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강원도 시골 마을의 사장님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남들은 아마 다 미쳤다고 할 테고 부모님께도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도통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장 다음 주에 팀장님께 휴직계를 내고 싶다고도 말씀드려야 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어 다행이었지만 휴직까지 예상보다 수개월이 더 걸리는 바람에 전세 기간도 만료되어 부랴부랴 사택을 신청해 몇 달간 머무는 등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사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데 나오는 것도 만만찮게 어려운 곳인가 보다.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내 이익만 챙길 수 있는 성격도 아니라 매일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휴직이 늦춰지는 바람에 몇 달간의 시간이 생겨 이 기간을 통해 미리 사업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잘 된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꿈꾸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집을 사긴 했지만 사실 우리 같이 평범한 직장인에게 먹고살 만한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있을 리 없었다.
회사를 벗어나 돈을 벌어본 건 대학생 때 해본 아르바이트 정도가 전부였고 둘 다 앉아서 컴퓨터만 사용하는 사무직이었기에 몸을 쓰고 개인 소비자를 상대하는 자영업과는 더욱 거리가 멀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사무직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회사가 우리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는 시대이니 언젠가는 우리 모두 마주쳐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휴직 기간에 그냥 마음 편하게 시골살이 로망만을 만끽하다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여유 자금도 없는 데다 그 시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도 쌓고 생계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정말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건데 그래도 이 집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는 큰 구상은 하고 있었다. 방 구조를 보고 수익성 분석을 해보니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겠단 판단이 들었는데 이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기 유리한 입지조건 때문이었다.
아직 주변이 휑한 느낌이긴 했지만 인테리어만 조금 잘한다면 전망이 좋은 데다 도보 20분 거리에 기차역이 있고 마을 자체가 관광지였기 때문에 적어도 매달 꾸준한 현금 흐름은 발생할 걸로 말이다. 거실 공간을 상업공간으로 변화시킨다면 추가적인 수입도 가능해 보여 불규칙한 숙박 수입을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이 모든 계획이 실패해 예상보다 수익이 낮다면 최대한 휴직 기간까지는 저축해 놓은 돈으로 버티며 사업을 지속해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창업할 당시인 2017년 묵호엔 젊은 사람들이 갈만한 숙소가 부족해 게스트하우스를 하기에 괜찮아 보였다. 강원도 같은 경우는 전국에 게스트하우스 열풍이 불고 몇 년이 지난 뒤였음에도 비교적 조용한 동네였고 그나마 강릉, 속초 정도만 활성화되고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무궁화호가 다니는 묵호역 근처의 구도심 지역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는데 우리 집이 있는 언덕 마을과는 동네 분위기도 다르고 콘셉트와 타깃 연령층도 달라 기존 여행객과 겹치지 않고 새로운 여행객의 유입이 가능해 보였다.
묵호 자체는 분명 관광수요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지만, 일부 20~30대 중엔 이 동네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있었고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마땅히 머무를 만한 곳이 없어 초기에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처음엔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집 전체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할까도 생각했으나 집 전체를 빌려주는 관계로 수익성이 낮은 데다 상업 공간을 추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게스트하우스로 최종 방향을 정했다. 또한 주요 손님 층이 우리 나이와 비슷한 20~30대 젊은 여행객인 관계로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한 편이고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생에도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원하는 공간을 꾸미기 전에 우선 고객 타겟층과 숙소 콘셉트를 분명하게 해야 했는데 동네 분위기와 우리 성향을 고려해 일상에 지쳐 아래와 같은 여행을 원하는 손님들을 위한 숙소 콘셉트를 짰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한껏 게을러지는 여행”
“카페에서 가만히 멍 때리다 산책도 하고 책도 보는 여행”
“일상에서 벗어나 갓 구운 빵 냄새와 커피 향을 오롯이 음미할 수 있는 여행”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우 우리 둘 다 사업 경험은 없었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 여행자의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공간을 꾸며야 할지 아이디어는 있었다. 한국 게스트하우스는 외국 호스텔과 다르게 파티 중심의 문화가 형성된 곳이 많은데 묵호는 그런 분위기보단 조용히 쉬고 싶은 손님들이 선호할만한 지역이다. 우리가 타깃으로 설정한 연령층은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직장인 여행자로 시끄러운 파티보다는 하루 이틀 멍 때리며 조용히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강원도는 서울에서 차로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으니 가끔 일상에 지칠 때 하루쯤 머물고 가고 싶은 공간으로 말이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 콘셉트를 정한 뒤엔 게스트하우스 공용공간이자 상업공간으로 변신할 거실의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엔 아내가 취미생활로 꾸준히 해온 제과제빵 능력을 활용해 테이크아웃 빵을 개발해서 팔아볼까도 생각했다. 마을에 관광객 유동인구는 늘고 있는데 마땅한 먹거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끈기와 체력이라는 걸 몇 번의 시뮬레이션 끝에 금방 알게 됐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빵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인데 정성스러운 반죽과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재고 부담이 있어 들쑥날쑥한 관광객 수도 예상해야 했다.
묵호 같은 경우는 유동인구가 워낙 적고 주방 공간도 좁았던 데다 우리 같은 초보자가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빵까지 만들기엔 아무래도 욕심 같았다. 그래서 이 공간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부담이 적은 카페로 꾸미고 한 번 만들면 2~3일 정도는 냉장 보관이 가능한 케이크를 만드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커피는 전부터 워낙 즐겼던 터라 어렵지 않게 금방 창업 가능한 수준까지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다만, 맛으로 승부를 볼 정도의 뛰어난 미각을 소유하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직접 만든 디저트에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영업 전략을 세웠다.
이제는 원하는 모습으로 공간을 꾸밀 일만 남았다. 인테리어 공사는 처음인데, 모르겠다! 세상에 넘쳐나는 게 가게이고 남들도 다 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역시 이번에도 대책 없다.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는 게 우리 스타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