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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Jun 20. 2020

덜컥 시골 마을의 집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원도로 이사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하나가 바로 “어떻게 이곳에 집을 구했는지?”. 사실 우리는 사전에 철저한 창업 준비가 있었던 것도, 그렇다고 로컬 이주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도 아니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아내의 우연한 손가락 검색과 젊음의 패기인지 무모함인지가 합쳐진 결과였는데 어떤 뚜렷한 목표보다는 강원도 생활이 앞으로의 삶에 좋은 경험이  것으로 판단해 떠났다고 하는  조금  솔직한 답변일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에서 내가 강조했던 철저한 창업 준비와는 조금 거리가 먼 셈이다. (우리가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기도 하다. 준비가 철저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던 관계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가 없었는데 나중엔 “그냥 우연히 인터넷에서 집 보고 왔어요.”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결혼  우리는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했고, 집을 구할 때마다 부동산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직거래 사이트를 관심 있게 보곤 했다. 당시엔 직방, 다방같이  규모의 직거래 플랫폼은 없었고 ‘피터팬의 좋은  구하기 네이버 카페가 정보를 얻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신혼집도 이곳에서 구하는 등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는데 결혼 후엔 아무래도 들어가 볼 일이 없어 잊고 지내던 중 처형네 가족이 집을 구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가 봤다.


사실 파주에 집을 구하던 터라 강원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아내가 무심코 검색해본 ‘바다 뷰 주택’ 이란 검색어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일요일 저녁, 아내가 갑자기 내 얼굴 앞으로 핸드폰을 쓱 내밀었다. 바다, 마을, 산과 시멘트 공장이 함께 보이는 오묘한 느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 오히려 근사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예쁜 집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보는 전망이 너무 좋았다.

 

한눈에 반해버린 거실 전망

“와! 여기 전망 장난 아니다! 여기가 진짜 묵호라고?”

“응, 묵호래. 우리 지난번에 갔던 반대편 언덕인 것 같은데 여기도 멋지다! 근데 글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댓글이 벌써 수십 개야. 이미 팔렸을까?”


“댓글 장난 아닌데.. 그러게.. 이미 팔렸을 수도 있겠다.. 근데 가격이 없네?”

“그럼 가격이랑 매매 가능한지 우선 쪽지로 문의나 해볼까?”

“그래 좋아. 일단 물어나 보자.”


물론 처음부터 집을 살 생각은 없었고 그냥 궁금하니 물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댓글 문의가 너무 많아 이미 팔렸을 것도 같았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가 집주인에게 쪽지를 보내 봤지만, 이틀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차피 살 집도 아니니 그냥 포기하고 넘어갈까 했지만, 눈을 감으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이대로 놓쳐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내 인생에 새로운 찬스가 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계속 답장을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편이 현명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근처 부동산에 혹시 매물로 나와 있지는 않은지를 검색해 봤는데 인근에 딱 한 군데 부동산에서 우리가 찾던 집을 매물로 갖고 있었다. 집도 사람과 인연이 있는 건지, 기적처럼 가격도 우리 예산 범위와 비슷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 옥상에 올라가 전화를 걸었다. 아직 매매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다가오는 주말에 방문을 약속하고 남은 일주일간 묵호 주변 부동산 정보를 모두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던 동네이긴 했지만 무턱대고 전 재산을 들여 집을 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보였다. 또 집을 산다고 해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이사를 온다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래도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우선은 객관적인 부동산 정보만 놓고 판단해 보기로 했다.


당시 강원도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의 훈풍으로 각종 관광시설 개발과 KTX 유치 등 굵직굵직한 SOC 사업이 계획되어 있었다. 동해시는 올림픽 개최지는 아니었지만, 주변 지역 개발의 연장선으로 동해역까지 KTX 연장 여부를 논의 중이었고(지금은 묵호를 거쳐 동해역까지 KTX가 다닌다)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울릉도 여객선 터미널도 재개발 중이었다. 상업시설이 거의 없던 묵호등대와 논골담길도 조금씩 카페와 숙박업소가 생기가 시작했고, 지역에서 도시재생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굵직한 개발계획까지 잡혀있는 걸 보니 전보다는 조금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집 자체가 중요해졌는데 부디 집 상태가 좋길 바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동해에 도착했다. 비가 조금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사진보다 전망은 더 좋았고 집 상태도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시골집을 증축한 곳이라 일부 오래된 부분은 수리가 필요해 보였지만 다른 곳들은 대부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막상 리모델링을 시작해보니 우리의 착각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날 저녁 묵호 야경을 보며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르며 바라본 묵호 야경

매일 이 아름다운 바다와 풍경을 보며 살 수 있다는 설렘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 불확실한 미래와 걱정 사이에서 밤새 감정의 줄타기가 이어졌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건지 아니면 젊음의 무모함으로 손해만 입고 끝날지는 결국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하룻밤 사이에 결론이 났다. 일단은 저질러 보기로!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훗날 그때 도전해보지 않았음을 후회할 것 같았는데, 우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부부였고 한 번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젊음과 체력도 있었기에 눈 딱 감고! 용기 내보기로 말이다. 다음날 집주인에게 매수 의사를 밝히고 거래를 진행하는데 실은 집주인을 보고 약간의 용기를 얻은 점도 있다. 보통 시골 마을의 집주인이라고 하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을 생각할 텐데, 이곳의 집주인은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으로 2년 전쯤 동해가 좋아 정착한 선구자였다. 그곳에서 이미 행복하게 잘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게 우리 선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해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것이다. 가계약 후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우리가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아찔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불안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미 저지른 일이니, 선택에 대한 고민과 걱정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 자고로 일은 저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수습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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