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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은아이 Jul 26. 2015

버스

1.


버스를 타고 한참 지났을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낯선 곳임을 겨우 깨달았다. 창밖에는 빌딩 숲 대신 가로수 사이로 뜨문뜨문 수평선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의 번호를 확인했다. 버스를 잘못 타도 단단히 잘못 탔다. 어쩐지 내리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아까부터 버스의 승객은 나와 할머니밖에 없었다. 출근 시간까지는 15분밖에 남지 않았고, 급히 지도를 검색하자 나는 부산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도 모른 채 나는 머릿속으로 월차가 남아있던가 계산하며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가 한참이나 잠겨버린 목소리로 들렸던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말에 집에서 푹 쉬라는 상사의 걱정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끝이 났다. 그제야 나는 창밖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소금 내음이 났던 것 같기도 하고.  



2.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덜컹하고 멈추더니, 기사님은 시동을 끄고는 뒤를 돌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안 내리느냐는 표정으로. 여기가 종점인가요, 하고 묻자 기사님은 여기서는 버스가 두 시간마다 있어, 하고 퉁명스레 말하곤 먼저 내리셨다. 버스에 같이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그 뒤로 내리시다가 말을 거셨다. 아가씨도 귀에 나오는 그거, 파도소리였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니는 여기는 바다가 사람을 부르는 곳이야, 하고는 바다구경이나 하고 가라며 해변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일 년에 세네 번, 젊은 사람들이 버스를 잘못 타고 이곳까지 온다고. 할머니는 그 사람들 모두가 파도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뇌에서 진짜 바다라도 보고 싶어서 이 버스를 탔겠지, 할머니는 버스가 멈춘 곳의 벽을 손으로 가리켰다. 벽에는 누군가가 적어놓은 작은 종이가 있었다.


바다를 보고 싶어 한 힘들어하는 당신들에게.



3.


멍하니 해변에 앉아, 버스에 탔을 때부터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귀에서는 그제야 가짜 파도소리가 아닌, 진짜 파도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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