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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Jun 26. 2020

이 동네는 공사 안 해요

세상사 다 그렇듯 남이 할 땐 쉬워 보여도 막상 내가 해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많다. 우리 눈엔 완성된 결과물만 보이고 그 뒤에 숨겨진 땀과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거다. 거리 곳곳엔 오래된 주택이 감각 있는 상가로 리모델링된 경우가 많았고 익선동같이 한옥을 개조해 특색 있는 상업공간으로 탈바꿈한 지역도 있었다.


우리도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었지만 경험이 없던 관계로 조금 공부한 어설픈 지식으로 괜히 업체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단 원하는 콘셉트와 자재를 명확히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렇다고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기보다는 하나씩 배운다는 생각으로 현장에 나가 궁금한 건 물어보며 건축 지식을 쌓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처음엔 막연히 지방이 물가가 더 저렴할 거란 생각에 서울보다 더 적은 비용을 투자해 리모델링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우리의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


공급이 넘쳐나는 서울과 다르게 동해시에는 제한된 수의 인테리어 회사만 있었고 그마저도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은 관계로 일부 잘하는 곳은 결코 견적을 싸게 내지 않았다. 이는 다른 지방 소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데 때에 따라 서울에서 기술자를 초빙하는 게 더 저렴할 수도 있다. 경쟁이 치열해 대체할 수 있는 곳도 많은 편이고 지역 업체와 견적도 비교해볼 수도 있으니 이왕이면 서울에서 지방 출장 공사를 해주는 곳도 함께 견적을 받아보기 바란다.


우리 같은 경우엔 견적서를 받아도 이게 올바르게 책정된 가격인지 파악할 능력이 없었는데 그 기준을 잡기 위해 이왕이면 여러 곳에서 견적을 받아 비교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인테리어 업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실력이 괜찮다고 알려진 곳은 더더욱 손에 꼽혔다. 가능한 지역업체를 이용하고 싶어 몇 군데에 연락을 해봤고 그중 가장 실력 있는 곳으로 알려진 사장님이 제일 먼저 방문하셨다. 그리고 아래는 사장님이 우리의 앞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암시를 주고 간 대화 내용이다.
 
“사장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실은 주소 듣고 안 오려다 그래도 손님이 문의하셨는데 단칼에 거절하기도 그렇고, 우선 현장을 한 번 보는 게 맞다 싶어서 와 봤어요.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네요. 꼭 이 집만 그런 건 아니고 이 동네는 저희가 공사를 못 해요.”
 
“저야 공사한다면 돈은 벌겠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하고 인부들이 이 동네 공사 잡으면 엄청 뭐라 해요. 동해는 동네가 좁아서 직원, 인부들이 다 학교 선후배 관계라 비록 제가 사장이지만 앞으로 같이 일하려면 저도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거든요.”
 
“여기는 차가 집 앞까지 안 들어와서 모든 걸 다 손으로 들고 날라야 해요. 하나같이 이 동네 공사 힘들다고 욕하고 난리 인지라 사장님께서 이해해주세요. 그래도 이곳 전망이 좋아서 손님들은 올 것 같으니 화장실 같은 것만 따로 발주 넣으셔서 수리하시고 몇 년 뒤 바닷가 앞에 차 들어오는 곳으로 나오세요.”


차를 세우고 밑에서 올라가거나 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

이게 무슨 소리지? 관련 지식이 없다 보니 이 동네가 정말로 공사하기 힘든 곳인지 아니면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힘들면 뭐가 힘들다는 건지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바닷가 앞으로 나가라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도 같았다. 우리가 외지인이라 안 해주시나? 당시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만 남았지만 못하겠다고 하시니 별수 없었다. 잘하는 곳이라고 추천받은 곳이라 약간 아쉽긴 했지만, 아직 첫 번째인 관계로 크게 개의치 않고 다른 곳에서 두 번째 견적을 진행했다.


두 번째 방문한 업체는 지난번과는 다르게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문의한 사항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고 대략적인 견적을 알려주셨다. 예상했던 금액 대비 조금 비싸긴 했지만, 조정할 수 있는 건 추후 조정하기로 하고 상세 견적을 하루 이틀 안에 보내주시기로 했다. 주변에 건축 전공 친구들에게 인테리어 업체와 일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과 견적 보는 법 등을 미리 물어보았다. 외지인인 데다 사업도 처음인 젊은 부부였기에 혹시라도 바가지 쓰지 않게 꼼꼼하게 챙겨야 할 부분들을 엑셀로 작성해서 업체에 가능하면 양식대로 견적을 제공해주시길 요청했다. 우리 생각엔 포기해야 할 것만 정리하면 예산 범위를 크게 초과하지 않고 공사가 가능할 거로 보였다.


견적 당시 받았던 의견에 대해 정리하는 사이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녁이 돼도 연락이 없길래 조금 바쁘시구나 싶었다. 지금이 공사가 많은 시즌인지 아니면 다른 업무가 많은 건지 우선 보채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후로 하루 이틀 더 연락이 없어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업체에 문의했다. 전화 연결이 안 돼 문자와 메일로 연락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고 어떤 답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 업체는 잠수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지금에서야 추측하길 아마 현장에 방문하신 직원분이 회사로 돌아가서 사장님께 단번에 퇴짜를 맞은 것 같다. 공사도 힘든 동네인데 젊은 사람들이 꼼꼼하게 이것저것 챙기니 피곤하다고 여겼을 수도. 그리고 이런 상황은 다른 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현지 지역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론 대부분의 업체가 관공서, 대기업에서 일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의 가게는 가장 마지막 옵션인데 그것도 대부분 공사하기 편리한 시내 상가를 선호한다고 한다. 아예 이쪽 동네는 공사를 안 해주는 곳도 많다고 한다.


인력사무소에도 실력 있는 분들은 근처 시멘트 공장이나 관공서 현장으로 먼저 파견되고 우리 같은 시골 동네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사람들만 가게 된다고 한다. 이마저도 일이 힘들다고 알려져 아예 안 간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가뜩이나 일할 사람이 부족한 시골이라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했다. 돈을 내도 일해줄 업체가 없어 반대로 찾아다니며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방 소도시의 한계상 공급업체가 많지 않아 별다른 대안이 없었고 그들도 일감이 없는 게 아니라 할 거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의 배짱 견적을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보다 가격은 비싼데 품질은 보장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굽신굽신 매번 부탁해야 하니 그것도 억울한데 딱히 별도리가 없었다. 자재도 종류가 적어 마음에 드는 자재는 서울에서 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때 처음으로 이럴 거면 차라리 숙식을 제공하고 서울에서 실력 있는 곳을 초빙해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다.


인테리어 난관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 우리에게 원군이 생겼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걸 포기하고 할 수 있는 부분만 셀프로 진행해볼까 고민하던 중 감사하게도 장인어른께서 먼저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공사 관련 일을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으셔서 과거에 시골집을 부수고 새로 지은 경험이 있으셨다. 아내도 도움을 요청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거리도 워낙 먼 데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생업까지 두고 오셔야 했기에 자식 입장에서 아무래도 부탁드리기엔 죄송한 마음이었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장인어른께서 먼저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가족끼리 함께 일할 땐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 정확한 요구 사항을 전달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어떻게 하면 공간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낼지만 고민하면 됐기 때문에 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와 이미지를 공유하고 원하는 콘셉트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필요한 자재는 서울과 근교에서 구했다. 며칠 뒤 파주와 일산에서 기술자분들을 모시고 세 분이 한 팀이 되어 동해에 오셨다. 그중 목공을 담당하시는 분은 장인어른의 오랜 친구분이셨는데 출발할 땐 간단한 인테리어 정도로만 알고 오셨다가 나중에 전체 리모델링으로 바뀌는 바람에 예상치도 않은 동해 생활을 몇 주 동안 하시게 됐다. 미리 이야기하면 혹시라도 안 올까 봐 장인어른께서 절묘한 계략을 펼치신 것 같다. 신의 한 수였다.


그럼 든든한 정예 멤버도 모두 모였겠다! 우리도 두 팔 걷어 도울 준비가 됐다. 이제부터 진짜 공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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