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라는 지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 텐데 막상 강원도에 ‘동해시’가 있는지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그런지 동해로 간다고 하면 “동해 어디? 속초? 강릉?”과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시 동해시를 알게 된 건 연애 시절 떠난 동해안 7번 국도 여행에서였다.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해안가를 따라 강릉까지 올라오는 여정이었는데 삼척에서 강릉으로 올라오던 중 동해시를 지나가게 됐고 언덕배기 마을에 하얀 등대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너무 예뻐 잠깐 들렀다가 그 풍광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등대에 앉아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니 언젠가 한 번쯤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기 진짜 좋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나중에 꼭 다시 오자!”
“좋아. 책 한 권 들고 와서 하루 이틀 아무 생각 안 하며 그냥 책 읽고, 파도 소리 듣고 싶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맛있는 거 먹고 동네 산책도 하면서 말이지.”
“응. 이런 곳이라면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
“살다 보면 언젠가 또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묵호를 처음 봤을 때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보자마자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아말피 해안이 떠올랐다. 아말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그 아름다운 풍경 덕에 오랜 옛날부터 많은 예술가와 여행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지역이다. 낭떠러지라고 해도 될 만큼 가파른 언덕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지중해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으로 묵호와는 푸른 바다색과 언덕 마을 지형이 비슷하다. 물론 아말피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묵호와는 그 규모와 형태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놀라웠다.
묵호가 더욱더 좋았던 점은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넘쳐나는 관광객 탓에 복잡하고 정신없던 아말피와는 다르게 아직도 여유롭고 정이 넘치는 한국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는 점이다. 과거 달동네 풍경을 상상하면 되는데 이제 서울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취이기도 하다. 서울 같은 경우엔 도시의 오래된 지역은 대부분 재개발되어왔는데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낡은 집과 함께 그 골목의 역사와 문화까지 함께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엔 어딜 가도 똑같이 생긴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가 자본력을 드러내며 웅장하게 들어선다. 물론 그만큼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그 동네의 역사는 어느 한편에 보관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의 넋두리 정도로만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도 최근부터는 모두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 형태보다는 도시의 옛 모습을 보존하며 개발하는 도시 재생 형태로 진행되는 추세라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기대한다.
묵호도 얼마 전 도시재생 뉴딜 지역으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무쪼록 이 매력적인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잘 보존하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잘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은 시골 동네가 어떻게 우리 마음을 훔쳐서 회사까지 박차고 나오게 했는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무언가에 홀리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아마 언젠가 한 번쯤은 꼭 이곳 묵호에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나는 지금도 강원도에 아말피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