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크어버드 Jun 26. 2020

의도치 않은 생애 첫 일출

아름다운 동화처럼 꿈과 희망이 가득한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참 좋겠지만 이 이야기는 현실판 버전이라 낭만 뒤에 숨겨진 에피소드들이 함께 나온다. 사업 준비와 회사 인수인계로 바쁜 나날이 이어지던 중 어느새 예정된 휴직 날짜가 다가왔다. 오래도록 기다려온 만큼 부푼 꿈을 안고 강원도로 도착해 짐을 풀었다.


한동안은 우리가 꿈꿨던 여유 있는 아침과 자유로운 시간까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삶이 이어졌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도시의 안락함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골 생활은 해본 적도 없는 햇병아리들이라 주택 생활에 완전히 무지했는데 아마 도시에서만 자고 나란 젊은 세대라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살면서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고 배운 적도 없는 지식과 요령이 생활 곳곳에 필요하니 부디 이 글을 읽는 분은 꼭 우리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상 살다 보면 알아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장단점이 있다는 걸 알고만 있어도 충분히 판단에 도움이 될 거다.

 

보일러실에 있던 낡은 연탄보일러와 기름보일러

먼저 집안을 살펴보면 도시에선 보지 못한 낯선 물건들이 많았다. 주방엔 도시가스가 아닌 LPG 가스통이 있었고 보일러실엔 연탄, 기름보일러가 있었다. 시골이나 주택에선 흔히 사용하는 시설인데 난 그때까지 LPG 가스통을 가정집에서 사용하는지도 몰랐고 기름보일러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당시 반응은 “보일러 하면 귀뚜라미, 린나이 아닌가? 집안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따뜻해지는 세상인데 기름을 넣는 보일러? 주유소에서 사 와서 기름을 넣는 건가?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느낌이었다.


전구 하나 제대로 못 갈아서 한강에서도 못 본 불꽃 쇼를 집안에서 펼치지 않나 (참고로 불꽃 쇼가 펼쳐질 때 너무 놀라 본능적으로 혼자 도망쳤다가 지금도 아내에게 가끔 혼나곤 한다) 나방이 무서워 집 밖에도 못 나가거나 거미 한 마리 잡는 데도 난리를 치며 소리 지르는 도시 남자였다. 특히나 벌레 같은 경우는 시골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아무리 약을 쳐도 계절별로 온갖 새로운 녀석들이 등장하니 시골로 온다면 벌레와의 동침은 단단히 각오하고 오는 게 좋다. 그냥 그들의 세상에 잠깐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셋방살이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중에서도 다리 많은 녀석은 아무리 청소를 하고 집 주위에 약을 쳐도 약간의 틈만 있으면 집안으로 계속 침입하는데 자칫 청결하지 못해 벌레가 나온다는 오해를 손님들께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가장 상상하기 싫은 녀석들은 뱀, 지네, 말벌 같은 종류인데 내 인생 처음으로 지네를 본 날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사 온 지 며칠째 되는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공간을 꾸미고 홈페이지를 구성하는 바쁜 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새벽 2시 즈음인가 아내가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린다며 잘 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나는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라는 말과 함께 불을 켠 뒤 순간 얼음이 되었다. 20센티 정도 되는 지네가 내 왼쪽 머리 옆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나방도 무서워하던 나는 정말이지 소름 끼치게 놀라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 흉측한 모습을 보니 도저히 손으로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랴부랴 에프킬라를 가져와서 뿌렸는데 뿌리자마자 이건 큰 실수였음을 직감하게 됐다. 약을 뿌려도 잘 죽지 않는 데다 몹시 괴로워하며 온몸을 비꼬는 모습이 소름 끼치게 징그러워 정말이지 머리카락까지 쭈뼛 섰다.


그렇게 몇 분간의 고된(?) 사투를 끝내고 빗자루를 가져와 쓸어 버리고 나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지네가 머릿속에 맴돌고 혹시라도 또 나오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심지어 사람을 문다고까지 하니 결국 다시 눕지 못하고 손을 맞잡은 채 거실로 나왔다.
 
“우리 이 집 다시 팔아야 하는 거 아냐?”
“벌레도 못 잡는 애들이 무슨 시골 생활을 하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오밤중에 이게 웬 난리인 건지”

“이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이럴 줄 몰랐으니까.. 어떡하지 혹시라도 손님들 있을 때 나오면”


“나 태어나서 지네 처음 봤는데 정말 심장이 벌렁거리더라.”
“맞아 나도 진짜.. 으으.. 검색해 보니까 세스코에서도 못 잡는다고는 하는데 일단 내일 아침에 바로 연락해볼까?”

“응, 좋아. 근데 오늘 잠은 다 잔 거 같아..”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그날이 우리가 만난 뒤 처음으로 본 동해의 일출이었다. 우리는 일출보단 일몰을 좋아해 그동안 딱히 일출 볼 기회는 없었는데 그날 의도치 않게 동해에서 첫 일출을 본 거다.


그 와중에 일출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이런 예측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과 지네 한 마리에 잠도 못 자는 우리 행동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미건조한 인생보단 이런 에피소드 있는 인생이 낫지 않냐며 긍정적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사실 그날 일출을 보며 집을 팔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밟아 죽이게 됐지만 말이다)


다음날 오전 세스코에서 점검을 하러 왔다. 집 안팎을 열심히 살피시더니 밖에서 유입되는 곤충이나 벌레는 사실상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네는 쥐, 바퀴벌레 같은 해충이 아닌 데다 주변이 모두 풀과 산이라 곤충과 벌레가 살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세스코에서도 뚜렷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난처해하시다 우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모든 틈새를 막고 집 주변으로 약을 뿌리는 걸 추천하셨다. 점검이 끝나자마자 약을 사와 집 둘레 사방팔방에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지네를 포함한 각종 벌레들이 집 안까지는 못 들어오고 입구에서 죽어있는 등 확실히 전보다 효과는 있었지만 100%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살다 보면 뱀을 제외하곤 대부분 적응이 되더라. 아마 몇 년 더 살았으면 뱀도 그냥 꼬챙이로 잡았을 것 같기도 하다. 지네 한 마리에 그렇게 며칠간 야단법석을 떨고 난 뒤 다시 집안 곳곳을 확인하며 수리할 부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름보일러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름을 보충해줘야 했는데 다행히 근처 주유소에 연락하면 급유차가 와서 호스로 보충을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우리 집까지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관계로 인근 등대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했고, 등대부터 집까지 호스 길이만 200m는 돼 기사님들의 표정이 일그러지셨다. 다시 한번 도시가스와 귀뚜라미 보일러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래도 다행히 집 상태는 전반적으로 무난했는데 모든 집이 그렇듯 살림이 빠지고 나니 군데군데 수리가 필요한 것들도 보이긴 했다. 실내 벽지와 외벽이 떨어져 나간 자리 등 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체크하고 전 주인이 살고 있던 방과 보일러실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2인실로 사용하고자 하는 방은 옛날 집 그대로의 모습이라 전체적인 수리가 필요해 보였고 다른 부분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치고자 하니 생각보다 일이 커져 아무래도 전체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2인실로 사용할 작은 방

처음엔 간단한 셀프 인테리어 정도로 소품만 가져다 두고 바로 영업하려 했지만, 공사를 하면 집의 뼈대를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고 투자한 만큼 집의 가치가 올라간다고도 생각해 리모델링하는 편으로 점점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사업도 처음인 데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지식도 부족해 괜히 바가지 쓰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는 게 있어야 업체와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공사를 할지 말지 판단도 할 수 있을 텐데 커튼 하나도 힘겹게 설치하는 나의 실력과 불꽃 쇼가 특기인 못난 손재주도 미덥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결국은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는데 잡초로 가득한 테라스 공간도 잘만 꾸미면 충분히 활용 가능해 보였고 고생은 조금 할지라도 완성되고 나면 실보단 득이 클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무모한 감도 있지만, 한편으론 잘 몰랐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아마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아마 사업도 생각만큼 잘 운영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전 04화 집을 사긴 샀는데 말이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