓고, 능소화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능소화가 왜 좋아? 외할머니의 팔에 매달리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큰 외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외할머니는 쟤는 양반 꽃이야, 하고 대답해주셨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고하게 올라가는 꽃이 쟤야, 얼마나 도도해. 할머니는 쟤가 부러워? 지조 있는 꽃이 얼마나 이쁘냐. 내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끝이 꽃의 독 때문에 빨갛게 부어있었다. 외할머니의 손끝에서 어렴풋이 꽃내음이 났다.




minolta x-700/fuji color 2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