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조만간 휴직 처리 잘 될 거야. 동해 어디라고 했지?”
“아, 동해시인데.. 묵호항이라고 하면 아는 분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묵호?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강원도 가서도 건강하고! 아내도 잘 챙겨주고!”
“네.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팀장님!”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낸 팀장님 세대에게 나 같은 젊은이의 이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닐 테다. 가뜩이나 취업이 힘든 세상인데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자기 발로 떠나는 것도 모자라 아무 연고 없는 강원도 시골까지 가겠다고 하니 더더욱 그랬을 수도 있겠다.
마침 팀에선 나 말고도 다른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 많았는데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까지 찬물을 끼얹게 됐다. 팀장님은 내가 휴직 얘기를 꺼내자마자 본인 일처럼 걱정하시며 “강원도에 연고는 있냐”, “가서는 뭐 먹고살라고 하냐”, “회사 커리어에 치명타이니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등등 철없어 보이는 후배 직원을 위해 나름의 진심 어린 조언을 쏟아 내셨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엔 매일 동해바다가 펼쳐졌고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더욱 용기 내기 어려울 것 같아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이 답답하긴 했지만 사실 회사가 좋아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내게 직장인이란 옷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던 2017년 4월의 봄, 지난 5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한 채 3년이란 긴 시간의 휴직계를 냈다.
요즘은 휴직이나 퇴사 스토리가 워낙 흔해 나처럼 회사를 떠난다는 건 누군가에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퇴사도 하나의 유행인 시대인데 나처럼 휴직 가능한 회사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그 선택의 무게마저 가벼웠던 것은 아닌데 분명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아 들어간 회사였고, 그 고된 과정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익숙해진 현재의 삶을 버리고 다시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들 땐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한창 입지를 다져야 할 30대 젊은 대리에게 3년이란 긴 시간의 공백은 자칫하면 직장인으로서의 생명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직이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일이 잘 안 풀려 나중에 복직한다 한들 전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을 테고 다시 회사에 잘 적응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였기에 나름의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세상 밖을 한번 경험하고 싶었다. 그동안 사회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만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왔는데, 늘 마음 한편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있었고 그 궁금증은 결국 직접 경험을 해봐야만 해소될 것 같았다.
“짧은 인생인데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만 사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다들 이렇게 산다는데 혹시 나만 배부른 소리 하는 건 아닐까?”
“회사 밖은 정말 지옥이기만 할까?”
반복되는 질문에 좀처럼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를 때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를 괴롭혔고 아무래도 큰 조직에 있다 보니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에도 큰 위기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이걸 ‘안정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큰 사고만 없다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회사였고 회사 분위기도 부드러운 편이라 비록 부자가 될 수는 없어도 나름의 안락한 삶이 있었다. 요즘같이 직장인의 수명이 짧은 시대에도 정년퇴임 행사가 제법 자주 열리곤 했으니 말이다.
같은 공간이지만 누군가는 축하를 받으며 정년퇴임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잠시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휴직에 비교적 관대한 회사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3년 뒤 복직을 하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개인적으로 한 뼘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모두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까.
만약 내가 했던 고민을 누군가 하고 있다면 너무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퇴사 전 가능한 많은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새는 퇴사 후의 삶을 기록한 책도 많고 유튜브에도 다양한 직업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무턱대고 사표를 쓰기보단,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가능하면 회사에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먼저 실행해 보길 바란다. 나 역시 회사에 다니며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 좋았겠지만, 강원도와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던 데다 3년이란 시간이 있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이 됐을 것 같다. 물론, 무조건 버티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현실적으로 직장 다니면서 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밖에 나와 직접 부딪혀야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은 게 사실이다.
직장을 떠나서, 그리고 살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자연환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도 많은데 그래도 이에 못지않게 행복한 순간도 많으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로망만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어찌 된 게 입사할 때보다 휴직할 때 기분이 더 좋은 걸 보니 나 역시도 회사 체질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